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과 거꾸로 간 국힘 전당대회, 초유의 극우 지도부 탄생

‘반탄’ 극우 주장에 뒤덮이고 尹·김 그림자 어른거려 서구 극우세력 발호와 상황 달라…'분당대회' 귀결 가능성

2025-08-23     이중근 칼럼니스트

계엄과 탄핵 후 국민의힘을 이끌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22일 열렸다.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파(반탄파)인 김문수·장동혁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다. 누가 당선돼든 유력정당에서 극우 지도자가 최초로 당의 키를 쥐는 초유의 순간을 맞게 됐다.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에서도 신동욱과 김민수, 김재원 등 반탄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한국 보수정당의 종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2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청주오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에서 결선에 진출한 김문수, 장동혁 당 대표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전당대회의 특징은 민심과 당심이 극심한 괴리를 보였다는 점이다. 당원 선거인단 투표(8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20%)를 반영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았는데, 양자간 차이가 극명했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합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찬탄 조경태 후보가 20%로 1위를 기록했고, 김문수 후보가 14%로 뒤를 이었다. 안철수·장동혁 후보는 각각 11%였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반대로 나타났다. 장 후보가 33%로 1위, 김 후보가 30%를 기록했다. 아무리 당원이 당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이토록 집요하게 민심을 거스르는 당을 공당으로 인정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과연, 전당대회 중반부터 전한길을 등에 업은 장동혁 의원의 약진했다. 판사 출신인 장동혁은 2022년 충남 보령·서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3년차 정치인이다. 지난 3년 동안 한동훈계에서 순식간에 친윤계로, 불과 몇달만에 김문수를 능가하는 극우 후보가 되었다. 경선 토론 중 ‘한동훈 전 대표와 전한길씨 중 재·보궐 선거에서 누구를 공천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한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김문수보다 장동혁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 벌써 당내에서 나온다. 김문수는 친윤계를 견제하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장동혁이 되면 ‘윤어게인’ 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활개를 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서구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서 극우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을 추세로 보고 있을 지 모른다. 미국의 트럼프는 물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극우세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은 미국처럼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백인 노동자 층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 아니다. 인종갈등도 없고, 범죄 급증에 따른 사회 불안도 크지 않다. 유럽에서처럼 외국인 이민자들이 복지혜택 속에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하지도 않는다. 한국과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최근 네타냐후 정권의 막무가내 극우 행보에 이스라엘 내부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100만명이 길거리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극우 정책의 흐름을 주도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권도 부패 실상이 드러나면서 흔들리고 있다. 극우 정당의 발호는 각 국가의 조건에 따른 결과일뿐 대세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착각해서 안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일반 시민들의 이익을 표방하는 데 비해 국민의힘은 철지난 이념과 극단적 기독교 주장에 기대면서 사실이 아닌 주장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두 명의 대통령을 평화집회를 통해 탄핵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회복력을 보여준 대한민국 시민들이라면 더더욱 국민의힘에 퇴행에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80일간 이재명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이 대통령은 윤석열처럼 터무니없는 실책으로 정권을 내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방일을 앞두고 밝힌 대일본 정책은 놀랍도록 냉정하고 실용적이다. 경제정책 등에서도 유연하고 과감하게 혁신적인 정책을 시도할 가능성이 보인다. 적어도 무능하게 앉아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실정을 기다리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점점 설 땅이 좁아질 것이다. 

세 개의 특검 수사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온갖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 속칭 ‘이채양명주’ 의혹에 대한 수사가 이어진다면 연루자가 더 나올 것이다. 당에는 ‘통일교 당원 집단 가입’ 의혹이 불거져 있다. 2023년 전당대회 때 권성동 의원을 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 교인을 대거 권리당원으로 가입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들 수사들은 하나같이 범죄의 실체가 있는 것이어서 검찰이 억지로 엮어냈던 윤석열 정권의 수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이 먹히기 어렵다.  

‘윤석열의 멘토’라는 신평 변호사가 전당대회 이틀전 김건희씨를 접견한 뒤 전한 발언을 보면 이 새 지도부의 당이 어떻게 될 지 예상된다. 김씨는 “(한동훈 전 대표가) 그렇게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앞길에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를 하면 인물을 잘 키워야 한다고 말해달라’고도 했단다. 윤-김 부부는 윤석열에 반대하는 세력을 배신자 프레임에 가두면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김씨가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한 것은 거짓일뿐 뒤로는 당 대표를 자신들이 세운다는 뜻이다. 김문수와 장동혁은 전당대회에서 당의 혁신을 외쳤다. 하지만 윤-김 부부를 위해 더 강하게 이재명 정부와 싸우는 게 혁신이라고 한다면 누가 지지할까? 2003년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호화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당사에서 새로 시작해 마침내 집권했다. 이 당에는 그런 최소한의 도덕성과 염치조차 없다. 이번 전당대회는 결국 ‘분당대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