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함께 전해지는 것은 사유(思惟) 뿐이다- 이은주 작가
이은주 개인전 '찰나- 시간의 궤적을 따라서' 용인시 영은미술관서 6월 1일까지 이은주 개인전 '찰나의 푸른 기록' 서울 토포하우스에서 5월 21일~6월 2일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 이은주(58)의 풍경 모티브는 자신이 거주하는 경기 양평군 강하면과 2000년대 살았던 프랑스의 앙제(Angers)와 파리이다.
이은주는 2000년 프랑스로 이주 및 유학을 떠나 8년여간 프랑스의 중세 시대 고성(古城)을 간직한 앙제와 파리의 부자 동네 16구에서 살았다. 딸은 국립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작가는 사진학교 에뻬(EFET·Ecole de la Communication Visuelle)에서 공부했고, 남편은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는 등 가족 모두 자신의 자리에 충실했다. 돌이켜 보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이은주는 도시 파리의 풍경과 노트르담 대성당, 9구 ‘오페라 거리(L’avenue de l’Opera)’와 같은 근대 건축물들의 흑백 사진 이미지를 전사(傳寫)한 화폭에 그 대상들이 지나온 시간의 퇴색과 그 장소만이 가진 장소성(placeness)을 붓질로 표현하였다.
작업은 사진에서 드러난 파리 체류 시기의 ‘지금-여기’와 ‘과거의 순간’ 사이를 회화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사진 위 평면에 아크릴과 혼합 재료를 부조처럼 쌓을 수 있는 ‘모델링 컴파운드’ 같은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다.
크고 작은 공간과 사물은 그 자체로 상황이나 심리에 따른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를 지닌다. 스틸(still) 사진과 회화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이은주는 화면에서 실제 장소성을 지니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는 공간을 선택한다.
작가가 2008년 프랑스에서 돌아와 10여년 동안 자신의 상황과 내면에 침잠할 동안 도래한 메타버스(Metaverse·가상현실) 사회는 공간(space)에서 중요한 장소성을 사라지게 한다. 작품 속 장소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가 말한 ‘눈으로 만지는 공간’이며 시간의 맥락과 단절된 듯한 장소성을 지녔다. 이은주는 당시 심리학 열풍에 휩싸이며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시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이은주는 본래적인 시간에 대해, “내가 무언가를 하는 시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 무언가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이다”고 한다.
이은주는 디지털 합성 사진 자체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점을 찍듯이 직접 그려 넣는다. 대상의 형태는 캔버스에서 떨어져 보아야 실루엣이 드러난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외젠 앗제(Eugène Atget·1857~ 1927) 작품을 즐겨 차용한다.
외젠 앗제 사진은 꾸미지 않고 농담(濃淡)과 같은 색을 병치하면서 어지럽게 대상을 넣으면서도 선, 구도가 뚜렷하여 ‘기이한 것(the weird)’과 ‘으스스한 것(the eerie)’이 동시에 존재한다. 새벽 안개 자욱한 거리의 나무, 건물, 다양한 구조물들을 작은 점들로 형상화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픽셀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언뜻 동양 회화와도 맥이 닿는다.
이미지는 동양회화에서는 형상(形象)이다. 동양회화는 겉으로 나타나는(外現) 형태를 조성하는 형(形)과 내재적 의미로서의 상(象)이 종합되어 드러난다. <동양회화에 있어서 형상관점의 심미- 정진용>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1892~1940)은 앗제 사진을 근대 도시 경관에 숨은 역사적 증언으로 독해하였다.
이은주는 팬데믹이 바꾼 일상적인 풍경을 외젠 앗제가 남긴 19세기 파리 거리 이미지에서 가져온다. 작가는 일상이 된 텅 빈 도시 속 격리의 아포칼립스(apocalypse·재난)를 고양이, 나비, 새와 같은 살아남은 말 없는 생명들과 대비시켰다.
팬데믹은 누구를 만나자 하기도 그렇고 만나러 온다는 소식도 반갑지 않았다. 격리가 해제되었음에도 엉거주춤하는 세상사를 화면 밖의 시선으로 표현하였다. 이은주의 고립된 풍경은 시간을 부여잡고 사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자 매개이다.
이은주는 과거 시간대 사건과 장면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이 속한 당대- 지금, 현재 - 에서 그 이전의 과거를 바라보았다. 시간과 공간 통합은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갖는 ‘가드 컴플렉스(God Complex)’의 발로이기도 하다.
19세기말~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벨에포크(La belle epoque·'아름다웠던 시절')를 맞이하였다. 우디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인 파리>에서 주인공 작가 길(오웬 윌슨)은 1890년대 '벨 에포크 시대' 초입에 당도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2011년의 남자가 부러워한 1920년대의 여자는 1890년대를 ‘벨 에포크’로 동경한다. 또한 물랭루주와 레스토랑 맥심에서 어울리던 1890년대의 로트렉과 고갱은 르네상스 시대를 ‘골든에이지’로 꼽는다.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된 시대로 흘러와 버린 지금 이은주는 20여년전 프랑스 체류 시절을 그리워한다.
작품 ‘新우경산수’에서 보듯 이은주의 작업은 언뜻 과거에 이르는 길, 머무는듯 쉬는 곳으로 보이나 어딘가로 향하는, 경유하는 장소성이 뚜렷하다.
시간을 마주한 작가는 최종적으로 온갖 생각과 기억이 손을 통해 ‘그려진’ 것을 마주한다. 이은주에게 회화는 “시간의 켜를 인식하고, 존재의 흔적을 더듬으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사유를 기록하는 행위”(작가 노트)이며, 자신과 가족이 함께한 시간 로쿠스(locus·궤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맥락(context) 찾기다.
19세기 초 시작된 인화법 시아노타입(cyanotype·청사진)은 햇빛과 감광액, 물의 반응으로 이미지를 만든다. 시간, 손의 감각을 필요하며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시아노타입은 ‘청사진(靑寫眞)’ 이름처럼 겨울 바다 색감인 깊은 청색을 띤다. 작가는 이 방식으로 바다를 그렸다.
“거대한 푸른 곡선의 파도가 흩어지는 그 순간은 너무 짧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머무는 인상을 남긴다.”(작가노트)
시아노타입의 푸른빛은 바다의 무한성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언어이다. 작가는 해양 생물을 추상의 밑 칠 위에 올린 구도로 인간이 파괴하는 바다를 역설적으로 애도하며 기억하게 한다.
이은주 개인전 <찰나- 시간의 궤적을 따라서>는 경기 용인 영은미술관에서 6월 1일 까지이며, 전시 <찰나의 푸른 기록>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5월 21부터 6월 2일 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