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하이브 마인드를 구현할 수 있을까?

집단지성의 미래와 그 궁극은?

2025-06-15     최성우 과학평론가

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한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집단지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실제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즉 온라인에서 다수의 대중과 전문가들이 묻고 답하기에 참여하면서 위키피디아(Wikipedia) 등 집합적인 지식을 창출하고,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후원과 기부, 새로운 사업에 투자 등 경제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새 정부 들어서 장·차관 및 공공기관장 등 주요 공직에 국민추천제를 도입하여, 집단지성을 활용한 인재 발굴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에도 집단지성이 활발히 적용되는데, 전 세계 다수 사용자의 유휴 컴퓨터 자원을 빌리는 분산컴퓨팅 기법을 통하여 진행되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인 '세티앳홈(SETI@HOME)'이 대표적이다. 

유휴 컴퓨터 자원을 활용하는 세티앳홈 프로젝트를 위한 화면보호기 ( GNU Free Documetation License )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얻게 되거나 더욱 배가되는 집단적인 지적 능력을 의미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集團知性)은 1910년에 곤충학자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집단생활을 하는 개미 등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제시한 개념이다. 즉 개미나 꿀벌의 개체 하나하나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협업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먹이를 얻고 거대한 개미집을 건설하는 등, 군집으로서는 매우 높은 지능체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100억 개 정도의 뇌 신경세포를 지닌 인간에 비해, 개미 한 마리의 뇌 신경세포는 수백 개에 불과하지만, 개미들의 집단두뇌는 도리어 인간들이 배우고 본받아야 할 만큼 뛰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거대 통신회사들은 먹이와 보금자리 사이의 최단 경로를 찾아가는 개미 떼의 추적능력과 집단지성을 모방하여, 통신망에서도 최단의 경로를 찾아 소통을 원활히 하는 연구를 한 적도 있다. 

흰개미가 짓는 거대한 집은 뛰어난 공조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이를 모방하여 자연적인 환기와 에너지를 크게 절감한 냉방시스템을 갖춘 쇼핑몰 건물이 실제로 건설된 바 있다. 벌떼나 새떼 등의 행동 원리를 모방하여 여러 대의 작은 로봇들이 집단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체 로봇공학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집단지능으로 지은 흰개미의 거대한 집 ( 저작권자 = W. Bulach ) 

이들 동물의 경우 일반적인 집단지성에 비해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보다 강조하는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群集知能)’이라는 개념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떼 지능으로도 불리는 이 용어는 인공지능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분산된 집단적 행동과 자기조직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배워서 유용한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른바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에서도 동물의 군집지능은 귀중한 모델을 제공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서, 다수의 개체가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는 ‘하이브 마인드(Hive mind)’라는 것도 있다. 영어로 벌집을 뜻하는 하이브(hive)에서 비롯된 용어이므로 역시 군집지능과 유사한 측면도 있지만, ‘다수의 육신이나 개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정신’을 뜻하는 개념이다. 즉 집단지성이나 군집지능과 달리, 하이브 마인드에서는 각 개체의 독자성이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우두머리 하나에 의해 통제되는 등 모든 개체가 동일한 의식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하이브 마인드는 실제의 자연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관련 기술이나 공학에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구현된 적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유명 SF영화나 컴퓨터 게임 등에서는 하이브 마인드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여 그다지 낯설지 않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폴 버호벤이 감독한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1997)’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외계행성의 거대곤충들과 인류 사이의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큰 거미처럼 생긴 수많은 전투보병 버그, 입에서 불을 내뿜는 거대한 딱정벌레 모양의 탱크 버그, 하늘을 나는 척후병 역할 버그 등은 모두 고도의 지능을 지닌 우두머리 하나의 지휘와 조종을 받아 움직인다. 

저명 SF 시리즈인 ‘스타트렉(Star Trek)’에 등장하는 기계와 유기체의 합성으로 된 ‘보그 종족(Borg Collective)’ 역시 하이브 마인드에 의해 움직이며,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면서 살고 있다. 공격을 두어 번 맞으면 바로 적응해서 방어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손상된 신체도 스스로 재생하는 매우 강력한 외계 종족인데, 이 종족에도 우두머리격인 보그 여왕(Borg Queen)이 존재한다. 

스타트렉에 나오는 보그종족의 재생장치 ( 저작권자 = Joe Ross )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 중 하나인 저그(Zerg) 역시 하이브 마인드를 지닌 것은 마찬가지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매뉴얼에 의하면 저그는 고대의 위대한 한 종족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생물체로서, 기생생물 또는 기생충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악조건에서도 잘 번성할 수 있는 종족이다. 

올해 선보인 봉준호 감독의 SF영화 미키17(Mickey17)에도 하이브 마인드를 지닌 생명체가 등장한다. 즉 외계행성에 인간이 이주하기 전부터 살고 있던 털투성이의 토착생명체는 다른 개체의 고통을 서로 느끼며 우두머리를 적극 보호하려는 행동을 하는데, 바로 하이브 마인드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만약 먼 미래에 인간 두뇌 간의 초연결에 의하여 하이브 마인드가 탄생한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Big Brother)를 능가하는 끔찍한 상황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공지능 등에 하이브 마인드가 제대로 구현된다면, 인류를 위하여 유익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이브 마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집단지성이 앞으로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와 같은 전 인류적 난제들을 해결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