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⑳] AI시대 인재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뀐다...'지식에서 경험으로'
지식의 시대가 저물고 경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답이 아니라 '사고 과정', 성과보다 '성장'이 평가 기준이 된다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아직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조만간 채용의 현장과 학교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더 이상 성적표가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뽑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Knowledge is Power'에서 'Experience is Power'로
지식을 평가하던 과거의 잣대가 무력화된 지금, 새로운 인재 평가 기준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선언한 지 400여 년이 흘렀지만, AI가 모든 지식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오늘날 이 명제는 과거만큼 유효하지 않다. 대신 "경험이 힘이다(Experience is Power)"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부상을 예상한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체했듯이, AI 혁명은 정신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담당하게 만들었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고유 영역은 창의적 사고, 문제 해결 경험, 그리고 실패를 통한 학습 능력이다. 이런 역량에 왜 경험이 화두가 될까?
AI가 가져다주는 답은 어쩌면 산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도 같다. 산 사진을 보고 아는 것과 실제 등반 할때의 느낌, 고통, 정상에서의 쾌감, 땀을 씻어주는 바람의 상쾌함. 야호 할때의 속시원함과 메아리 그리고 내려 올때 보이는 '올라올 때 못본] 그 꽃 등. 등반 여정의 수만가지 감정을 AI가 알려주지는 못한다. 산을 직접 올라봐야 그 여정의 다양성을 알 수 있듯, 실제 상황에서 어떤 정보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여정 속의 실패와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얻는 통찰은 AI가 가져다줄 수 없는 인간만의 축적된 자산이 된다. 같은 문제라도 개인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이 곧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지속적인 학습과 적용의 경험이 진정한 경쟁력이 된다. ‘지식은 넘치나, 진짜 앎은 모자란 시대가 되지 않으려면 AI가 채워주는 건 데이터이고, 내가 채워야 하는 건 경험이라는 사실, 겪고 살아야 진짜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미 선진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학벌이나 성적보다는 프로젝트 경험, 문제 해결 사례, 실패 극복 스토리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구글, 애플, IBM 등이 대학 학위 없이도 실무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인재를 적극 채용하는 것이 그 증거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의 인재 평가는 '경험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원래 이탈리아어 'portafoglio(종이를 운반하는 가방)'에서 유래한 용어로,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과 스케치, 실패작까지 모아서 보여주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은 거장들도 완성작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 시행착오, 아이디어 발전 과정을 함께 담아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다. 이후 건축, 디자인, IT 분야로 확산되면서 지식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를 함께 보여주는 평가 도구'로 정착했다. 단순히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 경험을 어떻게 다음 도전에 적용했는가가 핵심 평가 기준이 된다.
학교와 기업은 지필고사 대신 프로젝트 기반 평가, 포트폴리오 심사, 실무 시뮬레이션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기관은 경험 중심 학습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실패를 학습 기회로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평가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재의 정의 자체를 바꾸는 혁명적 전환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인재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시도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사람이다. 지식의 시대가 저물고 경험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경험 포트폴리오를 써 내려가야 할 때다.
경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만들까?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먼저, 과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끝냈다”보다 “이런 어려움을 겪었고 이렇게 극복했다”는 서사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실패 저널도 중요하다. 실패 이유, 배운 점, 다음 시도 계획을 정리해야 학습 능력은 물론 회복 탄력성을 보여줄 수 있다. 도전 → 배움 → 적용의 흐름으로 이전 경험이 다음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성장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그리하여 경험의 연결성(Continuity)을 강조하라. 프로젝트들이 점으로 흩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된 궤적을 가진 선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 여정 속에 자기만의 문제 해결 스타일, 같은 문제도 남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고유한 접근법을 드러내야 한다.
이제는 성적이나 학위가 아니라 '경험', 정답이 아니라 '사고 과정', 성과보다 '성장'이 중요한 시대다. AI가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질문하고, 해석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경험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당신이 살아온 방식, 배움의 태도, 문제 해결력의 지도(map)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써 내려가고 있다.
김희연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 시대 기업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