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퀘어에 등장한 '보이지 않아야 했던 존재들'
북한 여성의 증언, 예술로 확장된 울림: 뉴욕 'UNSEEN' 전시
뉴욕의 9월은 유난히 분주하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선선한 공기와 함께, 맨해튼 곳곳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인파로 더욱 혼잡해 진다. 특히 동쪽 강변에 자리한 유엔 본부 주변은 교통이 자주 차단되는데, 바로 유엔 총회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지구촌의 현안을 논의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분단 80년을 맞은 한반도, 남한과 북한 가운데 특히 북한의 인권 문제는 국제 무대에서 늘 민감한 의제다. 그러나 실제로 총회 현장에서 북한 인권이 전면적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강대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외교적 계산이 작동하는 탓인지… 정치가 풀지 못하는 매듭을 예술은 어떻게 건드릴 수 있을까.
뉴욕 트라이베카의 393 브로드웨이, 루메 스튜디오(LUME Studio)에서 열린 전시 《UNSEEN: An Exhibition about the Reality of Women’s Rights in North Korea》(9월 20일–27일)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처럼 다가온다.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과 그들의 삶이 세계적인 정치 현장이며 예술의 중심 도시에 미술 언어로 펼쳐져 있다. 이번 전시가 제80차 유엔 총회와 세계인권선언 77주년에 맞춰 개막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엔은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범죄 수준의 체계적 유린’으로 규정한 이후, 매년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여성 인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분야로 여전히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최근 2024년에도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 감시를 강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국제적 담론 속에서 쉽게 묻혀버린다.
《UNSEEN》은 단순히 ‘보이지 않음’ 을 다루고자 하기보다 ‘은폐된 삶에 대한 증언’이며 ‘보이지 않던 고통을 예술로 드러낸 전시’이다. 전시장은 두 공간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아래층에는 탈북 여성 10명의 증언이 7대 모니터를 사용해서 부채처럼 펼쳐진 영상 다큐멘터리가 중심에 전시되어 있고 위층에는 12명의 한국 출신 작가를 포함하여 미국, 아르헨티나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북한 여성들의 현실에 공감하며 재해석한 설치, 평면, 조각, 사운드 같은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증언은 사실의 무게로 다가오고, 작품은 그 경험을 시각적 언어로 확장한다. 두 축이 함께 하는 전시를 돌아본 관람객은 은폐된 현장에 대한 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침묵과 은폐, 그리고 증언의 힘
북한 여성들의 삶은 오랫동안 은폐된 현실이었다. 강력한 체제 통제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사회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공적 기록에서 지워왔다. 탈북 여성들이 겪은 경험조차도 한국 사회나 국제 사회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종종 ‘정치적 문제’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 묻혀왔다. 개인의 구체적 경험은 통계나 보고서의 숫자로만 남은 경우가 많았다. 《UNSEEN》 전시는 바로 이 침묵과 은폐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전시장의 아래층은 증언과 기록의 공간이다. 전시 제목《UNSEEN》이 역설적으로 ‘Seen’으로 전환되는 자리, 바로 북한의 실상이 드러나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즉각적이고 진솔한 반응을 보인다. 한쪽 벽면에는 북한의 현실을 담은 비디오 영상과, 탈북 과정에서 실제로 입고 왔던 옷과 신발, 소품이 놓여 있다. 북한 출신 작가 강천혁과 최성국이 그린 일러스트레이션도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이 그림들은 북한 여성들이 감금되거나 취조 받는 장면, 어린이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공간의 중심은 단연 '10명의 북한 여성'(2025)의 증언을 담은 비디오 영상이다. 붉은 바탕에 영어 대문자로 새겨진 문구-'WHY DO WE NEED INTERNATIONAL INTERESTS'-가 7대의 모니터 위에 선명히 나타나며 관객의 눈을 사로 잡는다. 탈북 여성 10명의 증언이 한 사람씩 차분히 이어지고 상영시간은 약 15분이다. 증언에 참여한 여성들의 연령은 20대의 젊은 세대부터 60세가 넘은 세대까지 다양하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궤적을 지니지만, 모이면 하나의 집단적 목소리가 된다. 