보이지 않는 폭력을 마주하다: 이하윤의 ‘FEMICIDE’ 퍼포먼스

2025-11-16     현수정 미술칼럼니스트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Photo by Mei Seva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할 관계 속에서, 또는 함께 일하고 배우는 공간에서조차 여성들은 폭력과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 신체적 상해뿐 아니라 언어와 제도 속에서도 폭력은 여전히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은 사회 곳곳에 스며 있으며, 그 구조적 불평등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여성으로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목소리와 자기표현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여성들은 그 폭력의 현실에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예술적 행위로 전환하고,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내면의 저항이자 잃어버린 존엄과 기억을 되찾기 위한 자신만의 언어를 모색해야 했다. 

예술은 바로 그 목소리가 되어,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상처를 연대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 이 글은 그런 예술적 실천 속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내면과 회복의 서사, 그리고 예술이 수행하는 치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따라가고자 한다. 이러한 사회적 폭력과 불평등의 현실을 예술의 언어로 마주한 전시가 바로 <FEMICIDE> (9월 3일~10월 24일)이다. 2025년 가을, 뉴욕 맨해튼의 존 제이 시립대학(John Jay College) 내 아냐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The Anya and Andrew Shiva Gallery)에서 열렸다.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는 라틴어 femina(여성)와 cide(살해)를 합친 말로, 젠더 기반 폭력의 한 형태’를 뜻한다. 유엔(UN)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파트너나 가족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페미사이드의 실태는 사회의 무관심과 침묵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페미사이드는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 규범과 제도 속에서 지속되는 폭력의 체계이다.

큐레이터 탈리아 브라코풀로스(Thalia Vrachopoulos) 교수는 전시장 입구의 붉은 벽면에 전시 주제를 밝혔다. “예술이 단순히 문제를 인식시키는 수준을 넘어, 감정적·미학적·정치적 차원에서 젠더 기반 폭력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정의와 슬픔, 그리고 변화를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전시에는 로야 아미그(Roya Amigh), 도나 페라토(Donna Ferrato), 마리아 카라메투(Maria Karametou), 페이 쿠(Fay Ku), 이하윤(Hayoon Jay Lee)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참여해 기억, 애도, 저항, 그리고 회복의 서사를 시각화했다. 그들의 작업은 통계로는 포착되지 않는 인간적 경험의 진실을 드러내며, 폭력의 구조를 감각적·정서적 경험으로 전환시켰다. 

전시의 특별행사로 10월 15일 오후 전시의 의미를 구체화한 ‘라운드테이블과 이하윤(Hayoon Jay Lee)의 퍼포먼스’는 전시 <FEMICIDE>의 주제를 현장에서 확장하는 자리였다. 라운드테이블에는 존제이 대학의 세 명의 교수, 정치학자인 조지 안드레오풀로스(George Andreopoulos), 여성·젠더 정의를 연구하는 정치학 교수 베로니카 미첼-루비아노(Veronica Michel-Luviano), 그리고 사회학·인류학 교수, 이리나 자키로바(Irina Zakirova)가 참여해 페미사이드의 구조적 폭력과 사회적 침묵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을 이어갔다. 세 학자는 각자의 분야에서 실제 사례와 통계를 제시하며, 가까운 관계 속 폭력이 어떻게 사회 제도의 무관심 속에 반복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토론은 길고 진지하게 이어졌고, 전시장에 모인 관객들은 그 무게감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냉혹함을 마주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문제들이 얼마나 깊고 오래된 구조에 뿌리내려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Photo by Mei Seva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것이 바로 이하윤의 퍼포먼스였다. 그녀의 행위는 폭력 이후의 삶, 침묵 이후의 목소리를 ‘몸의 언어로 구현한 하나의 의식’이었다. 강의와 통계가 전시의 ‘이성적 차원’을 드러냈다면, 이하윤의 퍼포먼스는 그 이성의 자리를 넘어 감각과 몸, 영혼의 차원에서 폭력 이후의 회복을 시도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투안 엔니옹(Antoine Hennion)은 예술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다시 매개하는 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FEMICIDE>는 바로 그런 ‘매개의 장(mediated space)’으로 기능했다. 예술가들은 현실의 고통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그 고통과 감정이 서로의 몸과 시선, 기억 속에서 공명하도록 만들었다. 그 가운데 이하윤의 퍼포먼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2025)>는 전시의 주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응축한 장면이었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몸의 언어로 쓴 치유의 의식

