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후보들 '종묘 대전' 관전법...스카인라인 욕망은 '철학의 부재'
[황두진 건축가 특별 기고] 종묘 앞 개발 공방, 도시계획의 시간과 선거 일정의 충돌 사건 세계 유산의 관리는 법적기준 보다 더 섬세한 접근 요구 도시는 단순 건물의 집합 아닌 시대의 선택이 쌓인 구조
같은 용적률, 다른 도시…고층 실험은 역사도심에 남길 상처
최근 서울시가 공개한 세운지구 재편 투시도로 인해 종묘 앞 초고층 개발 논란이 거세다. 표면적으로는 종묘의 조망을 가리는 고층 건물이 문제인 듯하지만, 그 배후에는 훨씬 더 복합적인 층위가 놓여 있다. 장기적인 도시철학의 부재와 정치적 시간표의 압박이 이번 사안의 핵심이다.
세계유산의 역사적 무게, 세운지구에 반세기 동안 누적된 도시적 단절, 건폐율·용적률이라는 제도적 언어, 같은 용적률을 달성하는 저층과 고층의 상반된 개발 철학, 그리고 최근의 정치적 국면이 한데 얽혀 있다. 단일 이슈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충돌이다.
우선 사실관계를 보자. 서울시는 세운지구 48㎡만여 제곱미터 중 13만6,000㎡미터를 개방형 녹지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의 약 30%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비워지는 공간의 상당 부분은 현 세운상가 부지이며, 철거·재편에 따른 공간적·재정적 공백을 보전하기 위해 용적률과 건물 높이가 상승할 가능성은 높다. 서울시가 공개한 투시도는 이러한 흐름을 거의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구현한 모습이다. 넓게 비우고, 높게 올리고, 그 사이에 거대한 녹지축을 관통시키는 방식이다. 단순한 도심 개선이라기보다는 상징성을 전면에 내세운 대형 도시 스펙터클에 가깝다.
그러나 같은 용적률이라도 구현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몇 해 전 세운4구역 공모 당선안은 저층-고건폐율 방식을 택했다. 낮고 두툼한 매스를 배치하면서 공극을 두어 종묘 경관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상업지역의 높은 건폐율을 그대로 활용해 필지를 촘촘히 채우는 유럽 도시형 모델에 가깝다. 반면 이번 오세훈 시정의 구상은 고층-저건폐율 방식을 택한다. 건폐율을 대폭 낮추고 높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단지형 아파트 개발 구조와 유사하다. 도시가 만들어내는 풍경과 흐름의 질감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 아니라 도시철학의 차이이며, 그 배후에는 정치적 선호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 십여 년간 서울은 두 철학이 교차해 왔다. 박원순 시정은 저층 보행 중심의 생활권 재생에 집중했고, 오세훈 시정은 스카이라인과 대형 축을 통한 도시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두었다. 세운지구는 상반된 두 철학이 가장 극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며, 지금의 논란은 결국 “어떤 개발 방식이 역사도심에 더 타당한가”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여기에 세계유산이라는 또 다른 규범이 겹친다. 종묘는 국보이자 세계유산이지만, 법적 고도 규제는 100미터 밖에서는 크게 완화된다. 이번 서울시 구상이 법적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세계유산의 실제 관리는 법적 기준보다 더 섬세하고 넓은 접근을 요구한다. 시계권, 조망축, 완충지대 같은 비정량적 가이드라인은 법적 강제력은 약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국가유산청이 강하게 우려를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40m 타워군 뒤에 숨은 진짜 질문, ‘어떤 서울' 인가
정치적 국면 또한 이 사안을 빠르게 증폭시켰다. 최근의 정치적 논란을 전후하여 대규모 개발 어젠다가 전면에 등장한 점은 이번 사안의 또 다른 배경이다. 국면 전환의 과정에서 상징적 대규모 개발 구상이 부상하는 현상은 한국 정치에서 반복된다. 초대형 녹지축, 140미터 규모의 타워군, ‘서울 100년 비전’ 같은 개념적 도구가 여기에 결합했다. 이번 투시도가 다소 빠른 행보처럼 보이는 것도 정치적 시간표와 행정적 시간표가 충돌한 결과다. 종묘의 경관 훼손 논란은 이 복합적 충돌이 드러난 표면적 증상에 가깝다.
이제 필요한 것은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차분한 논의다. 고층-저건폐율 방식은 규모의 경제와 상징적 스펙터클에서는 강점을 갖지만, 주변에 맥락이 없어서 이를 새로 조직해야 하는 개발에 적합하다. 반면 역사도심에서는 저층-고건폐율 방식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거리 경험과 조용한 밀도가 더 타당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필요한 용적률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의 문제는 동일하며 질의 문제가 다른 것이다. 역사지구와 생활도시가 밀착된 종묘·세운지구에서는 섣부른 스카이라인 실험보다 더 정교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번 논란은 우리에게 묻는다. “서울은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향해 갈 것인가.” 도시의 지층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개발의 철학을 정립하지 않는다면 같은 충돌은 반복될 것이다. 도시개발은 원래 연구–검토–시뮬레이션–공청회–사업자 협의–지침 반영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파리가 샹젤리제 경관축을 완성하기 위해 100년 넘게 토론을 이어왔다는 사례는 이를 상기시킨다.
반면 정치 일정은 4~5년 단기에 불과하다. 선거 일정이 도시계획의 시간과 충돌하는 구조적 긴장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지도자가 여론 전환을 위해 비전 중심의 투시도를 성급히 제시할 경우 행정·기술 라인 전반에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도시는 단순한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시대의 의지와 선택이 켜켜이 쌓인 구조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신속함보다 숙고가 서울을 살릴 것이다.
이제는 시민의 순간이다.
황두진은 '한옥이 돌아왔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레거시 플레이스' 등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또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상' (공동수상), '서울시건축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국내건축가들 중 드물게 한옥을 문화재가 아닌 현대 건축의 테마로 본다. 서울대 건축공학 석사와 예일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석사를 나온 그는 25년째 개인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자기 건축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