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⑥ 박근혜 탄핵기획 '尹-이진동-김의겸 삼각 커넥션' 미스터리 풀렸다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TV조선-한겨레 가교는 윤석열 아닌 조은석

2025-06-17     이진동 기자
국정농단 사건 비사(祕史).

⑥ 국정농단 보도 TV조선펭귄팀-한겨레 이어준 건 윤석열 아닌 조은석
⑤ [결정적 장면들] 박근혜 의상실CCTV영상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④ 조선, 박근혜 공격 받고 '최순실 보도' 금기시
③ 박근혜 청와대 누가 '기자8명 해고' 조선 방상훈 사장 협박했을까?
➁ '미르·K스포츠' 폭로에 '조선일보 불신' 폭발
➀ 박근혜의 무지막지한 공격과 조선의 '반성문'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를 연재하다, 윤석열 정권 출범으로 '윤석열 김건희'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기 위해 멈췄으나 최근 조은석 전 감사원장 직무대행의 '내란 특검' 임명에 따라 조 특검과 얽힌 부분을  처음 공개한다. 조 특검은 취재원 가운데 한 명으로 현직에 있는 기간이 많아 그 동안엔 '취재원 보호'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조차 '조은석'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익명으로 뒀던 이름을 최근 김의겸 전 의원이 페이스북 글에서 공개함으로써 더 이상 '취재원 보호'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국정농단 사건 취재 과정과 당시 조선미디어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다룬 나의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에선 전부 실명 그대로 썼지만 유일하게 익명 처리된 인물이 '검찰간부A'인데, 그가 바로 조은석 특검이다.

 

2017년 8월 1일 서울고검장에 취임하는 조은석 특검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김의겸 이진동 세 사람은 법조계에서 검사와 기자로 만난 사이다. 윤석열 검사가 1960년생으로 맏형격이다. (중략) 검사 윤석열과 기자 이진동이 한겨레신문에 협조하면서 우파와 좌파 매체 간에 거대한 <연합전선>이 형성된다. (중략) 이렇게 해서 TV조선과 한겨레 신문의 중견기자 2명이 윤석열 검사와 한편이 되었다.” 

월간조선 기자출신으로 극우 성향인 우종창이 쓴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박근혜 탄핵기획론이 근거 삼은 <윤석열의 국정농단보도 사주설>과 <윤석열-이진동-김의겸 삼각커넥션> 얘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발화시킨 TV조선 펭귄팀의 2016년 7~8월 '청와대의 미르-K 재단 강제모금' 취재 보도가 검사 윤석열의 지시를 받아 이뤄진 것이고, 윤석열이 TV조선 펭귄팀과 한겨레의 국정농단 보도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터무니없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겠지만, 윤석열이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는 극우파는 물론이고 보수쪽의 상당수가 신봉했던 날조된 음모론이다. 이젠 잠잠해진 극우 논객 우종창, '친윤 유튜버'로 변신한 고성국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은 '이재명 전도사' 평까지 얻은 보수 원로 언론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까지도 탄핵기획론에 기울어 있었다. 정 전 주필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이라함은 윤석열과 김의겸과 이진동이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낸 사건이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조선미디어 내부에서도 국정농단 사건 취재 과정에서 '이진동이 윤석열과 내통했다'고 의심해 온 우종창류의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2016년 촛불혁명의 도화선은 언론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보도였다. 언론의 국정농단 보도의 큰 흐름은 TV조선 펭귄팀의 미르케이 보도- 한겨레의 최순실 보도- JTBC의 태블릿PC 보도- TV조선 펭귄팀 최순실 CCTV 보도로 이어졌다.

그런데 미르 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걸 TV조선 펭귄팀만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한겨레는 어떻게 알고 보도의 바통을 넘겨받았을까.

국정농단 사건 취재 과정과 당시 조선 내부에 있었던 일을 기술한 나의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개마고원)에는 이 연결고리를 '검찰간부A'라는 익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극우 보수들은 내 책에 등장하는 '검찰간부A'를 지레 윤석열로 결론내놓고, 유튜브 방송과 책 저술 판매를 통해 '윤석열-이진동-김의겸'의 탄핵기획론을 확산시켰다. 이들의 주된 근거 가운데 하나가 "윤석열이 한번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실로 질의를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사실이기 때문이다'는 논리였다. 책에는 분명히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이나 특검 수사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책 <이렇게 시작되었다> 339p / 이진동, 개마고원)고 정확하게 기술돼 있고, 또 "사실이 아니니 그만하라"고 경고도 해봤지만 편집증에 빠져 있으니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결국 명예훼손 손해배상 재판으로 이어졌고, 재판에서 이들은 오히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우기다가 패소해 손해배상을 했다.

