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어디까지 왔나?- 채정완 작가

개인전 '변하지 않는 것들' 경기 고양시 갤러리 뜰에서 28일까지

2025-06-01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채정완(Chae Jungwan· 36) 작품 <중간이 어디있어>는, 양쪽의 두 인물이 중간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가려 당기는 모습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중간 인물은 더 강하게 당기는 쪽으로 이끌려 갈 것이다.

중간이 어디 있어, acrylic on canvas 50.0X65.1cm 2025

“균형을 유지하려 해도 결국 한쪽을 선택받도록 강요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모든 논쟁에서 중립은 비겁함으로 간주되거나, 양극단의 선택 전 거쳐 가는 단계로만 여겨진다. 중간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성은 무시한 채 그저 상대를 자기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만 계속할 뿐이다.”

“정치적 지도자,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 혹은 여론의 방향성이 사회 전체를 결정한다. 대중이 (선거 등에서) 신중하지 못한 선택을 할 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도미노, acrylic on canvas 50.0X65.1cm 2025

작품 <도미노>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맨 앞 사람이 마주 선 이의 돌발적인 발길질에 넘어지자 모든 이가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모습이다. 작가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오랜 시간 공들여온 사회 체제가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표현하였다. 돌발적인 발길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처음 권력을 얻었을 때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며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어 자기 점검을 소홀히 하고, 점차 절제력이 무너지게 된다.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방종에 이르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다.” 

작가는 작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 이후 대부분의 국민과 마찬가지로 쇼크와 긴장을 견디며 지난 4월 열번째 개인전 <권력과 숭배>를 열었다. 작가는 현실과 화폭의 이야기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작가는 묻고 있다.

“숭배는 종종 맹목적이고, 권력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강해진다. 사람들은 권력을 의심하기보다 그것을 따르는 데 익숙하다. 누군가를 떠받들고 그 존재를 정당화하는 순간, 권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종교는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절대성을 요구하며, 정치는 충성을 전제로 개인을 조직화하고, 기업은 성공과 안정을 미끼로 사람들을 구조 속에 가둔다.”

1980년대 컬러 텔레비전과 프로야구, 프로축구에 익숙해진 대중은 1990년대 이후 선거 등에서 정치인들이 생산해내는 영상 이미지에 열광하였고, 정치 공학 테크노크라트가 조율하는 이미지 정치에 함몰돼 지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듀베르제(Maurice Duverger)는 ‘권력(power)’을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의 의사를 상대나 상대 집단이 속한 집단의 의사를 무시하고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수직적으로 작용하는 권력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로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집단의 자의에 따른다. 이 자의는 그들 집단의 이해에 기반한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 견제, 비판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채정완은 사람이 등장하는 스틸 이미지 한 장 한 장 만으로도 영상에 익숙한 주권자인 관객을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권력과 숭배acrylic on canvas 162.2X112.1cm 2024 
우리가 욕망하는 것acrylic on canvas 162.2X112.1cm 2023

검은 정장 차림의 민머리 남성 인물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전체 작업에 등장시킬 수 있는건 작가가 사회 현상과 흐름에서 읽어낸 스토리가 받쳐주기에 가능하다.

채정완 작품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회피하는 검정, 하얀, 회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넥타이나 피, 배경을 붉은 색으로 이입하는 정도이다. 넥타이 색이기도 한 블랙은 보편적인 계층을 의미한다. 

글을 먼저 쓰고 이미지를 그릴 때가 있고, 이미지가 먼저 떠 올라 그리고 관련 글을 쓸 때가 있다. 이미지가 먼저 떠 오를 때는 그 이미지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찾는다. 

현대 미술에서 일러스트와 회화를 구분 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회화와 일러스트를 시각예술에서의 평면 작업으로 이해한다. 평면 작업은 스토리전개가 다방면으로 열려 있다고 본다. 채정완 작품은 모티브이든 작품으로 구현하는 영역이든 이러한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듯 보인다.

