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⑯] AI 시대, 인간의 역할- 카메라와 인상파의 교훈
카메라는 현실을 기록하지만, 인간은 인상을 창조한다.
'AI는 99도까지 데려다 주지만, 물을 끓이는 1도는 인간의 역할이다.'
우리는 기술의 대전환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일의 방식까지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해도 기계가 절대 건널 수 없는 선이 있다. 마치 99도까지 데운 물이 마지막 1도에서 비로소 끓듯, 그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은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납득되지 않는 상황, 계산은 맞지만 느낌이 틀린 순간, 그곳에는 감정, 직관, 맥락이 얽힌 인간의 내면이 있다.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이 충돌하며 조화를 이루는 복잡한 내면은 아직까지 어떤 알고리즘도 완전히 해독하지 못한 영역이다.
르네상스 이래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온 화가들은 19세기 중반, 사진이라는 기술 앞에 부딪혔다. 사진은 빠르고 정밀하며 값도 저렴했다. 더 이상 화가가 사실을 묘사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때 AI에게 물었다면, 아마도 당시의 지배적 분위기를 반영해 “화가의 시대는 끝났다”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질문을 바꿨다.
“카메라처럼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보이는 것 대신, 느껴지는 것을 그리고자 한 시도가 등장한다.
프랑스 르아브르 항구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그린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는 사물의 윤곽보다 빛의 떨림과 공기의 흐름을 담았다. 이 그림은 1874년 ‘무명 화가 전시회’에 걸렸고, 비평가는 이를 조롱했다. “이건 그림이 아니라 그냥 인상(impression) 그 자체군요.”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이렇게 비웃음 속에서 태어났다. 형체도 불분명하고 대충 그린 습작 같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낯선 시도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했고,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사조가 되었다. “나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남긴 인상을 그린다.” 모네의 이 말은,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과 직관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처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들은 기존 질서 밖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인간과 자연을 다시 보려 했던 다빈치, 갈릴레오, 미켈란젤로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질문을 던졌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을 디자인했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람은 무엇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기술의 중심을 감정으로 옮겼고, 우리는 ‘손안의 세계’를 얻게 되었다.
AI는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언제나 익숙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직감에서 시작된 반응은 알고리즘이 포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각이다. AI는 과거 방식의 정답은 줄 수 있어도, 다가오는 미래에 어울리는 질문은 내놓지 못한다.
변화의 순간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공감지능이라고 부른다. 공감은 감정을 알아채는 것에서 시작해, 행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사회와 세상의 변화까지 통찰하는 힘으로 확장된다. 이 지점이 바로 공감지능이다. 애플이 만든 제품이 사용자의 감정을 저격했던 것도, 이러한 공감지능 덕분이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 이입이 아니라, 감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성 그 자체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혁신과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마지막 1도’는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감각, 공감, 직관, 그리고 의미를 찾아가는 능력이다. AI는 99도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그러나 물을 끓게 만드는 건 인간이다. AI가 수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도, 결정하는 용기와 방향은 인간의 몫이다.
김희연은 AI리터리시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의 일상적 활용 등에 천착, AI리터러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똑똑한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오른쪽)가 4월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