윤석열은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뻔히 '사실이 아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선 참여를 위한 검찰총장 사퇴 직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니, 굳이 부인할 이유가 없다고 봤을 것이다. 잘못 알려진 '공'을 인정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하더니,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고검장을 패스하고 검찰총장에 앉혔다.

정작 TV조선 펭귄팀과 한겨레 보도의 가교 역할을 했던 진짜 '검찰간부A'는 그러는 사이 윤석열에 밀려 옷을 벗어야 했다. 단독 변호사 생활을 하다 문재인 정부 말년에야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들어갔다. 내란 세력 수사 사령탑을 맡은 조은석 특검 얘기다. 

내막은 이렇다.

2014년 10월 무렵 고영태가 처음 찾아와 최순실에 ‘빼앗긴 시계’를 찾아달라는 제보를 하면서 최순실 취재를 시작하게 되는데, 증거 수집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최순실은 베일에 싸여 얼굴이 거의 없었다. 취재 과정에서 고영태가 박근혜 의상실을 관리한다는 걸 파악하게 되고 고영태에게 박근혜 의상실 CCTV설치를 주문했다. 

CCTV설치 전에 법적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보도에 활용하게 되면 몰래CCTV로 찍은 걸 알게 될 수 밖에 없는데, CCTV설치 자격이 있는 것인지, 몰래 설치한 CCTV를 보도했을 때 고영태나 내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지 등에 대한 법적 검토였다. "사무실 관리자라면 CCTV설치도 문제 없고, 방송에 그걸 써도 괜찮다"는 답을 얻었다. 바로 이 자문을 해준 게 조 특검이었다. 당시 대검 형사부장이던 조 특검은 검찰 내에서 자타 공인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TV기자의 잠입 취재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물었으니 조은석은 그 때만해도 취재 대상이 최순실이라는 걸 알턱도, 알리도 없었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최순실 의상실 CCTV 보도 화면 캡처. (사진=TV조선 캡처)

이런 과정을 거쳐 고영태에게 CCTV설치를 주문하고, 최순실이 청와대 행정관들을 몸종 부리 듯 하는 장면이 담긴 박근혜 의상실 CCTV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후 1년 7개월 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 미르-K재단 강제모금 보도 직전에 몰래 찍은 CCTV를 보도할 경우 감수해야할 법적 리스크 등을 조 특검에 다시 자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 특검은 미르-K 강제 모금 사실을 알게 되고 최순실 CCTV 영상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조은석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검사 신분이긴 했지만 수사나 검찰 업무와 거리가 먼 상태여서 터놓고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 취재 내용을 깊숙하게 알게 된 것이다.

TV조선 펭귄팀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의 하수인 차은택 김종의 전횡을 보도한 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인 미르 K스포츠재단을 통한 수백억 강제 모금까지 순탄하게 고발한 상황이었다. 취재와 기사 아이템 등을 '펭귄팀'이 철저하게 보안에 부쳤기 때문에 처음엔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통상적으론 핵심인 최순실부터 써야 했으나, 자칫 최순실 보도가 막히면 취재된 다른 내용까지 묶이는 상황을 막기 위해 통상 방법과는 다른 주변부에서 핵심으로 전개하는 역방식을 쓴 것이다. 그래야 TV조선에선 보도가 멈추더라도 다른 언론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음 수순은 차은택 김종의 전횡 및 미르·K재단의 배후로 최순실을 등장시키고 최순실이 어떻게 인사 예산 농단을 했는지를 기사화시켜야 할 타이밍이었다. 취재 입증 자료 가운데 박근혜-최순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강력한 소품은 최순실이 등장하는 ‘박근혜 의상실 CCTV’였다.

