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트럼프의 횡포 찐 속셈은?
트럼프의 진짜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트럼프의 국경을 초월한 백골징포…국민 1인 1,000만원 부담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한 가지 해야만 하겠다. 나는 이런저런 사유들로 말미암아 현재 은행에서 대출이 꽁꽁 막힌 처지이다. 근자에 목돈이 긴급히 필요해 500만원 정도를 제1금융권에서 융통하려 했는데 4대 사회보험에 일정 기간 이상 동안 가입된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까닭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게 시중은행 직원의 꼼꼼하면서도 냉정한 설명이었다.
역대 정부들은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구체적으로는 서울 지역의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걸핏하면 가계 대출을 조이곤 했다. 정부의 고충과 입장은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누군들 빚을 내고 싶어 빚을 내겠나? 급전이 없으면 당장 곤란한 상태에 빠지는 터라 어쩔 수 없이 은행 대출창구를 기웃거리는 것이지.
전문적 경제 칼럼니스트도 아닌 필자가 뜬금없이 왜 대출과 관련된 푸념을 장황하게 늘어놨느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이재명 정부에 투자금 명목으로 요구한 3,500억 달러를 남한의 전체 인구수로 나눈 다음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갓 태어나 강보에 싸여있는 갓난아기로부터 거동이 불편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민 1인당 무려 천만 원 가까운 거금을 부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엄마 곁에 누워 잠든 갓난아기도, 요양원에서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어르신도 은행 대출이 불가함은 물론이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딱한 지경에 놓여 있는 5,200만 한국인들을 향해 3,500억 달러를 즉각 상납하라고 윽박지르는 트럼프와 그 열혈 지지층의 행동은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을 상징하는 백골징포나,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강요했던 미곡 공출에 버금가는 약탈적 폭거일 테다.
인류 최초로 컴퓨터와 전자계산기를 발명한 나라인 미국이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금액을 도저히 마련해오지 못할 걸 모를 리 없다. 미국 측의 요구 조건에 동의했다면 자신은 탄핵을 당했을 것이란 이재명 대통령의 '타임'지 인터뷰 내용은 엄살이 아니다. 설령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환생해 권좌에 복귀한들 미국에 아낌없이 퍼주기 위해 국민 한 사람당 천만 원을 내놓게 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미국의 요구에 무리하게 응하려다가 만에 하나 한국 경제가 결딴이 나면 그 불똥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할 게 분명하다. 세계가 망해도 미국 혼자 건재할 수 있는 상황은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일례로 미국은 자기 손으로 1년에 겨우 군함 두 척 간신히 건조하는 취약한 대외 의존형 국가가 돼버린 게 작금의 현실이다. 심지어 미 해군 주력 함정들에서 승조원들의 이동에 사용되는 선박용 사다리마저 알고 보면 거의 모두 중국제라고 한다.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였다. 시장경제 체제의 선도자였다. 포드 자동차와 코카콜라와 아이폰의 나라 미국이 늘 경제적 합리성에 근거해 정책을 결정하리라는 통념은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문제는 이런 통념이 깨질 경우이다.
일본은 태평양 함대만 분쇄되면 미국이 평화회담에 나올 거라고 기대하며 하와의 제도의 진주만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했다. 미국이 목전의 경제적 실리만 중시하고 추구하는 국가였다면 일본군 대본영의 낙관적 예상대로 강화협상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미합중국은 아시아 최강국인 일본제국과의 전면전쟁에 돌입하는 지극히 비합리적 선택을 불사했다. 미국이 군수산업을 대대적으로 진흥시켜 대공황에서 탈출하려고 제2차 세계대전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전했다는 일각의 분석과 평가는 음모론 반, 결과론 반의 단세포적 시각의 산물일 따름이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는 나구모 제독이 지휘하는 항공모함 기동부대로부터 진주만 공격이 대성공했다는 무전 보고가 들어오자 “우리는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는 탄식 어린 혼잣말을 내뱉었다. 보통의 야수는 빈속을 채우면 살생을 멈춘다. 일본이 깨운 잠자는 사자는 배가 불러야 만족하는 짐승이 아니었다. 앙갚음을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맹수였다. 훗날 야마모토가 탑승한 항공기를 미군 전투기들이 남태평양 부건빌 섬 상공에서 기습해 격추한 군사작전의 명칭이 ‘복수(Operation Vengeance)’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평소 야마모토는 미국과의 화친을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바보야, 이번 판에서는 경제가 문제가 아니야
남한 사회에서는 미국이 단지 경제적 이익의 증진을 꾀하려 한국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틀에 박힌 판단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과 일본 양국을 겨냥한 트럼프와 마가(MAGA) 세력의 무차별적 총공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완전히 백해무익한 짓거리인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더 두렵고 무섭다. 트럼프 정권을 탄생시킨 북미 대륙의 사회적 집단과 계층이 경제 너머의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개연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 힘든 탓이다. 트럼프는 영국을 방문해 국왕 찰스 3세를 위시한 왕실 가족을 만났을 때 그야말로 순한 양이 되었다. 그는 얼굴에 만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영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유럽연합(EU)을 무모하게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감행한 이후의 영국은 매력적 투자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인이 지닌 고정관념 안의 트럼프는 돈만 밝히는 인간이다. 이익이 안 되는 일에는 손도 안 대는 인간이다. 저 욕심쟁이 트럼프가 손실로 이어질 게 뻔함에도 영국에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쏟아붓겠단다. 어쩌면 트럼프는 경제동물(Economic Animal)의 탈을 쓴 시대착오적 인종주의자(Racist)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견지로 바라보면 트럼프에게 윤석열 부활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한국의 전한길 부류는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을 편든 20세기 전반기의 어리석은 일부 아프리카 독립운동가들을 영락없이 연상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일본에는 5,500억 달러를, 한국에는 3,500억 달러를 지체 없이 자국으로 송금하라며 압력을 가일층 높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그의 폭주와 광기를 제어할 이른바 어른들이 전연 보이지 않는다. 부통령 밴스와 상무장관 러트닉처럼 맹목적 충성을 일삼는 돌격대만 득시글대는 양상이다.
트럼프의 요구에 무기력하게 순응하면 한국과 일본 경제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서 차례로 거덜 날 게 불 보듯 환하다. 사즉생의 결연한 각오와 자세에도 최소한의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트럼프의 요구를 얌전히 들어줘야 한다는 소리는 목숨을 부지하려면 온몸의 혈액을 빼줘야 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저간의 사정이 이렇다면 트럼프와 마가의 궁극적 노림수는 한국과 일본 경제를 단순히 착취하는 게 아니라 아예 파괴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에 남은 선택지는 유일하다. 일단 인상된 관세를 물어주면서 내년 미국 중간선거 승패가 가려질 때까지 범국가적 차원에서 미국을 상대로 농성하는 전략뿐이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70년을 농성해왔다. 우리는 1년 1개월만 버티면 된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전 미국인을 격분시켰지만, 트럼프의 한국과 일본을 향한 화염과 분노에는 미국인의 절반도 채 공감하지 않고 있다. 시간은 한국과 일본 편이지 트럼프 편은 아니라 하겠다.
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평화적 농성이 성공하려면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만 한다. 농성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막대한 고통을 정권을 쥐고 있는 이재명 정부 인사들과 집권 여당 구성원들부터 솔선수범해 분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데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가히 축제 분위기이다. 나는 이 부분이 못내 불안하고 찜찜하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