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말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
화성(華城)은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기 위해 축조하였다. 선왕(先王)인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인 아버지의 무덤을 서울 휘경동에서 수원 화성으로 옮기면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참배할 때 머물기 위해 1796년에 건설한 신도시다.
화성은 둘레가 5,744m로 성곽은 방위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성곽 안에는 행궁(行宮)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일반적인 궁궐과는 다르다. 축성과정과 내역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편찬하여, 지금도 이 책에 따라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행궁 앞 널찍한 광장에는 홍살문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홍살문 양 옆 멀찍이 포졸을 세워놓았다. 액운을 물리치려면 좀 우악스러워야 하겠지만, 무섭기보단 자상하게 보여 ‘안내자’ 같이 느껴졌다. 무료 매표를 하고 행궁의 신풍문을 들어서니 집사청 입구의 600년 된 느티나무가 시멘트, 받침대 등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아 계절을 감지하고 붉은 잎으로 변하고 있었다.
좌익문, 중양문을 지나 본당이라 할 수 있는 봉수당에 이르니 그곳 앞에 난데없이 화사한 ‘복사꽃’조각(작가 강민정)을 양 옆에 설치해놓았다. 무병장수나 무릉도원을 상징하는 의미는 있으나 궁궐 건물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그곳 뿐아니라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화령전 운한각에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여 헌화했던 효도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효의 가치를 느끼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때마침 봉수당 앞에서는 수원의 아마추어 그룹이 시조창을 선사하고 있어 잠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 채의 행궁 부속 건물에는 궁중에서 일하던 환관이나 나인, 상궁의 모습, 수라상과 정조가 어머니 회갑연에 차렸던 진찬상 모형, 부엌 용품, 사용하던 악기, 드라마 대장금 촬영 당시의 모습 재현 등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특히 창고인 서리청에는 ‘뒤주’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았는데, 마침 어린 아이들이 조르르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선생님은 통제만 할뿐 설명을 하지 않는데, 그들이 그곳 ‘뒤주’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궁을 나와 보수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우화관’옆 주택가를 지나니 팔달산 중턱에 큼지막한 정조대왕 동상이 서 있다. 조선조에서 세종대왕 다음으로 훌륭한 임금으로 숭앙받고 있어 크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게 크다. 포장된 순환도로를 가로질러 성벽길로 오르려다보니 관광용 어차가 지나간다. 성곽둘레가 5.7km이니 빠른 시간에 둘러보기기 위해서는 타는 것이 편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곽을 따라 오르니 복원, 보수한 성곽이지만 잘 정비되어 있고 산책로나 탐방로도 말끔하다. 팔달산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현판이 붙은 지휘소가 나타난다. 서쪽에 있다고 ‘서장대’로도 불린다. 마룻 바닥에는 올라갈 수 있으나 누각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1층 천정에는 정조가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읊었다는 “성곽은 높고 군사들의 사기는 호기롭다”는 시 현판이 붙어 있다. 뒤편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기계식 활 ‘노(弩)’를 쏘는 서노대(西弩臺)가 설치되어 군사지휘소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름길인 산길로 내려오니 계단이 많아 좀 불편했으며, 중간지점에는 성의 신(城神)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인 성신사(城神祠)를 복원해 놓았고, 행궁 앞 광장에서 볼 수 있었던 금불상이 설치된 대승원이 소재하고 있다. 1차 복원한 행궁 좌우의 별부(別廚, 정조행차 시 음식을 준비하고 관련문서를 보관하던 곳)와 우화관(于華館,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나 연회장으로 이용)은 복원 중에 있어 가림막이 쳐져 있다. 담쟁이 넝쿨이 곱게 물든 수원문화재단 건물 옆에 기와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북쪽의 비상출입문인 북암문(北暗門)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남쪽인데 북암문? 추가설명이 없다. 광장 맞은편의 정자인 여민각을 본 후 정조테마공원 공연장 신축공사장을 지나 보물 402호인 팔달문까지 걸었다. 통행 목적의 국보1호인 숭례문과 달리 팔달문은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외부로 돌출된 적대(敵臺)를 세웠다. 차가 다니지 않는 순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남문인 팔달문과 함께 화성의 상징인 장안문, 수로위에 지어진 화홍문,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망루인 공심돈(空心墩),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으로 불리기도 하는 동북각루와 감시공격 겸용시설인 성곽둘레의 각루(角樓), 은밀하게 군사와 물자가 드나드는 통로인 암문, 봉화대인 봉돈, 다섯 곳의 포루(鋪樓),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10곳의 치성(雉城)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시설물만 복원할 것이 아니라 민가나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료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황현탁은 미국, 일본, 영국, 파키스탄에서 문화홍보담당 외교관으로 15년간 근무했다. 각지에서 체험을 밑천 삼아 이곳 저곳을 누비며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펼쳐가고 있다.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등 여행 관련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