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호랑이 굴'은 생각하지도 마라

적막한 조국혁신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직진 조국'에게 필요한 건 관성과 고정관념의 파괴

2025-11-12     공희준 메시지컨설턴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혁신당 전국당원대회 출발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혁신당은 지금 전당대회 중

“조국혁신당은 ‘정치적 메기’가 되어 양당의 나눠 먹기 정치시장에 혁신과 경쟁의 바람을 불어넣겠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으로 약칭) 당대표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혁신당은 오는 11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충청북도 청주에 자리한 오스코(OSCO) 컨벤션 센터에서 2025 전국당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혁신당은 이날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대표 1인과 함께 신임 최고위원 2인을 각각 선출할 계획이다. 당대표에는 혁신당의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일 조국 전 장관(이하 조국으로 호명)이 단독 입후보했다. 최고위원 경선전에는 임형택, 정춘생, 정경호, 신장식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네 사람 중 정춘생 후보와 신장식 후보는 혁신당 소속 현역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전당대회 흥행에는 당연히 빨간불이 켜졌다. 혁신당 전당대회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기에 알맞은 요소들을 골고루 갖춘 탓이다.

첫째로, 경쟁이 사라진 까닭에 시작부터 맥빠진 당수 경선이다. 혁신당 초대 당대표를 역임한 조국의 신임 투표 성격을 띨 11·23 전당대회에서는 그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조국은 혁신당이 한국 정치의 메기 역할을 맡겠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정작 혁신당 당대표 경선에는 사나운 메기는커녕 만만한 붕어 한 마리 보이지 않으니 이런 역설도 없다고 하겠다.

둘째로, 여전히 어수선한 당 분위기이다. 혁신당은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인 강미정 전 대변인이 동료 남성 고위 당직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탈당 기자회견을 열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이 제명을 비롯한 징계를 당했음에도 2차 가해 논란과 같은 여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을 둘러싼 당내 구성원들 사이의 잠재된 이견과 대립이 언제 활화산처럼 폭발할지 모를 노릇이다.

셋째로, 혁신당이 좀처럼 낄 틈이 없는 정국 흐름이다. 혁신당은 올해 대선에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지 못했다. 취임 초기의 이재명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고,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한층 더 격화되면서 혁신당은 민심의 관심권 밖으로 현재 완전히 밀려난 상태다. 심지어 여권 안의 소위 명청 갈등과 야당 내의 친윤과 비윤의 주도권 다툼은 혁신당에 혹여 갈지도 몰랐을 마지막 한 줄기의 스포라이트마저 깡그리 앗아갔다. 똑같은 군소정당 처지일지언정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의 개인기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데 반해, 혁신당은 조국의 말발과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형편이다.

이쯤 되면 혁신당은 조용히 문을 닫고 민주당에 순순히 흡수·통합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지난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조국(오른쪽)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 왼쪽 두 번째 부터 우원식 국회의장, 정청래 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힘 대표. (사진=연합뉴스)


조국에게 필요한 직진은 중단 없는 직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은 사례는 단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초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서 김영삼의 민주계가 노태우의 민정계를 제압한 경우이다. 민주계에 YS라는 확실한 유력 대선 주자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집권 가능성 높은 유력 대선 주자 한 명이 현역 국회의원 100명보다 더 강력함이 이때 제대로 입증되었다.

두 번째는 노무현, 원혜영, 유인태 등의 꼬마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한 다음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경우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심 인정함으로써 가능했다. DJ는 당권을 지키고 정권을 잃느니, 차라리 당권을 내주더라도 정권을 재창출하는 길을 택했다.

혁신당이 김영삼의 민주계나 꼬마민주당 인사들을 흉내 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 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채워져야만 한다. 조국에게 김영삼 같은 돌파력이 있거나, 또는 이재명 대통령이 조국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걸 정권 재창출로 여기거나. 거의 정반대인 김영삼과 조국의 성격적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 대통령이 조국에게 특별한 동질감이나 부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음을 고려한다면 지금 제시된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들임은 물론이다.

그렇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정치를 계속하는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혁신당이 민주당과 합당하는 순간 정치인 조국의 미래는 진보판 안철수로 낙착될 게 뻔하다. 안철수를 벌써 10년 넘게 집요하게 괴롭혀온 ‘철수정치의 유령’이 이번에는 혁신당 문틈으로 슬며시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게 되는 셈이다. 철수정치의 유령에 가위눌린 조국이 선거 때마다 제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남의 집 대문을 여기저기 각설이처럼 두드리고 다니는 상황은 조국 본인도, 혁신당 사람들도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조국은 “멈추지 마, 직진 조국, 이제 조국”을 혁신당 전당대회의 구호로 소개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혁신당 스스로의 힘으로 의미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문제는 직진은 직진이되 중간에 너무나 자주 정차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딸의 대학교수 채용과 관련된 의혹이 다른 사람도 아닌 조국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 사안이었을까? 해당 논란에 앞장서 뛰어들었던 조국은 본전도 못 찾는 양상이다.

조국과 그 가족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십분 감안한들 이건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식의 개인적 분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수파 시절의 김영삼과 노무현은 조국과는 달리 매사에 시시콜콜 개입하고 참견하지 않았다. 집권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중단 없는 직진’을 이어갔다. 조국은 마치 동네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처럼 곳곳마다 멈춰 서고 있다. 그가 표방한 직진이 초장부터 크게 어그러진 까닭이다.

세력과 규모가 작을수록 힘을 비축했다가 결정적 승부처에서 일시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동시에 낯선 곳으로의 끊임없는 외연 확장을 도모해야 옳다. 조국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일은 누가 봐도 현상 유지를 위한 몸부림일 따름이었다. 여론조사 지지도 한 자릿수의 정당이 안전한 홈경기만 고집하면 어느 세월에 영토를 넓히고 신규 지지층을 규합할 수가 있겠는가?

혁신과 창조적 파괴는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는 법이다. 그리고 진정한 창조적 파괴의 첫걸음은 내 안의 관성과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결단이기 마련이다. 두 번째 당대표 임기를 며칠 후에 맞이하게 될 조국이 자기 안의 관성과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데 과감히 나서주길 바란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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