채정완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만화, 영화 등 대중매체 및 실제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만화는 많은 주제와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철콘 근크리트, 핑퐁, 죽도사무라이), 미우라 켄타로 (베르세르크), 다케이코 이노우에(슬램덩크, 배가본드, 리얼), 아키라 토리야마(드래곤볼)등, 한국 만화가로는 김수박 (메이드인 경상도, 빨간 풍선), 꼬마비 (살인자ㅇ난감, S라인), 박순찬 (장도리, 만화 박정희) 등으로부터 영향받았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쿠엔틴 타란티노(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미야자키 하야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고레에다 히로카즈(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창동(시, 밀양)을 꼽는다. 

채정완은 사회 현상과 문제를 말하기 위해 주인공 캐릭터가 필요했다. 주인공은 특정 계층, 세대, 이념을 대표하면 안되었다. 그러한 개성들을 하나씩 빼고 시선과 주변의 명암만을 남기다 보니 지금의 캐릭터가 되었다.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은 미디어나 책을 통해 습득하고 사회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도 깊이를 더해 갔다. 사람들 간의 이해 관계에서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인 인간과 사회는 작업의 소재를 끊이지 않게 제공한다.

뭘 찾니? acrylic on canvas 53.0X72.7cm 2022

<뭘 찾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바닥에 낮게 엎드려 어딘가 아래 깊숙한 곳을 응시한다. 모두 한 곳을 바라보지만, 손을 뻗거나 다가서지 않는다. 마치 깊숙한 어둠 속 어딘가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중요한 무엇을 꺼내려는 시도는 없다.

“정의는 단지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비되는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정의의 부재 자체’ 보다는 그 결핍을 무력하게 인식하고 방관하는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똥볼 acrylic on canvas 116.8X80.3cm 2021

작품 <똥볼> 화면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머리를 걷어차 화면 밖으로 날려 보내 얼굴은 비어 있다. 작품 속 인물은 외형은 멀쩡하게 갖춰 입었지만, 인격과 이성을 대표하는 머리를 스스로 걷어차며 자기 존재의 중심을 부정하고 있다.

“자주 반복되는 사회적 무의식, 생각 없는 복종과 책임 회피, 자기 성찰 없는 행동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 머리는 인간 존재를 사유하며, 판단하며, 책임지는 상징이다. 머리를 스스로 차버린다는 행위는 사유를 포기한 채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삶을 시사한다.”

<불가항력> 작품은 사랑을 표현하였다. 빨간색 하트 풍선에 매달린 인물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꾸로 끌려 올라간다. 풍선은 사랑을, 인물은 사랑에 의해 변화되는 인간을 상징한다. 인물의 무표정한 얼굴과 힘없이 늘어진 자세는, 스스로 방향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의지와 이성적 구조를 어떻게 무력화하고 재구성하는지를 관찰하고자 한다. 사랑은 감정적 고양을 넘어, 개인적 계획과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여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재구성 한다.”

불가항력, acrylic on canvas 45.5X33.4cm 2025
사랑이라는 사치, acrylic on canvas 65.1X91.0cm 2025

<사랑이라는 사치> 입을 맞추고 있는 작품 속 두 인물은 각각 다른 두 인물의 지지를 받아야 입맞춤을 할 수 있다. 입을 맞추는 두 인물을 지탱하는 존재들은 부모 세대를 상징한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나누기 위해서 누군가의 지원과 희생, 이미 다져 놓은 기반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표현하였다 한다.

“사랑의 이면에는 자본과 세대의 관계, 계급과 희생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감정이 자립하지 못하는 현실은 연애 뿐이 아니다. 결혼, 자녀 계획, 공동체를 이루는 일까지 사회의 많은 관계들은 감정보다 앞서 경제적 조건이 갖춰졌는지를 먼저 묻게 되었다.”

‘87체제’ 세대 1989년생 채정완 작가가 바라본 한국 사회는 ‘그 때로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채정완의 열 두번째 개인전 <변하지 않는 것들>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갤러리 뜰에서 6월 10일부터 28일까지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