하얀 한복 차림으로 흰 국화꽃을 들고 전시장 중앙에 선 순간, 이하윤 작가의 존재는 라운드테이블의 긴장된 공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미소와 함께 국화꽃이 관객들에게 하나씩 전해지자, 공간에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연결의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관객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었다. 이하윤의 손끝, 눈의 움직임, 몸의 작은 제스처에 반응하며, 그녀의 행위에 내면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의 몰입감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은 음악의 결합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카이 스틸(Skye Steele)과 한국 북 연주자인 최윤자가 함께 참여해, 서양의 현악기 선율과 한국의 북 장단이 교차하는 독특한 음향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바이올린의 긴장된 선율 위로 힘있는 북의 리듬이 겹쳐지며,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심장처럼 진동했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Photo by Mei Seva


재단과 천: 생명과 기억의 무대 

전시장 중앙에는 붉은 종이로 만든 사각형의 ‘재단(altar)’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고운 쌀이 물결 무늬를 그리며 고르게 깔려 있었다. 이하윤은 이 구성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파동처럼 울려 퍼지는 생명의 에코(Echo)'로 보았다. 쌀의 결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에 미세한 진동처럼 번져나가며 감각의 언어로 작용했다. 그 앞에는 약 34피트 길이의 흰 천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언뜻 보면 결혼식장의 통로처럼 보였지만, 이곳에서의 ‘길’은 사랑의 서약이 아니라 폭력 이후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천의 한쪽 끝, 재단과 만나는 지점에는 ‘붉은 드롭(drop)’ 모양의 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 중심에서 한 줄의 붉은 선이 천의 끝까지 이어지며, 마치 핏줄이 뻗어나가듯 재단과 관객의 시선을 연결했다. 흰 바탕 위로 번지듯 스며든 그 붉은 드롭은 눈물 같기도 하고, 초경의 선명한 피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하윤은 그 붉은 선을 “핏줄처럼 흐르는 생명의 선”이라고 설명했다. 그 선은 상처이자 연결, 죽음과 삶, 고통과 치유가 맞닿는 경계였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Photo by Mei Seva


미소의 가장자리에서 울리는 손끝의 신호, SOS  

이하윤은 관객 중 한 남성을 손짓으로 불러냈다. 그는 건장하고 밝은 미소를 지닌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북소리와 바이올린의 선율에 맞추어 천 위를 따라 걸었다. 경쾌한 리듬 속에서 다정해 보이는 남녀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저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딘가 낯설고 불안했다. 이하윤의 미소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손을 그대로 잡은 채, 천천히 다른 손을 뒤로 감추더니, 조용히 손끝으로 어떤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엄지를 구부리고 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그 손짓, 처음엔 단순한 제스처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HELP”, 위급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말할 수 없을 때, 세상에 구조를 요청하는 손 신호였다.

남자에게 이끌리며 웃는 그녀의 얼굴과 그 뒤편에서 보내는 구조의 손짓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을 겹쳐 놓은 듯했다. 관객은 그 순간,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할 관계 안에 잠재된 폭력의 그림자를 보았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은폐된 공포와 사회적 침묵의 구조가 숨어 있었다. 이하윤은 이 장면을 통해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 여성의 현실”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처럼,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소리 없이 ‘HELP’를 외치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이 신호는 비명을 대신한 절규이자, 존엄을 되찾으려는 여성의 언어였다.

흰 천을 찢는 행위의 이중성: 폭력과 해방

전시장 중앙의 흰 천 위의 붉은 드롭(drop)은 작가가 체화한 ‘여성의 고통’과 ‘삶의 순환’을 상징한다. 흰색은 죽음과 정화의 상징이며, 붉은색은 생명과 기억의 흔적을 품고 있다. 두 색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순환적 의미망 안에서 만난다.

이하윤은 두 팔로 흰 천을 들어 올렸다. 그 끝자락은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순백의 천 위에 스며든 붉은 자국은 생명과 고통, 피의 흔적을 동시에 연상시켰다. 그녀의 얼굴에는 몰입과 집중, 그리고 고요한 평정이 서려 있었다. 이내 흰 천은 파열음을 내며 작가의 손에 의해 찢겨졌다. 그 찢긴 천 사이로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재단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서, 천이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는 공기 속을 가르며 마치 고통이 터져 나오는 듯한 울림을 남겼다. 관객들은 그 생생한 소리에 숨을 죽였다. 그녀는 말했다. “그건 Violence(폭력)이자 Liberation(해방)이예요.” 이 장면은 철저히 즉흥적이었다. “연습 한 번도 안 했어요. 그 순간, 그냥 시원하게 찢고 싶었어요.” 작가는 웃으며 회상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한 어린아이가 다가와 물었다고 한다. “손 안 아팠어요?” 그녀는 그 순간 아이가 손의 고통을 상상하고, 걱정해줬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손은 아프지 않았어. 오히려 통쾌했어. 어릴 때 엄마들이 천을 찢던 그 기억처럼, 그게 내 안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어.”  아이가 그녀의 그 말을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퍼포먼스는 나이, 성별, 국적을 떠나 강렬한 울림이 있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Photo by Soojung Hyun