강제 북송을 두 차례나 겪은 여성, 중국에서 브로커에 의해 성적 상품으로 거래된 경험,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사연 등은 모두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이 목소리들은 단순한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생존과 저항,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물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장면, 끊어지는 문장, 잠시 흘러가는 침묵조차도 그 울림을 더욱 크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시공을 넘어 그들의 경험, 은폐되었던 고통이 관객의 마음에 전달된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인권 전시들이 주로 사진 기록이나 문서를 통해 ‘사실’을 제시했던 것과는 다르다. 《UNSEEN》은 감각과 공감을 통해 ‘경험’을 매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이 증언 공간은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라, 은폐된 역사를 발화하는 무대가 된다. 국적과 배경을 떠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며, 북한 여성들을 위한 국제적 목소리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국 작가로 중국내 인권문제를 외부에 알렸던 위화는 그의 책에서 “목소리가 빛보다 더 멀리 간다”고 쓴 바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말처럼, 증언을 통해 더 멀리 퍼져 나갈 수 있는 공감의 힘을 보여준다. 《UNSEEN》은 침묵을 넘어선 목소리들이 세계를 향해 울려 퍼지는 변화의 촉매로 기능할 것이다.
국제 작가들의 예술적 공명
《UNSEEN》의 위층은 국제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북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명하며, 단순한 ‘해석’을 넘어 함께 서는 예술적 언어를 만들어냈다. 전시는 입구에서부터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Prayers / Self-Reliance and Renewal / Dignity and Quiet Defiance / Transformation”. 큐레이터는 이를 한국어로 간결히 정리해 “기도, 회복력, 저항, 그리고 희망”이라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는 작품을 바라보는 틀이자, 전시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의 흐름이 된다. 작품들은 고통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을 존엄과 회복, 변화를 향한 가능성으로 확장한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김용남의 <파고다 Pagoda 293> (2025)이다. 한 손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투명한 유리볼이 바닥에서 살짝 높인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작품제목이 암시하듯, 이는 산사 절 입구에 쌓이는 작은 돌탑, 기도와 소망을 담아 돌을 하나씩 올려둔 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유리볼 안에는 작은 클립이 들어 있다. 직접 유리를 불어 제작했는데, 작가는 유리볼 하나를 만들 때마다 그 과정에서 불교의 수행처럼 108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총 293개의 유리볼을 완성했다. 계산해 보면, 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행과 정성이 쌓였음을 의미한다. 작품을 마주하고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관객은 자연스레 숙연해진다. 김용남 작가가 바란 것은 단지 조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한반도의 통일과 더 나아가 약자가 억압과 폭력으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파고다293>은 작은 유리 구 안에 기도와 희망, 그리고 평화를 향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 옆에 놓인 리비아 투르코(Livia Turco)의 청동 조각 <성 세바스티아누스>(2025)는 고통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기독교 성인 세바스티아누스가 기둥에 묶여 온몸에 화살을 맞은 채 순교하는 장면은 서양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이미지를 여성의 형상으로 대체하며, 오늘날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겪는 고통을 알리고자 했다. 특히 북한 여성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이번 전시의 상징 색인 붉은색의 화살과 밧줄에 사용되었다. 두 발의 화살을 맞고도 꿋꿋이 서 있는 인물의 모습은, 억압에도 무너지지 않는 여성들의 회복력과 존엄을 상징한다. 투르코의 조각은 몸과 삶에 새겨진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그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내구성이 진정한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장 전반에는 이처럼 붉은색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큐레이터는 이 색이 피와 폭력을 암시하는 동시에, 억압을 견디며 살아남는 힘의 색으로 읽힌다고 강조했다.
