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박근혜 청와대 누가 '기자8명 해고' 조선 방상훈 사장 협박했을까?
“기자 8명에 대해 청와대가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했다”는 2018년 3월 2일 방상훈 사장의 발언은 왜 나왔을까? 처음엔 국정농단 사건 취재 과정을 다룬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전달하는 자리였던지라 국정농단 사건 보도들이 쏟아지기 직전, 박근혜 청와대와 갈등 국면에서의 힘들었던 장면을 회고하면서 나온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했다.
“그때는 참 힘들었다. 채동욱 사건도 있고 해서 트라우마 같은 게 있다”는 얘기로 시작됐다. 언론사 사장으로서 겪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뒤편의 ‘마음 고생’을 토로하는 걸로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
※ 채동욱 사건 : 조선일보가 2013년 9월 6일자 1면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채동욱은 “사실이 아니다”고 버티다 사표를 냈으나, 법무부가 진상규명을 하고 나서야 수리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불똥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된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작적 ‘찍어내기’였다. 조선일보의 정보 소스는 확인되진 않았다.
그런데 사장실을 내려온 뒤 전체 발언 내용의 맥락을 찬찬히 짚어보니, 책 내용을 ‘반박’하는 것이었고, 일종의 ‘경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제 책은 그날 전달했지만, 방 사장은 이미 책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한달 전 인쇄 직전의 원고를 보도본부장에게 건넸을 당시 본부장을 통해 이미 원고 내용을 검토했을 터였다. 그래서 본부장 편에 “알아서 잘 쓸 걸로 믿는다”는 얘기를 전달하라고 했을 것이다. “알아서 잘하라”는 건 ‘문제 되지 않도록 할 것으로 믿는다’는 강한 압박이었다.
박근혜 청와대, '기자 8명 해고하라' 방상훈 사장 협박
2018년 3월 2일 책을 전달하던 날 방 사장의 발언이다.
“(새누리당) 김진태가 송희영 주필 건을 터뜨리고 나서, 청와대가 8명의 인사 명단을 가져왔더라. 그리고 ‘이 사람들 그냥 두면 제2 제3 송희영이 터져나온다’고 협박을 했다. 제2 제3 돈 문제가 터지면, (조선일보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어서 돈 문제 걸린 사람들은 다 불러서 확인을 했다. ooo은 xxx와 골프 두 번 친 것을 잔뜩 부풀려 가져왔더라. 물론 당신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6명은 돈 문제라 확인했지만 당신과 이○○은 그게 아니어서 따로 부르지 않고 그냥 뒀다.”
이○○은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 1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넥슨, 5년 전 1326억 원에 사줬다>는 기사를 쓴 기자였다. 당시 이 기사의 파장으로 ‘우병우 정국’이 열렸다. 조선일보 기사가 제기한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과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는 여론이 커졌다.
※ 조선일보는 당시 기사와 관련 우병우와 소송전 끝에 3년 6개월 뒤인 2020년 1월 18일자 1면과 2면에 넥슨과의 ‘호의적 거래’가 없었다는 취지의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그 무렵 나는 7월 초부터 펭귄팀을 이끌면서 최순실의 하수인 ‘김종’과 ‘차은택’이 각각 체육계 황태자와 문화계 황태자로 전횡을 하고 있다고 고발한 데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돼 있다는 릴레이 기사를 완료한 상태였다. 그리고 ‘재단의 배후는 최순실’이라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였다.
