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다

방송 독립성 강화 방송법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막는 상법도 다 반대 대기업과 특정 지역에만 영합, 생계형 정치인 득세로 퇴행 가속 윤석열, 전한길과 결합 김문수 대표 당선은 당 해체의 출발점

2025-08-08     이중근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김문수 당대표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투게더포럼이 주최한 시국토론회에 참석해 극우성향의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 씨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밤,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막는다며 무제한 토론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처음 발언자로 나선 신동욱 의원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법안을 갖고 언론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며 “언론 개혁, 방송 개혁이라고 하지 말고 민주당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 민주노총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갓 정치에 입문한 앵커 출신 의원이 저렇게 망가졌나 하는 비애감이 들었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1987년 이후 방송민주화 투쟁에서 나온 핵심 주장, 곧 정권이 공영방송에 사장을 내리꽂는 관행을 막아달라는 최소한의 요청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은 문재인 정부 때 왜 이런 내용의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느냐고 시민들이 민주당을 압박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런 법안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개정 방송법대로 하더라도 공영방송이 바로 설지는 의문이다. 민영화된 YTN과 연합뉴스가 대주주인 연합뉴스TV 등 보도전문채널의 대표와 보도책임자를 3개월 내에 새로 임명하라는 부칙도 과도해 보인다. 하지만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새 제도를 효율적으로 시행하면서 해소하는 게 답이다. 그만큼 개정 방송법은 1987년 이후 지난 40년간 방송인들이 줄창 요구해온 염원을 담고 있다. 영국 BBC도 14명의 이사 중 5명은 정부(국왕), 나머지 9명은 회사가 위촉한 위원회에서 뽑는다. 이사 선임 주체를 다양화한 구조만 본다면, BBC보다 한국의 새 방송법이 오히려 공영방송의 중립성 확보에 더 가까이 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은 “방송장악 3법은 사실상 공영방송 소멸법”이라고 했는데, 언어도단이다. 그렇다면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에 한 짓은 무엇인가?

 상법 개정도 상황이 비슷하다. 상법 개정은 외환위기 당시 미국을 등에 업은 IMF의 요구로 시작됐다. 재벌 중심의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불합리하고, 경영이 불투명하다며 상법을 개정해 이를 해소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법 개정이 지지부진하면서 주주권 강화는 미뤄졌다. 그러다 ‘오너 리스크’가 일상화돼 있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될 수 없다며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당은 개미들이 무서워 1차 개정에는 찬성하고 또다시 대기업 편을 들면서 추가 개정을 막고 나섰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다시 법 개정을 막는다는 것인가? 최근 만난 재벌기업 출신 한 재계 인사는 “지금까지 대기업은 말만 하면 적대적 M&A로 외국에 국내 기업을 빼앗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례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1,400만 개미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대기업만 옹호하는 것은 국민의힘 스스로 자신들이 뒤쳐져 있음을 고백할 뿐이다. 

  국민의힘은 말끝마다 “국민만을 보면서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당은 국민에 관심이 없다. 걸핏하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용공에 반미친중 세력으로 몰아붙일뿐,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겪는 지는 외면한다. 자기들을 후원하는 대기업을 옹호하고, 특정 지역의 입맛에만 맞춘 말만 쏟아낸다. 시민들의 삶을 살피면서 보듬기는커녕 자신들이 만든 당리당략의 틀 안에 시민들을 가두고 있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정치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종국에는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생물은 서식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생존한다. 환경을 거스르는 생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난 7일 4개 여론조사기관의 공동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16%로 또다시 최저치를 기록했다. 8주 연속 하락해 민주당(44%)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구∙경북 지역(23%)에서도 민주당(37%)에 역전당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신들이 똘똘 뭉쳐 있으면 언젠가 다시 집권 기회가 온다고 믿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다. 국민의힘은 자리 보전에 급급한 생계형 정치인들이 지배하고 있다. 과거에 손절한 김문수를 되살려낸 일이나, 장동혁 같은 젊은 극우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선 상황은 그동안 이 당이 얼마나 퇴행했는 지를 보여준다. 시민의 지지를 회복할만한 눈곱만큼의 맹아도 이 당에는 없다. 

 국힘의 운명을 결정할 전당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김문수가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문수는 최근 “12.3 계엄으로 누가 죽거나 다쳤느냐”며 “(윤석열이) 입당을 신청하면 당연히 받아준다”고 했다. 얼뜨기 선동가 전한길이 주최한 토론회에 나가 그의 비위를 맞추며 한 말이다. 

 보수층 내에서도 국민의힘은 해체가 답이라는 말이 예사로 나온다. 국민의힘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단합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위헌정당으로 몰아붙여 해산을 추진해서도 아니다. 시대와 민심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위기의 핵심이다. 가짜뉴스를 늘어놓으며 철지난 이념에 붙들려 시민을 우습게 알기 때문이다. 보름 후 김문수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 이 당의 다음 수순은 자명해진다. 해체의 가는 길을 재촉할 뿐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