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스 코로나 등 바이러스 전파의 제왕, 박쥐의 신비
박쥐 자신은 왜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가?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중심으로 코로나19(COVID-19)가 크게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즉 태국, 중국, 홍콩 등지에서 확진자의 수가 급증하였고, 대만 보건 당국은 국민에게 마스크를 다시 착용할 것을 권고할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심각한 편은 아니지만 역시 코로나19의 검출률이 증가 추세에 있어서, 시민들은 감염병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노약자 등 고위험군은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지난 2020년 초부터 거의 전 세계가 고통을 받았던 코로나19 팬더믹이 종료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올 여름철에 다시 재유행할 우려마저 제기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인도와 동남아 등지에서 자주 발생하는 감염병인 니파(Nipah)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곧 제1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될 예정이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든 니파 바이러스든 모두 사람과 동물에게 함께 전염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즉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매개하는 자연 숙주가 바로 ‘박쥐’라는 사실이다. 또한 2002년에 중국에서 큰 피해를 몰고 왔던 사스(SARS), 2015년에 중동에서 발원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사망자를 냈던 메르스(MERS) 등 과거에 유행했던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의 최초 숙주 역시 박쥐였다. 이들 바이러스를 자연 숙주로부터 다시 사람에게 옮기는 중간 숙주로는 사스의 경우 사향고양이, 메르스의 경우 낙타가 꼽혔지만, 그 이전의 처음 자연 숙주는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모두 박쥐였던 것이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간혹 발병하여 50~90%라는 가공할 치사율을 보이는 에볼라(Ebola) 바이러스 역시 박쥐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박쥐가 옮기는 인수공통 감염병은 매우 많으며, 박쥐가 보유하는 각종 바이러스는 무려 200종 이상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이쯤 되면 박쥐는 ‘바이러스 전파의 제왕’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바이러스를 지닌 박쥐 자신은 감염병에 걸리거나 고통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예전부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는데, 과학자들은 박쥐라는 동물의 독특한 속성에 주목하여왔다.
이솝우화에서 유래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붙는 이중적인 사람을 ‘박쥐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하지만. 박쥐는 조류가 아니라 엄연히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박쥐는 매우 오래된 진화의 역사를 지니며, 지금은 약 1,200여 종으로서 포유류 중에서는 설치류 다음으로 다양한 종을 지닌다.
박쥐가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로서 먼저 포유류면서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박쥐의 능력을 들 수 있다.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을 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하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빨라지면서 체온이 거의 40도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지게 된다. 사람 몸도 질병에 걸렸을 경우 열이 나게 되는데, 이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몰아내기 위한 면역반응의 일종이다. 박쥐 역시 높은 체온 덕분에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박쥐의 독특한 면역시스템 역시 주목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와 독성 등도 증가하면서 염증이 유발되는데, 이 역시 면역의 일환이다. 그런데 인간 등 다른 동물은 과도한 면역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장기들마저 손상하며 스스로 해를 끼치게 되는데, 박쥐의 경우에는 이를 방지하는 탁월한 면역체계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로 인한 나쁜 영향을 방지하면서도 과잉된 면역반응 역시 억누르도록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셈이다.
이처럼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박쥐의 훌륭한 면역체계는 장수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경우 몸집이 큰 동물이 오래 사는 경향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코끼리나 고래는 작은 동물에 비해 수명이 무척 긴 편이다. 그러나 박쥐 중에는 수명이 30년 이상일 정도로 장수하는 종류도 있는데, 몸집이 비슷하거나 몸무게가 더 나가는 쥐에 비하면 10배나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한다.
박쥐의 신기한 능력과 그 비결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은데, 최근 국내 연구자들이 이와 관련된 중요한 업적을 낸 바 있다. 즉 국내에 서식하는 박쥐들의 장기 오가노이드(Organoid)를 구축하여 연구 결과를 저명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하였다. 오가노이드란 성체 또는 배아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분화시켜 장기의 세포 구성과 기능을 모방한 것으로서, 소형의 ‘장기유사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박쥐 오가노이드는 바이러스와 면역 상호 작용 등을 규명하는 중요한 연구 플랫폼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인간에게 숱한 치명적 바이러스들을 전파하는 박쥐를 해로운 동물로 여기거나 박멸 대상으로 성급히 간주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다양한 곤충을 먹이로 하는 박쥐는 도리어 해충 방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박쥐에 의한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창궐은 서식지의 파괴나 지구온난화 등 인간의 업보에 따른 것이므로, 박쥐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최성우는 일간신문, 잡지, 온라인 매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TV 과학채널 코너에 출연하는 등 과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중소기업 연구소장,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부 정책평가위원,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민간협의회 위원 등 과학기술 정책 자문도 맡았다.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기술,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위하여’,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 ‘발명과 발견의 과학사’ ‘과학자, 인간의 과학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