반면 방상훈 사장이 거론한 다른 기자들은 골프 접대나 선물을 받은 정황이 있는 기자들이라고 했다. 문건을 보지는 못했으나, 방 사장의 워딩으로 보면 명단만 전달된 게 아니라 8명 각각 인물에 대해 사표를 받아야 하는 구체적 사유들이 명시돼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방 사장이 따로 불러 확인했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전달돼 온 문건에 동향과 이유가 적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와 이○○은 다른 문제였다는 것이다.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 분모였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청와대가 바로 직전 본보기로 공격한 송희영 주필 역시 호남 출신이었다. 그래서 출신지를 이유 삼아 찍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였다.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순간 도대체 나에 대해선 청와대가 뭘 근거로 적어와 사표를 받으라고 압박했는지가 궁금했다. ‘저는 무슨 이유였습니까’라는 질문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방 사장이 다른 얘기를 계속 이어가는 바람에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사장실을 나와서 더 궁금했던 건, 명단은 어디서 작성되고 누가 전달했을까였다. ‘제2, 제3 송희영 사태’ 운운하는 협박을 했다면 명단이 작성된 곳은 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실로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민정수석실일지라도 조선일보나 TV조선 내부 기자들의 동향을 훤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기자 8명의 동향이 파악돼 있고, 나를 콕 찝은 명단이 내려왔다면 그건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명단 작성 과정에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증거였다. 사기업 언론사 기자에 대한 사찰 행위였고, 또 해고까지 강요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었다. ‘대통령의 뜻’ 이라고 포장돼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개인적으로는 정권의 안하무인식 권력 남용을 도왔을 만한 인물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저 추정일 뿐이었다.
나는 “청와대가 기자 8명의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어 자리에선 그 대목에만 집중했다. 방 사장이 “굳이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는 나중에 밖에 나와서야 곰곰 생각하다가 방점은 이어지는 얘기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눈치챘다. 그 다음 얘기는 “그걸(청와대의 기자 해임 요구를) 수용할 순 없었지. 그렇게 되면 (언론사) 문을 닫아야 하는 거지”였다.
말하자면 ‘당신은 그 당시 박근혜 권력에 무릎 꿇은 것처럼 책에 써 놓은 것 같은데, 절대 굴복한 것이 아니다. 봐라, 청와대에서 기자 8명의 사표를 받으라고까지 나를 위협했지만, 내가 언론사와 기자들을 지키기 위해 다 뿌리치지 않았느냐. 당신이나 이○○을 아예 부르지도 않은 걸 보고도 그걸 모르겠느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책을 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총공세를 펼 당시 조선일보와 TV조선 내부를 거론하는 대목은 몇 번에 걸쳐 완곡하게 순화시키고 용어를 다듬어가며 가급적 직설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조선일보가 박근혜 권력의 위협에 굴욕을 겪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갈 순 없었다. 다음은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 몇 대목에서의 서술이다.
“(박근혜 의상실) CCTV영상을 보도해야 한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은 건 이런 박근혜의 강경한 입장에 움츠러든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268p)
“‘최순실’기사들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2016년) 10월 17일 이후에서야 야당발 의혹 제기지만 그나마 지면이 할애된다. 경위나 곡절이 어떻든 그 동안엔 ‘최순실’ ‘박근혜’ 앞에서 뒷걸음치는 조선일보였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277p)
“청와대가 어떻게 살벌하게 조여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9월 이후엔 ‘최순실’이 등장하지 않는 방송이 돼버렸다.” ( 「이렇게 시작되었다」 339p)
‘굴복했다’ ‘무릎꿇었다’고 썼던 원고를 최대한 순화시켜 ‘움츠러들었다’ ‘뒷걸음쳤다’는 표현으로 다듬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들에 대한 반론으로 보였다. 소위 ‘1등 신문’이라고 자부해 온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비록 두 세달의 짧은 기간이지만 권력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는 부분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취재가 돼 있는 기사조차 박근혜 권력의 엄포 때문에 못 내보냈다는 것은 ‘할말은 하는 신문, 권력 앞에 당당한 신문’을 내건 조선일보의 모토와 배치되는 일이다. 조선일보 사장으로서 이런 모순을 모를 리 없기 때문에 ‘굴복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애써 변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조선일보 홍준호 발행인이 2009년 1월 17일 편집국장에 취임할 당시 취임사. (조선일보 사보 2009년 1월 24일)
“조선일보에는 선배들이 물려준 ‘할 말은 하는 신문’의 전통이 있습니다. (중략) 다른 신문이 주눅들고 다른 기자들이 위축될수록 조선일보 기자들은 더욱 당당해져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권력에 대해 늘 당당히 말해온 신문'입니다. 그 전통을 굳건히 이어가겠습니다."
