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시위'는 자해행위…‘외교 제도화' 기반 실용외교 해야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병행전략
지혜로운 외교관계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지만, 외교관계가 파탄날 경우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 과거 열강의 각축 속에 일본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됐던 조선의 패망도 그랬고, 최근 전쟁의 참화 속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된 우크라이나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롯한 중동 사태에서도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구촌에 외교가 사라지고, 미움과 혐오, 갈등과 대립, 테러와 전쟁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최근 국제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인 미중 대결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조건 미국의 편을 들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과 함께 중국 문제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갈등 축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극단적인 저주와 혐오 반응을 보이는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한 한국내 혐중 정서는 실제 시위와 집회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관계로 볼 때는 한미동맹을 중시하지만 지나친 중국 비하나 혐오는 바람직하지 않다.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기회의 땅이자 산업적 측면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람직한 외교 모델로 만들 것인지가 우리의 숙제일 것이다. 국제관계와 지정학적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한국의 국익을 높이는 외교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은 우리와 북한을 사이에 놓고 국경을 마주한 이웃국가다. 중국은 2024년 기준 14억2,519만명의 거대한 제국이다. 5,100만명인 대한민국의 28배다. 그런만큼 중국의 경제규모는 엄청나다. 중국에는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가 113개에 달한다. 인구 3,200만명인 충칭에 이어 2,000만명,1,000만명 도시가 즐비하다. 국토면적도 960만㎢로 10만㎢인 대한민국의 96배에 달한다. 그래서 올해로 수교 33년을 맞은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된 뒤, 2024년까지 22년째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2024년까지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올린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6,623억 9,970만달러(약 957조 8,300억원)에 달하며, 이는 25년 동안 매년 약 40조 원 정도의 흑자 수준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수출입 규모는 2,729억 달러로 단연 1위이며, 한미 간 1,999억 달러(2위)보다 730억 달러가 많다.
양국간 관광 교류도 활성화되어 있다. 2025년 1~4월 기간 동안 한국에 방문한 관광객 전체 558만 명 중 중국인 관광객 수는 157만 명으로, 단연 1위다. 2위 일본(104만 명), 3위 대만(55만 명)을 크게 앞선다. 이에 따른 관광 수입 및 경제 효과도 상당한 수준이다.
문화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탕수육, 자장면 등을 판매하는 수많은 중국식당뿐 아니라, 양꼬치, 마오타이 등 백주, 칭다오 하얼빈 맥주, 마라탕, 훠궈 등은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인의 식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케이팝(K-POP)’을 비롯한 ‘한류 문화’가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관련 산업들의 이익 창출 기회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경제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한국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점점 교류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상호 교류의 확대가 서로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홍콩과 중국의 경제특구인 선전(深川)을 몇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눈부신 발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선전에는 공식적으로는 1,70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2,60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특히 선전이 포함된 주강삼각지의 발전은 눈부셨다. 이 지역은 덩샤오핑 주석이 1979년 경제특구로 지정한 뒤 외국인 투자와 세제 우대, 토지 및 노동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개방하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이곳은 중국 하드웨어와 전자, 제조업의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으며, 화웨이, 텐센트 등 수많은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첨단기술, 연구개발, 인력, 자본, 스타트업이 모여든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컨테이너 처리량을 가진 대형 항구를 끼고 있어서, 제조품목들의 수출이 용이한 대규모 교통 물류망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에 따라 선전을 포함한 주강삼각지는 글로벌 제조 및 수출의 엔진이며, 홍콩을 중심으로 한 금융과 서비스의 핵심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경제 보고를 포기할 것인가? 한국이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중국과 경제관계를 이어가야 할 전략적 상관관계가 너무나 큰 사안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혐중 시위는 한중관계를 해치는 자해행위로서, 심각한 테러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체류하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공포감과 거리감을 심어주고,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사이의 교류를 단절시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권은 ‘가치외교’를 내세워 미일과의 공조를 굴종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을 사실상 잠재적 적성국으로 규정하며 한중 관계를 급속히 악화시켰다. 최악의 외교전략이었다. 이제는 그같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은 미중 무역 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정교한 실용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혐중 시위를 질타하고, 김민석 국무총리가 이에 대해 강력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이제는 우리의 국익을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되, 한중관계 역시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다. 관세 갈등 속에서 우군 확보를 노리는 중국의 호의적 태도를 존중하며 활용하는 동시에 우리 국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한중 간 대화와 소통을 강화해 수출 기반 강화와 공급망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안보 부문에서는 북한 비핵화와 도발 자제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성공하려면 국익 추구 외에도 자유롭고 개방된 상호 존중의 국제 질서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남북대화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핵심 자원 공급과 수출 시장의 다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미국과는 한미동맹과 신뢰를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는 균형 있는 관계를 설정해 위기를 막는 외교적 제도화와 절차화를 병행하는 데 있다.
김홍국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의 국정운영과 리더십, 협상력과 조정력, 국가보훈 등을 연구하고 현실정치에서 실천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 대변인을 지냈다. 언론인으로 청와대를 비롯 주요 영역을 취재했고, 대학에서는 국제정치학 박사로서, 정치학, 언론학, 정치커뮤니케이션과 스피치 등을 강의해왔다. <리더의 말하기> <넬슨 만델라 위대한 조정자>, <오바마 2.0>, <미국의 거장들> 등의 저서와 <대통령의 국정어젠다와 對 국회 협상에 관한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