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재판 재개 주장은 민주주의 기본 흔드는 망발

‘헌법 84조’ 해석 무시한 주장은 사실상 대선 불복 ‘김현지 빈손 공세’는 지도부 무능 숨긴 당내 결집 유지책 사법부는 태도 분명히해 오해 없애고 민주당은 법안 발의 자제해야  

2025-11-07     이중근 칼럼니스트

국민의힘이 다시 사법부를 향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5개의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지난 5월 유죄 취지를 실어 파기환송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재판을 재개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며 해당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판사 3명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이 대통령의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대선 때 유권자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사에 매여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제1야당의 정치력 부족이 딱하고 한심하다. 

장동혁 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란이나 외환을 일으키는 정도의 국가 배신 행위가 아니라면 대통령을 재판대에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과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대통령의 지속적 업무 수행이 그만큼 국가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84조가 재직 중 저지른 새로운 혐의에만 적용되는지 아니면 재직하기 전에 이미 진행되던 재판도 포함되는 지였다. 헌법학자들간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대선 후인 지난 6월 서울고법 등 재판부들이 “대통령은 국가 행정수반이자 원수로, 헌법상 국정운영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재판을 중단한다”고 밝혔을 때 헌법학 및 법조계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재판을 받게 하자는 데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국민의힘이 이제 와서 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의 재판 재개 주장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국민의힘은 재판 재개 요구를 하면서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재판을 맡은 판사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판사 개인 실명을 공개하면서 비난과 모욕을 준 것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명백한 사법부 겁박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여권을 향해 그렇게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라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판사 출신인 장 대표는 이런 압박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당내 입지만 생각하는 협량에 할 말이 없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사법부 책임론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민의힘의 이런 주장에 대해 내내 침묵하고 있다. ‘해당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한마디면 해결될 일인데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지난달 20일 국정감사에서 재판 재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답변이 가져올 파장을 잘 알텐데도 애매하게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민주당에 대한 시위인가? 국민의힘이 이런 사법부의 공기를 읽고 재판 재개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빌미를 준 점도 없지 않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 중지를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발의를 두 차례나 꺼내들었다. 대장동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법안 발의를 거론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헌법상 당연히 재판이 중단되는 것이니 입법이 필요하지 않다”며 제동을 걸어 겨우 막았지만 대단히 비상식적인 행동이었다. 조바심에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재판 재개 공세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장 대표는 지난 4일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전 의총에서 “이제 전쟁이다.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이번이 (이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그것도 국정지지율이 60%를 넘는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겠다는 주장에 공감할 시민이 얼마나 있을까. 국민의힘은 국정감사 내내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문제를 내내 지적했지만, 똑부러지는 부정이나 비리 사례를 들춰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107석은 결코 작은 의석이 아니다. 과거 야당은 그보다 적은 의석을 갖고도 효과적으로 대여 투쟁을 벌였다.

결론이 난 이 대통령 재판 중지를 붙들고 억지 공세를 펴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이 대통령 신뢰 약화, 정권 교체 모멘텀 유지, 사법 개혁 논의 주도권 확보 등 자기당의 정치적 이득을 위한 당략적 접근이라는 점을 장 대표 자신이 입증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 선거의 결과가 무엇보다 존중돼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국민의힘은 더 이상 재판 재개를 논란거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혹 국민의힘의 주장대로 이 대통령에 대해 재판을 재개한다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그런 파국을 원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결코 시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진정 여당을 견제하는 건강한 야당으로 가고자 한다면 사법부 독립 강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고 어불성설의 논리를 앞세워 여권을 계속 공격하는 것으로 당의 대오를 유지한다면 내년 지방선거 결과는 보나마나다. 언제까지 민주당에 ‘야당 복’이 있다는 말을 듣게 할 것인가.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