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디지털 소외계층 금융난민 만드는 '은행 점포 축소'
코로나19 이후 디지털화 추세로 은행 점포가 눈에 띠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디지털 활용이 자유롭지 못한 고령층은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서민들이 사는 지역은 현금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급격한 은행 점포 축소가 유발하는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이 기사는 국금융산업노동산업조합 KB국민은행지부의 제안을 받아 취재됐습니다. /편집인 주
은행 점포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 5년 간 매해 평균 137개, 한 달 평균 10개 이상의 시중 은행 점포가 자취를 감췄다. 문제는 은행 점포 접근성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돈이 많이 모이는 서울 강남 지역이나 상업 지구에서는 은행 점포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낮거나 고령자 비율이 높은 외곽 지역에서 은행 점포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은행 점포 축소의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확대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 보급의 보편화로 인터넷 뱅킹 등 디지털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이나 디지털 세대에게 은행 점포 축소는 치명적이지 않다. 과거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 처리했던 은행 업무를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려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디지털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 농어민, 장애인, 저소득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이다. 보안을 중시하는 금융 앱의 특성 때문에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금융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본인인증을 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소외가 금융소외로 이어지는 구조다.
“인터넷뱅킹 믿지도 못하지만 할 줄도 몰라”... 디지털 소외층 금융 혜택 불이익
# 서울 마포 소재 오피스 빌딩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경기 김포에 거주하는 최모씨(67)는 “인터넷 뱅킹은 믿지도 못하지만 할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두서너 번 은행에 가서 급여통장을 정리하고 공과금 등을 납부하는데, 한 번 갈 때 30~40분씩 기다리기는 하지만 50년 넘게 그렇게 은행 일을 봐와서 딱히 은행에 직접 가는 게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씨는 비대면 채널을 통한 적금 가입, 대출 개설시 금리 우대 등 별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국회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받은 5대 시중은행의 연도별 적금 비대면 가입 비율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 적금 가입자의 80.9%는 점포를 찾아가 대면 가입을 했다. 반면 2030 적금 가입자의 82.8%는 비대면 채널을 통해 상품에 가입했다. 시중은행들이 경영구조 개선을 이유로 점포 축소에 방점을 두고 비대면 거래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노령층 대부분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령층 적금 가입자 대부분이 우대금리 등의 혜택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17일 시중은행 점포에서 만난 70대 B씨는 30분 이상의 긴 대기 시간에도 불구하고 은행 창구를 직접 찾은 이유를 묻자 “인터넷이 편하다고 해서 인터넷 뱅킹을 하다 뭘 잘못 눌러서 돈을 더 많이 송금한 적이 있는데, 금방 잘못을 알아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생했다"면서 "그냥 은행에 직접 와서 송금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B씨는 보이스피싱을 의식한 듯,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답변도 회피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과 복잡한 금융 앱은 고령층의 잦은 ‘착오거래’를 유발한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고령층의 착오거래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보다는 비대면 거래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점포 축소이후 디지털 세대도 ‘현금 접근성’ 떨어져
# 서울 노원구 월계2동에 사는 장애인 최모씨(38)는 지난 주말 현금 인출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헛걸음을 했다. 주거지 인근에 있던 거래은행 점포가 폐쇄되면서 ATM 기기마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송금이나 공과금 납부 등은 인터넷뱅킹을 통해 처리할 수 있지만 현금인출을 하려면 은행점포나 자동화기기를 찾을 수밖에 없다. 최씨는 주거지 인근 편의점 등에 설치된 현금 인출기를 사용할 경우 발생하는 1300원의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전동휠체어로 20여분을 이동해 현금을 인출하고, 또 다시 20여분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현금 접근성’ 보장은 시중은행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의 급격하고도 공격적인 점포 축소로 시민들의 현금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등은 인터넷뱅킹이나 페이 앱 결제 등 디지털 지불서비스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은행 점포 축소로 ATM 기기마저 사라진 도심 외곽 등에서는 취약계층들이 현금을 찾기 위해 교통편을 이용하거나 다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은행 점포 축소 명분은 '수익성 악화'... 실상은 '코로나' 이후 역대급 실적
코로나19 팬데믹은 순식간에 삶의 양태를 뒤바꿔 놓았다. 사람 간 접촉과 집합을 경계하는 사회분위기가 장기간 형성되면서 ‘언택트’가 대세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고령층과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은 비대면 서비스가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금융당국은 디지털 취약계층이 금융소외 계층으로 전락하는 추세를 둔화시키기 위해 은행 점포 축소를 규제해왔다.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지만 점포 폐쇄 속도를 완화해 금융 소외 계층의 급격한 확대를 완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던 2018년~2019년에는 점포 폐쇄 속도가 둔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점포 축소 속도를 완화하던 은행권에 코로나19는 호재로 작용했다. 시중은행들은 코로나19 시대 '언택트' 분위기에 편승한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를 명분으로 점포 축소를 가속화해왔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9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점포 폐쇄 규제에 적극적이었던 2018년에는 23개, 그 다음해인 2019년에는 57개 점포가 폐쇄됐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 시즌인 2020년부터 2021년 6월말까지 총 383개의 은행 점포가 폐쇄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뉴스버스 통화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점포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뱅킹이 출연한 이후부터 꾸준히 비대면 채널 쪽으로 고객들의 이동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더욱이 코로나19로 점포 방문 인원이 뚝 끊기다시피할 정도로 줄어 점포 운용 수익성도 크게 악화해 점포 축소가 불가피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행 발표 자료 등을 봐도 금융소비자들의 은행 창구 거래가 확연하게 준 게 객관적 수치로 확인된다"면서 "핀테크 등을 통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 개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포 운용 등에 따른 운용 수익성 악화를 점포 폐쇄의 이유로 언급했지만 시중은행들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은행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대 금융그룹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8조원,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0조 8000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조 원가량 증가한 수치다.(금융감독원,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영업실적, 2021년 8월)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로 위기에 내몰린 가계와 기업의 대출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대박 행진’을 이어가면서도 금융 자산이 많지 않은 디지털 소외계층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점포폐쇄 문제는 결국 은행의 인사권과 경영권의 문제로 사측의 권한이다”라면서 “하지만 점포 폐쇄가 가속되면 노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측과 관련 TF 구성을 산별협약 때 제의했다"고 말했다.
은행 사회적 책임도 염두에 둬야
은행도 일반기업과 같이 수익성이 확보돼야만 영속할 수 있다. 동시에 은행은 국민경제를 떠받치는 제도의 하나다. 모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갖지만 다른 부문 기업에 비해 은행의 공적 기능이 특히 강조되는 것은 은행이 어떤 경영이념을 갖느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크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부실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정부는 64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공적자금은 결국 세금에서 충당되는 비용이다. 디지털 소외계층도 은행 서비스의 편익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