다리를 벌린 몸: 두려움의 탈피와 다시 태어남의 의지

천을 찢고 재단을 향해 나아가던 이하윤은 불현 듯 바닥에 몸을 눕혔다. 그녀는 흰 천으로 둘러싸인 채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폭력 이후의 처참함, 희생된 육체처럼 보였다. 천과 작가의 몸이 함께 하는 형상은 십자가의 고통, 시신의 윤곽을 닮아 있었다. 그 장면은 보는 이의 심장을 조용히 압박했다. 여성이 공개적으로 다리를 벌리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시선과 금기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하윤은 그 금기를 정면으로 깨뜨렸다. 그녀는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자는 다리를 모으고 앉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여자는 이래야 저래야 한다는 사회적 굴레를 깨고 싶었어요. 그리고, 난 자유하고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는다. I'm free and not afraid of you.” 그녀의 자세는 폭력 앞에서 움츠러든 여성의 몸을 다시 주체적 존재로 되찾는 선언이었다. 그것은 도전이자 초대, 그리고 두려움의 탈피를 향한 몸의 언어였다.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의 맥박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침묵에는 절망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해 다시 태어나는 의지가 있었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Photo by Soojung Hyun


쌀의 상징: 정화와 생명의 물결

붉은 재단 위로 쌀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미세하게 떨어져 내렸다. 쌀을 담은 자루는 조용히 흔들리며, 그 흰 입자가 그녀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몸 전체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눈물 같기도, 피 같기도 했다. 이하윤은 말한다. “쌀은 생명이에요. 수많은 생명이 여성의 몸 위에 떨어지는 것, 그것은 고통의 흔적이자 다시 살아가려는 힘이기도 하죠.” 그 순간, 쌀의 파동은 재단을 넘어 관객들의 내면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쌀은 정화의 상징이자 생명의 물결이 되어, 공간 전체에 잔잔한 파동으로 퍼졌다. 바이올린의 선율과 북의 장단은 애조와 떨림 사이를 오가며 그 장면을 감쌌다. 관객들은 말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며, 각자의 내면에서 기억과 감정이 일깨워지는 듯했다. 이 순간, 퍼포먼스는 단순한 시각적 사건을 넘어선 제의(祭儀)로 확장된다.

퍼포먼스의 마지막은 침묵의 절정이었다. 작가는 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호흡과 몸의 진동이 음악의 리듬과 맞물리며, 공간 전체가 한 사람의 울음처럼 떨렸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절정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다시 숨을 고르는 순간이었다. 예술은 고통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을 견디게 하고, 그 위에서 다시 살아가게 한다.

이하윤은 “소리 내는 자와 침묵한 자,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되찾는 자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폭력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여성이 지닌 내면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드러냈다. 특히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그녀의 몸짓은 ‘역사적 폭력과 개인적 상처를 받은 모든 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 고통의 기억을 치유와 연대의 장으로, 그리고 예술적 제의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FEMICIDE>의 맥락 속에서 이 퍼포먼스는 단순한 참여작을 넘어, 침묵 속에서 다시 목소리를 되찾는 예술의 본질적 역할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이하윤, 〈Voiced, Voiceless, Again Voicing〉, 10. 15. 2025, 퍼포먼스 @ 앤 앤드류 시바 갤러리, Photo by Soojung Hyun


이하윤의 퍼포먼스를 보고 전시장을 나서는 길, 문득 팝가수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노래 <Flowers>가 떠올랐다. 경쾌한 리듬 속에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흔드는 그녀의 모습처럼, 이 퍼포먼스 역시 고통의 무게를 통과해 다시 움직이고 살아가는 힘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에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다시 일어서는 여성’, 그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목소리이자, 이하윤이 몸으로 노래한 치유의 언어였다. 결국 이 전시와 퍼포먼스는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여성은 어떻게 자신의 상처 이후에도 다시 일어서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느낀다. 예술이란 바로 그 목소리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맞서는 가장 깊은 행위라는 것을.

현수정은 조선대학교에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앤드로지니 차용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 '미술오케스트라'와 2011년 실비아 월드 앤 포김 미술관 'Breathing' 전시를 큐레이팅 했다. 지금은 뉴욕을 중심으로 큐레이터, 미술사 강사, 아카이브 연구원, 비평가로 활동하며 몽클레어 주립대학교, 뉴욕 시립 기술대학, 맨해튼빌 칼리지에서 아시아 미술과 현대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전시로 'Blood and Tears: Portrayals of Gwangju’s Democratic Struggle'(2022, 안야 & 앤드류 시바 갤러리), 'Noodles, Rice, and Bread'(2022, Artego 갤러리),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2024, AHL재단 갤러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