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도리
일상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혁신
우주의 대법칙에는 현상과 진리의 양면이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의 법칙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법칙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현상 속에 불변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지만, 현상의 특성상 진리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상과 진리의 모순을 통섭하는 바른 도리를 찾을 때, 현실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고 진리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주역은 바로 그 도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역은 철저히 현상의 변화에 기초하고 있다. 현상은 형태와 작용 양면에서 양극적 요소의 대립과 중화(中和)로 유지된다. 양극적 모순은 주역에서 음양(陰陽)의 기호로 표현된다. 주역이 팔괘(八卦)의 상호작용으로 64개의 괘와 384개의 효(爻)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근본은 음양이다. 공자가 <계사전>에서 “음양이 번갈아 도는 것을 도라 한다”라고 정의한 것만 봐도, 주역이 음양의 도리를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음양을 이해하면, 현상에서 본질을 구현하는 근본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
현상의 법칙은 크게 변화와 관계로 나눌 수 있다. 하늘의 변화를 대표하는 괘는 위아래 6개 효가 모두 양효(陽爻)로 구성된 중천건(重天乾)이다. 땅의 관계를 대표하는 것은 6효가 모두 음(陰)인 중지곤(重地坤)이다. 세상은 변화의 근원인 중천건에서 발산해서 그 반면 관계인 중지곤에서 응축하는 이치가 상호작용하면서 수많은 변화를 거쳐 수화기제(水火旣濟)로 완결을 이루고, 다시 화수미제(火水未濟)의 미완으로 되돌아감을 반복하고 있다. 앞으로 64괘의 도리를 순서대로 살펴볼 예정이다.
64괘의 시작인 중천건은 어떤 현상뿐만 아니라 변화 자체의 대의를 담고 있다. 따라서 전체와 부분 양면에서, 변화의 핵심 도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중천건의 단사(彖辭)를 보면, 변화의 전체 요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변화의 단계를 6단계로 보고 있다. 변화의 근원은 정신이다. 양(陽)을 대표하는 중천건은 정신을 깨우는 이치를 담고 있다. 이 단사의 핵심은 “하늘의 변화에 맞게 성과 명을 각기 바르게 하고, 큰 조화에 이르도록 기르고 조율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太和)”라는 내용이다. 원문의 성명(性命)은 각각 마음과 몸을 의미한다. 심신 수행의 도리를 중천건의 상사(象辭)는 하늘에 비유하고 있다. 하늘의 운행처럼, “군자는 스스로 강건하게 힘씀으로써 그침이 없다(君子以自强不息).”
그럼 이제 단계별로 수행의 도리를 알아보자. 먼저 변화의 1단계인 초구(初九)의 양(陽)은 가장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직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이 상황을 효사는 단호하게 설명한다. “잠룡은 쓰지 않는다(潛龍勿用).” 잠룡의 단계에선, 심신의 기초를 다지면서 양기(陽氣)를 기르는 것이 현명하다. 잠룡에 관한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미 뜻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으면, 은사(隱士)로 지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변화의 2단계는 구이(九二)의 양(陽)이다. 비록 양의 기운이 한 단계 상승했지만,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덕(德)이 필요하다. 군자는 덕을 이루고 행동하는 법이다. 진리의 작용인 덕은 몸과 마음 그리고 삶에서 바른 도리를 널리 베풂으로써 함양할 수 있다. 기본 도리를 다지는 단계에서는 바른 스승과 도반을 만나 소통하고 협력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핵심은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利見大人)”라는 내용이다. 수행은 바른 인연을 닦는 것이라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변화의 3단계인 구삼(九三)은 인생 주기로 비유하면 청년기에 해당한다. 양기(陽氣)가 충천하는 시기인 만큼 변화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양기의 지나친 발산을 조절하는 도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따라서 “종일 쉼 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도 두려워하듯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終日乾乾, 夕惕若)”라는 효사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공자는 이 단계의 도리를 한마디로 “반복하는 것이 도다(反復道也)”라고 말했다. 반복의 도리는 말과 행동의 진실성과 생계를 위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성실성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바른 도리의 생활을 반복함으로써 품성이 성숙하면, 어느 순간에 자기혁신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변화의 4단계인 구사(九四)는 출사의 과정이다. “혹 도약하다 연못으로 다시 들어가도, 잘못이 없다(或躍在淵, 无咎)”라는 효사는 그 과정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다양한 경륜을 쌓기 위함임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관한 부연 설명으로 공자는 “군자가 덕을 쌓아가고 학업을 닦는 일은 시대에 맞게 하고자 함이다(君子進德修業, 慾及時也)"라고 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인재상도 달라지므로, 그에 상응하는 인간교육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변화의 5단계인 구오(九五)에 이르면, 드디어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양극이 맞물려 있는 현상 세계에서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큰일을 도모할 때도 협력자가 필요하다. 효사도 이에 관한 도리를 담고 있다. “용이 하늘을 나는데,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 여기서 대인(大人)은, 기업에 적용하면, 여러 영역에 있는 바른 뜻을 지닌 경영자, 멘토, 또는 바른말 하는 임직원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 뜻을 가진 사람들은 동기상구(同氣相求)의 원리에 따라 서로 상응하기 마련이다.
