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한덕수 단일화 난장판이 드러낸 국힘의 모순
‘김덕수’ 뒤에 윤석열의 그림자…국힘의 실패는 예정된 결말 반이재명 정서만 믿은 탓, 당 해체 후 재탄생 이외 방법 없어
단연코, 이렇게 웃기는 코미디 대선판은 없었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와 당 지도부가 밀고 있는 한덕수 예비 후보를 놓고 단일화를 시도하는 국민의힘 얘기다. 김문수 후보는 단일화 담판장에 나온 한덕수를 향해 “남들이 다 경선을 치를 땐 밖에 있다, 왜 이제 나와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느냐”고 공박했다. 한덕수는 “22번 단일화를 외쳐놓고 왜 당장 단일화를 하지 못하느냐”고 김문수의 식언을 따지고 들었다. 실시간 생중계된 63분간의 대화는 두 사람의 욕심과 무논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단일화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김문수의 막무가내 고집이나 다급한 한덕수의 무논리 모두 유권자 눈에는 '대통령 병에 걸린 바보들'의 모습으로만 비쳤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렇게 한심한 풍경은 없었다.
논란의 시작은 당 지도부가 무색무취해서 중도확장성이 있다고 본 한덕수를 최종 후보로 정해놓고, 홍준표에 한동훈까지 다 떨어뜨리고 김문수를 ‘바지사장’ 후보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단일화에 집착해 기본적인 절차도 없이 김문수를 압박하는 무리수를 뒀다. 전당대회 세 시간 후 단일화를 요구하고, 9살이나 아래인 권성동이 김문수에게 ‘일로 앉아!’ 하고 반말을 했다. 이런 모욕을 눈뜨고 당하고만 있을 후보가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문수를 잘못 봤다.
누운 채 대선 후보 자리가 떨어질 것으로 기대한 한덕수의 ‘네다바이(남을 교묘하게 속여 금품을 빼앗는 짓)’ 정치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 노무현과 정몽준의 ‘아름다운 단일화’처럼 하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덕수는 지난한 어려움 속에서도 시민만 보고 한 길을 걸은 노무현이 아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2인자로 내란을 막지 못한 중대한 책임이 있다. 50년 공직 생활 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호언이 무색하다. 오히려 자리를 누려온 사람이라는 걸 최근 행보로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화 국면이 난맥상으로 흐른 더 근본적인 이유는 윤석열과 그 일당을 지키기 위한 무원칙한 ‘작전’이자, 지도부의 사리사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런 음모가 있었음을 간파한 홍준표와 한동훈, 심지어 안철수, 나경원까지 모든 후보가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홍준표는 어제 “3년 전 두놈이 윤석열이 데리고 올 때부터 당에 망조가 들더니 또다시 엉뚱한 짓으로 당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는구나”라고 독설을 날렸다.
사실, 국힘의 지리멸렬상은 예상된 결말이다. 계엄 이후부터만 상황만 봐도 이 점은 분명하다. 박근혜 탄핵 후 트라우마를 강조하며, 그저 뭉치기만 하면 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매몰됐다. 불법계엄에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는커녕 계엄은 대통령 권한이라고 두둔했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수사 상 일부 허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내란 수괴범 윤석열을 비호했다. 탄핵이 너무나도 당연한 윤석열을 지키기 위해 용산 대통령 관저 앞으로 달려갔다. 선거부정 음모론에 찌들고, 심지어 ‘백골단’이라는 구시대의 망령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사람이 버젓이 활동하도록 방치했다. 국민을 숫제 바보로 아는, 민주국가의 정당이 아니다.
국힘은 말로는 ‘이재명 당이 된 민주당과 달리’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정당은 조금의 이견도 용납 못한다. 그 결과, 중도층에 가장 큰 소구력을 가진, 그래서 이재명과 대결할 경우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될 수 있는 유승민도 버렸다. 박근혜 탄핵 가결을 들어 유승민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는데, 진짜 배신자는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이었던 권성동 아닌가. 그나마 그 당에서 멀쩡해 보이던 원희룡이 변한 것도 다 이당의 그런 체질 때문이다.
그 당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당원들에 맞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점점 구태의연해지는 당의 이데올로기도 지금과 같은 결말을 추동했다. 반북, 반중 일변도의 정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표출한다. 서민들의 민생보다 대기업의 이익에 더 민감하다. 미래지향적인 정치 제도 개선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눈에 불을 밝힌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폐해를 알면서도, 그것이 자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대로 가자고 한다. 그래놓고 몇석 더 얻겠다고 꼼수로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어놓는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본디 정당이나 정치인은 유권자 핑계를 대면 망한다지만, 국힘은 그 당원에도 문제가 있다. 다 흘러간 과거의 영화에 젖은 퇴행적 성향의 당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케케묵은 구시대 관념에 찌들어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젊은 당 대표 이준석을 뽑아놓고 대선에서 이기자마자 싸가지 없다고 내몰았다. 이런 모순을 타파하지 못하는 한 이 당에 미래는 없다.
김문수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노동운동을 하다 보수당에 입당했던 사람으로, 지난 2020년에는 그 당에서 나와 극우파로 변신했다. 후보가 된 뒤에도 극우 전광훈 세력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73세인 김 후보가 타협안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권성동으로부터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는 참기 어려운 모욕까지 받은 터다. 한덕수로의 후보 단일화는 물 건너갔고, 설혹 성사된다 해도 이미 효과는 날아갔다.
국힘이 국민과 공공의 선을 외면하고 당리를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된 지 오래다. 이번에 당 지도부가 후보 등록 전 11일까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도 대선 선거비용 500억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덕수를 내세운 것 역시 대선 승리보다 그 이후 다시 자신들이 당권을 잡고 차기 총선 공천권까지 거머쥘 카드라고 봤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으면 유권자를 두려워하며 혁신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20년 전 천막당사를 치고 선거전에 나서던 절박감도 없다. 홍준표도 “한국 보수진영은 또 한번 궤멸할 것”이라고 했다. 국힘이 사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시민의 신리를 다시 얻고자 한다면, 그래서 훗날에라도 집권하고자 한다면 당을 전면 해체하고 새로 출발하는 길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더 좋은 보수당을 가질 자격이 있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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