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차피 환타지 아닌가- 배준성 작가(하)

개인전 '화가의 옷- 무대에서' 서울 갤러리508에서 7월 30일까지

2025-06-25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2021년 전시 ‘화가의옷 - 작업실(At the studio)’은 화면 속 어린이가 만든 그림과 서구 고전 명화를 주제로 초현실적 장면을 연출한다. ‘작품 속 작품’에 대한 사실적 표현, 어린이 내래이터의 등장은 환타지 세계의 도래를 예견한다.

On the stage -tree story 5 oil on canvas 162.2 x 130.3cm 2024

환타지는 동아시아 전통 회화에도 등장한다. 2024년과 2025년 연이은 ‘온 더 스테이지(On the stage)’ 전시는 작가가 ‘그림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 중에 만난 모멘텀 작품들이다.

‘온 더 스테이지’’는 평면의 캔버스 공간을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무대로 설정하였다.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어린아이와 동물이 무대 풍경의 주인공이다.

작품이 정확하고 사실적 묘사가 될수록 관객은 제한적 이미지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이를 피해야 한다. 캔버스 평면은 움직일 수 없는 조건이다. 현실(작품이 걸린 공간)은 평면이 아니다. 무시할 수 없는 평면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온 더 스테이지는 편편한 평면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화가는 그 바탕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끼느냐에 따라 바탕의 반응으로 그림이 시작된다고 볼수 있다.”

여기서 ‘바탕’은 평면이기도 하고 그림의 영감, 모티브로도 이해된다. 작가는 그 바탕을 평면의 캔버스에 구현하여야 한다.

“온 더 스테이지는 당시의 주목(관심가진 주제와 소재)을 화면에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 (바탕 위에 선택된- 영감에서 출발한 몇몇)이미지들은 어릴적 경험을 지금 다시 더듬어 집중해서 표현한 것이다.”

On the stage -tarzan story oil on canvas 112.1 x 145.5cm 2025

배준성은 캔버스 공간을 구획하였다. 그의 머리 속에는 볼록한 흑백 브라운관 시절의 정글이 연상되지 않았을까? MBC가 1974년 방영을 시작한 <타잔>은 팬티 한 장만 걸친 타잔이 덩쿨 줄 하나로 밀림을 누비면서 “아아아아”하고 외치면 코끼리떼들이 모여들어 함께 악당을 물리친다. 만화방에 모여 TV를 보던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늘 타잔 곁에는 침팬지 치타와 아름다운 여자친구 제인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이 착공되기 전인 1970년대 작가가 정착한 서울 수유리는 전원의 삶과 정취, 풍경이 있었다. 40여년이 지나 흑백 텔레비전 속 타잔과 수유리가 중첩되어 모티브로 작용하였음직하다.

마티에르(질감)와는 확연하게 다른 화면의 공간을 관통하는 여름 날의 후덥지근한 끈적끈적한 열기가 느껴져야 했다. 1970년대의 잿빛을 아날로그 총천연색으로 표현하여야 했다.

On the stage -smashed tree 3 oil on canvas 162.1 x 130.3cm 2024

바우하우스 무대 예술은 조각가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1888~1943)를 중심으로 인간, 공간,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역동적인 무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슐레머는 무용과 음악, 의상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해 교향악적, 건축적 구성의 작품 '삼부작 발레 Triadic Ballet'를 발표했다. 무대에는 세 명의 무용수가 등장하여 12편의 춤과 18벌의 의상을 입고 춤춘다.

배준성의 ‘무대’는 풍경의 배경이 실내인지 외부인지 애매하다. 몽환적 화면 구성과 현란하고 잔잔한 색채로 아동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화면은 이 땅의 50~60대가 지나온 회고적 시간대와 삶의 혁명을 꿈꾸며 파시즘과 맞섰던 그 이전 서구 시간대와 중첩된다.

외부 시간과 단절된 내연의 풍경인 미술관 시리즈와 외연의 풍경처럼 보이는 ‘온 더 스테이지’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의 개념,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주체와 대상간 ‘상호작용 (인터랙티브interactive)’인 ‘리듬 분석(rhythmanalysis)’이 작용한다.

르페베르는 '어둠이 내린 정원의 표면을 주의 깊게 청취하면 식물들, 바람, 사물들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On the stage -pink rainy day 2 oil on canvas 130.3 x 162.2cm 2025

사람이 하나의 컵을 보고 있으면, 컵을 뺀 전부가 엠비언스(ambience)이다. '주변' 또는 '싸여 있다'는 뜻의 엠비언스는 음장감(音場感), 임장감(臨場感) 등 음이 퍼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과 주체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존재한다. 이 엠비언스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온 더 스테이지’ 화폭 속 공간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과 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이기도 하다. 실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다. 

배준성의 이미지 창출과 표현은 자신과 가족의 기억과 경험 및 서사의 소환, 사회 현상과 맥락에 대한 관찰 및 이해가 바탕이 된다. 

수년 전 영장류를 연구하는 동물학자가 인도네시아의 광대한 수마트라 정글 탐험 며칠 후 정글을 가로지르는 강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정글에는 하늘 어디를 보아도, 얽힌 수목 사이 어디를 보아도 디스플레이가 없다. 그래서 좋다"고 말했다. ‘온더 스테이지’에는 동물학자가 10여일 동안 정글 수목 사이를 헤치며 걸어 들어가 맞부닥친 상쾌한 시·촉각적 원시성이 있다.

배준성의 또 다른 개인전 <화가의 옷- 무대에서 : The Costume of Painter - On the Stage >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508에서 7월 30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