박근혜, 퇴진 막으려 민정수석 통해 언론사 사주들 청와대로 불러들여
그 다음 에피소드를 보면 맥락은 더 뚜렷해진다. 방상훈 사장의 이어지는 얘기다.
“(촛불 시위 정국에서) 박근혜가 여러 차례 실기했다. 최재경이 한번은 대통령이 뵙자고 한다고 연락해왔더라. 그래서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거냐, 아니면 그냥 얼굴만 보려고 하는 거냐’고 묻고, ‘자문을 구하는 거라면 퇴진 얘기를 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최재경이 ‘그건 아니다’고 해서 그럼 oo하고 xx (사주들) 먼저 보고 난 뒤 만나자고 했다. 그 뒤 oo과 xx 사주는 가서 1시간씩 보고 나왔다. 그런데 그 뒤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을 잡지 못하고 넘어가버렸다.”
※ 최재경 : 당시 민정수석 (2016년 10월 30일~2016년 12월 9일). 임명 23일 만인 11월 22일 사의 표명.
※ 여기서 방 사장이 언급한 퇴진은 대통령을 뺀 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2선 퇴진인지, 대통령 자리까지 물러나는 ‘완전 퇴진’인지에 대해선 분명하지 않다. 당시는 ‘2선 후퇴’ 주장과 ‘완전 퇴진’요구가 섞여 나오던 상황이었다.
앞 얘기와 맥락이 다른 에피소드라고 생각했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길래 잠자코 듣느라, 말을 꺼내는 배경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며칠 지나고서야 이 에피소드가 뜻하는 바를 짐작하게 됐다. ‘대통령이 오란다고 해서 곧바로 간 것도 아니고, 또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서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소리 다 꺼낸다’는 취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퇴진’을 얘기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는 건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그리고 ‘oo과 xx는 대통령이 오라니까 1시간씩 만나고 왔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사주로서 '자존심‘과 ‘기개’를 지켰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음직했다. ‘그런데도 당신 눈에는 조선일보가 박근혜 한테 굴복했던 것으로 보이느냐’는 취지였을 것이다.
방상훈 사장은 말미에는 ‘기자적 야성’을 강조하는 기자 정신 얘기로 돌아왔다.
“위에다 핑계대는 기자가 제일 바보 같은 기자다. 엎어버리고라도 쓰려고 해야 한다. 그게 기자다. 다만 위에서도 보는 게 다르니까, 위와 소통은 해야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칭찬인가 싶기도 하고 평소 생각과도 같길래 “그렇습니다. 네 맞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기자 정신도 다 좋은데 위와 소통을 잘 하라’는 얘기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역시 나와서 생각해보니 정반대의 뜻이었다. 그 순간엔 그걸 캐치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였다. ‘당신은 책에서 ’최순실 기사‘에 제동을 걸었다고 하는데, 윗 사람 탓하지 말고 그것 역시 당신 책임 아니냐’는 얘기였던 것이었다.
‘바보 같은 기자’는 서두에 꺼냈던 “청와대가 8명의 사표 요구로 협박했는데, 수용할 순 없었다”를 은연 중에 대비시키는 것 같았다. 결국 취지는 ‘나는 잘 버텼으니 회사가 박근혜 한테 굴복해서 ’최순실 기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탓은 하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됐다. ‘그 자리에서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반박이라도 했을텐데…’라는 후회를 했으나, 이미 버스는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대목이 박근혜 의상실 CCTV 영상을 쓰지 않았던 이유였다.
“있다는 건 보고 받았지만, 최순실이 박근혜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것 외에 뭐가 될까 싶었다. 그리고 그 때는 우병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왜 10월 24일 태블릿PC 보도 전까지 그토록 (박근혜 의상실) CCTV 영상 보도를 반대했는지는 의문이다”(「이렇게 시작되었다」 268p)고 기술했던 데 대한 답변이었다. 한마디로 “박근혜 의상실CCTV가 그렇게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고, 그때는 우병우 보도를 하느라 CCTV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TV조선 소속이었기에 애써 조선일보를 변호해주려고 책에 썼던 내용을 차용한 해명이었지만, 실제 진행된 상황과는 맞지 않는 모순된 변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