상구(上九)는 변화의 마지막 6단계다. 물리적 현상의 변화는 한계가 있다. 효사는 그에 대한 경책을 담고 있다.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亢龍有悔).” 원문의 항(亢)은 도리를 모르고 날뛰는 모습을 의미한다. 물리적 한계를 도리에 맞지 않게 벗어나려는 순간, 안 좋은 상황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 한계를 벗어나려면, 높은 위치에서 잠시 물러나 새롭게 정신을 깨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명하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도리에 맞는 수행이다.
변화를 대표하는 중천건에는 다른 괘에 없는 용구(用九)가 있다. 구(九)는 양(陽)을 대표하므로, 용구는 변화에 대응하는 도리를 함축하고 있다. “뭇 용이 머리를 감추니, 길하다(見群龍无首, 吉).” 여기서 핵심은 원문의 무수(无首)다. 이에 관한 자세한 해석은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바른 마음가짐>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인간교육과 수행의 측면에서 무수의 핵심을 얘기하겠다.
무수는 다른 말로 하면 무아(無我)와 같다. 일체의 분별심, 편견, 아집, 집착 등에 매이지 않을 때, 관념과 물질의 모든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아는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대립에서 벗어나 일체 존재와 조화로운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공자가 이상향으로 생각한 대동사회를 이루는 필수조건이 무수라면, 석가가 말씀한 무아는 우주의 모든 존재를 하나로 아우르는 화엄세계를 이루는 근본 바탕이다. 모든 성인(聖人)이 완전한 자유를 지향한 점에서, 우주 변화의 궁극은 무수, 무아의 걸림 없는 삶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른 정신이다. 공자가 중천건으로 주역을 시작한 이치이기도 하다. 석가도 수행의 기본을 정의(正意)에 두었다. 바른 뜻이 확고하게 바로 서면, 수행의 목적을 잃지 않게 된다. 미국의 공자로 평가되는 에머슨도 초절주의를 알리는 소책자 <자연>에서, “정신의 유입에 수반하여 그에 상응하는 사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미국의 정신 에머슨>을 참고하기 바란다.
에머슨의 말은 동학의 개벽 사상을 연상시킨다. 그 본뜻을 보면 석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다르지 않다. 또한, 그 뜻을 확대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한 예수의 말과도 상통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듯이, 정보의 파동이 물질의 입자를 구성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AI의 바른 활용도 바른 정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동석은 에머슨 전문가로, 그가 번역한 <자연>은 BTS RM이 읽어서 꾸준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때 서남대학교 영문과에 재직했지만, 2007년 사회에 나와서 특별한 인연으로 수행(修行)을 연구했다. 현재 AI 시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수행의 원리를 다방면으로 해석, <주역 인생전략>을 비롯해 <경계를 넘어 통합을 보다>, <나를 찾을 결심>,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 <어둠을 밝히는 지혜>, <미국의 정신 에머슨> 등 15권의 관련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