아니나 다를까 ‘최순실’ 이름을 써야 할 타이밍에 제동이 걸렸다. 최순실의 ‘최’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펭귄팀을 이끌던 나와 TV조선·조선 상층부 간에 갈등이 생겼고,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당시만 해도 다른 언론들은 국정농단의 심각성은 물론이고, 미르 케이 재단이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던 상황이라 이를 다른 언론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마침 조은석이 한겨레 법조기자 경력이 많은 '강희철(지금은 퇴임)에게 알려주면 어떻느냐'는 것이었고, 나도 강희철을 잘 알기에 오케이를 했다. 다만 '타이밍'을 알려줄테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1999년 대검 공안부장이던 진형구(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장인) 변호사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촉발된 파업유도 사건에서 나와 강희철은 당시 파업유도 사건을 단독 보도한 취재기자였고, 조은석은 파업유도 사건 특별수사본부 수사검사였다. 

이렇게 다른 언론에 흘리는 건 한겨레가 최순실 이름을 보도하면, 박근혜 의상실CCTV를 비롯해 보도 대기 상태로 비축하고 있던 최순실 국정농단 고발 기사를 꺼내 다시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은석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조은석은 내 취재에 응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강희철에게 건넸고,  강희철이 당시 한겨레 기자인 김의겸에게 전달한 것이다. 

내용은 “미르 케이 재단이 핵심이고, 그 뒤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이었고, 내가 최순실 동영상을 확보하고 인터뷰까지 해놓은 상태라는 것까지 전달했다. 지금이야 미르 케이재단 하면 최순실이 떠오르지만, 취재하는 입장에서 미르 케이재단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고, 그 배후의 인물까지 알려주는 건 취재의 핵심을 다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조은석과 수시로 통화가 오가면서 많은 대화가 있었는데, 조은석은 내가 양해한 것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해줬다. 

그래서 김의겸은 그로부터 열흘 남짓 지나 9월 2일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 동안 취재 내용과 배후 최순실을 다 확인해줬다. 다만 김의겸은 최순실 동영상(박근혜 의상실 CCTV)도 넘겨주면 보도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그것만은 거절했다. 박근혜 의상실 CCTV를 비롯해 나머지 보도를 이어가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한겨레에 최순실 보도를  흘린 것인데, 최순실 동영상까지 넘길 순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20일이 못돼 한겨레는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마사지사’라는 기사로 미르-K스포츠 재단 배후의 인물로 '최순실'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내 판단과 달리 한겨레 기사가 나왔지만 TV조선과 조선 상층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나가겠다’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와 출근 불응으로 맞서는 등 내부 투쟁을 하는  와중에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게 된다.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조선과 TV조선은 그제서야 빗장을 풀게 되고 박근혜 의상실 CCTV를 비롯한 최순실 인사·예산 농단 관련 단독 기사 수십건을 며칠 새 쏟아내게 된다.

미르-K보도를 막기 위해 박근혜는 무자비한 공격을 했고, 이에 겁먹은 조선의 오너가 '최순실'을 금기어로 정해놓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책에선 검찰간부A, 조 특검에 대해 "나는 그가 검사로서 정의감의 발로에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 재단의 수백억 원 강제 모금이라는 범죄적 행위를 덮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정황들을 보면서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 235p / 이진동, 개마고원)  

※ TV조선과 조선일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문을 연 보도를 했다는 것을 내세우지도 않고 기념하지도 않는다. 국정농단 사건 보도가 조선일보의 극보수 성향에 역행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 '청와대의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모금' 보도를 비롯, 국정농단 사건 보도들의 주체는 TV조선이 아니고 내가 이끌었던 취재팀인 'TV조선 펭귄팀'이라고 해야 적확하다. 당시 상황에선 TV조선과 'TV조선펭귄팀'을 분리해 봐야 한다. 조선일보 오너도 당시 보도의 주체를 지칭할 때 'TV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이진동 팀'이라고 불렀다. 박근혜 국정농단 보도가 보수 궤멸 위기로 치달았던 점 때문에 전체 조선과 나(TV조선 펭귄팀)를 분리하려한 것이다.

당시에도 '탄핵 기획'이라는 태극기 세력의 함성이 커졌을 때 조선과 TV조선 간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나를 조사했다. 혹시라도 '취재 윤리'로 트집 잡힐 게 나왔다면 태극기세력들에게 제물로 던져줬을 것이다. 반대로 최순실과 '박근혜 의상실 CCTV'보도를 죽어라 막은 주체는 '조선의 상층부'지만 외부에서 박근혜 의상실 CCTV를 묵혔다는 비난을 들을 땐 내가 화살받이였고, 조선과 TV조선은 전부 내 뒤에 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