미아 에넬(Mia Enell)의 대형 회화 <분홍새 Pink Bird> (2021) 역시 이러한 맥락을 이어간다. 화면 속 두 여성은 등을 맞대고 서 있으며, 한쪽의 등에는 연약한 녹색 날개가 돋아 있다. 그녀의 몸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다른 여성의 몸과 만나 하나의 연못을 이루고, 어깨 위의 작은 분홍새는 희망과 치유의 징표처럼 보인다. 크기만 해도 높이 190.5㎝, 폭 234㎝에 달하는 이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상실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와 희망을 시각화한다. 에넬의 또 다른 작업 <빨간 실 Red Yarn>(2023)은 규모는 작지만 메시지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손을 이어주는 붉은 실은 긴장과 불안을 품으면서도, 동시에 연대와 생존을 지탱하는 힘을 상징한다. 붉은 실의 모티프는 전시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MoMA, 휘트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무대에서 활동해온 릴리아나 포터(Liliana Porter)는 이번 전시에 설치작업 <아나키스트 The Anarchist>와 <붉은 모래 Red Sand>를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강렬한 붉은색이 압도적인데, 특히 <아나키스트>는 제목이 암시하듯 기존의 질서를 깨고 다른 질서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작은 인형과 붉은 실이 어우러진 작품은 체제의 규칙과 억압을 전복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저항의 제스처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트레이시 와이즈먼(Tracy Weisman)의 조각 <바리공주 Princess Bari>이다. 한국 설화 ‘바리공주’를 차용한 이 작품은, 버려진 딸이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까지 가 약수를 구하고 마침내 신이 되는 이야기로, 희생과 구원의 서사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서사를 통해 여성의 내구성과 변신을 기념한다. 오랫동안 모아온 프랑스 수제 모자 장식과 벨벳 천으로 만든 꽃 장식들이 흰 한복 차림의 인물 위에 장식되었다. 인물은 가만히 선 자세가 아니라 한 발을 들어 달리려는 듯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긴 머리 위에는 금빛 봉황 화환이 씌워져 있다. 흰 한복은 상실과 애도의 색이지만, 화려한 장식과 봉황은 존엄과 재생의 힘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북한 여성들의 고통과 증언을 단순한 피해의 서사가 아니라, 존엄과 저항의 서사로 치환하려는 시도이다. 상실을 넘어 존엄으로 나아가는 힘, 억압을 넘어 변화를 향한 가능성이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조민상의 키네틱 설치 작품 <끝내 나는 일어선다 Still I Rise>(2025)는 제목 그대로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에서 차용한 문장을 작품의 정신으로 삼았다. 전시장에는 관객이 직접 바퀴를 굴려볼 수 있는 개조된 자전거가 놓여 있다. 힘차게 바퀴를 돌리면, 자전거와 연결된 새들이 서서히 날개짓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놀이적 장치가 아니다. 노력과 행위가 방만자에서 참여자가 되고, 그 힘이 나아가 ‘비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마야 안젤루의 시가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나는 일어선다”라고 선언했듯이, 조민상의 작업 역시 끊임없이 일어서는 결의와 성취로 나아가는 힘을 담고 있다. 자전거의 바퀴처럼 성취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꾸준한 발길질과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향한다. 작품은 그 과정을 통해 자유와 존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관객에게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선미의 <비나이다 비나이다 Bi Na I Da, Bi Na I Da (I Beg of You)>는 폐안경 렌즈를 직조하듯 엮어 만든 거대한 달항아리 형상의 설치 작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긁힘과 흠집이 가득한 렌즈 조각들이 이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매끄러운 구체로 응집된다.
작가는 그 내부에 전구를 설치해 불을 밝혔다. 빛은 수많은 렌즈를 통과하며 은은하게 퍼져 나와, 어둠 속에서 관객의 길을 비추는 희망의 등불처럼 다가온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시선을 담았던 물건’이 간직한 시간을 불러내어 사람-재료-기억을 잇는다. 동시에 달항아리의 은유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길잡이가 되는 내적 빛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강영희의 먹으로 일필휘지한 듯한 추상 회화 <퍼덕이는 날개Beating Wings>(2025)는 탈북 여성들이 남긴 글과 메모를 바탕으로, 흐릿한 글씨와 번진 색채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기억이 희망의 언어로 변환되는 순간을 표현한다.
이처럼 국제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가 제시한 네 가지 주제, ‘기도, 회복, 저항, 희망’을 매개로 증언과 공명했다. 기도의 속삭임에서 시작해 회복의 힘, 저항의 의지, 그리고 희망의 빛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히 북한 여성들의 고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변화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자리로 이끌어, 예술이 증언의 목소리를 더 큰 울림으로 확장시킨다.
미디어의 확장- 사운드와 공공 공간으로
전시의 울림은 전시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UNSEEN》은 시각 예술을 넘어 사운드 아트와 공공 미디어로 확장되었다. 탈북 여성들의 목소리와 증언은 사운드 아트와 결합해 감각적 깊이를 더해서 전시장에 전달되고 있다. 작곡가 김야작(H.S Kim)의 오리지널 곡 <Her Light: Unseen>은 그래미와 에미 수상자인 클라크 저메인(Clark Germain)과 매튜 카이센스키(Matthew Kajcienski)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이 곡은 북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예술적 공감과 국제적 연대의 선율로 변환시켰다.
이번 《UNSEEN》의 울림은 전시장을 넘어, 뉴욕의 심장부에서도 퍼졌다. 북한 여성들의 초상 위에 붉은 점이 찍힌 강렬한 이미지가 타임스퀘어 전광판과 맨해튼 전역 68곳의 뉴스 스탠드 광고판에 동시에 등장한 것은 이 전시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시각 캠페인(A Global Campaign of Visibility)’은 세계적 디자인 그룹 펜타그램(Pentagram)의 파트너 마리나 윌러(Marina Willer)가 기획했고, 사진은The Atlas of Beauty로 잘 알려진 루마니아 사진가 미하엘라 노록(Mihaela Noroc)이 직접 북한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 위에 찍힌 붉은 점은 폭력의 흔적이자 동시에 꺾이지 않는 회복력의 표식이었다. 네온사인과 광고판이 쉼 없이 쏟아내는 화려한 빛 속에서도, 붉은 점으로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들은 오히려 더욱 강한 이미지와 호기심을 주었다. 그 얼굴들, '보이지 않아야 했던 존재들'은 뉴욕 한복판에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다. 타임스퀘어라는 세계의 무대 위에서 북한 여성들은 더 이상 감춰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 전시가 만들어낸 가장 극적이고도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사회적 파급과 후원의 힘
김승민 큐레이터는 전시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전시장에 오래 머무는 분들을 보면서, 아, 전시의 본심이 전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실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인권 신장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1년이 넘는 준비 끝에 성사되었다. 서울, 파리, 런던,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지에 흩어진 팀이 슬로건 하나를 정하기까지 수많은 논의와 리서치를 거쳐 협업을 이어갔다. 주관사 마인드마그넷(MindMagnet)의 지원도 컸지만, 《UNSEEN》이 전시장 안팎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음악가, 인권 활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적 후원과 제도적 지원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CSW, 한보이스(Hanvoice), 국제인권연맹(FIDH), 북한반 인도범죄철폐 국제연대(ICNK), 북한민주화네트워크(NKnet) 등 인권 단체들의 협력이 아니었다면 이 전시가 지닌 사회적 파급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UNSEEN》은 우리에게 묻는다. 예술 전시가 사회적 파급력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예술가의 상상력, 관객의 공감,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후원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힘의 결집이다. 이번 전시는 그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현수정은 조선대학교에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앤드로지니 차용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 '미술오케스트라'와 2011년 실비아 월드 앤 포김 미술관 'Breathing' 전시를 큐레이팅 했다. 지금은 뉴욕을 중심으로 큐레이터, 미술사 강사, 아카이브 연구원, 비평가로 활동하며 몽클레어 주립대학교, 뉴욕 시립 기술대학, 맨해튼빌 칼리지에서 아시아 미술과 현대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전시로 'Blood and Tears: Portrayals of Gwangju’s Democratic Struggle'(2022, 안야 & 앤드류 시바 갤러리), 'Noodles, Rice, and Bread'(2022, Artego 갤러리),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2024, AHL재단 갤러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