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나이 ‘만 72세’가 합리적인 이유…’기대여명 15년 시점부터'

[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 미국, 나이 이유로 해고 못 해…“정년제도는 나이에 따른 차별” 한국 노인들, ‘노인 기준 연령 72~73세가 적당하다’ 여겨 이중근 노인회장 “75세까지 ‘자조노인(自助老人)’으로 활동해야” 정희원 노년의학 교수 “기대여명 감안하면 점차 77세까지 올려야”

2025-05-01     고재학 기자

 

현재 만 65세인 노인 기준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부터 노인 기준 연령 상향에 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년을 없애는 등 노인 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다.

미국∙영국∙대만 등 정년 폐지…”나이를 이유로 근로자 해고 안돼”

대만은 작년 7월 만 65세 정년을 폐지하는 내용의 노동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올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근로자는 고용주와 정년 연장에 대한 협상을 통해 퇴직 시기를 미룰 수 있다.

미국은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경쟁이 치열하다. 1978년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연장한 뒤 1986년에는 정년 자체를 없앴다. 정년제도가 나이에 따른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기업은 나이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영국도 2011년 경찰, 소방관, 파일럿 등 특수업무 종사자를 제외하곤 정년을 모두 없앴다. 프랑스는 2023년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높였고, 싱가포르는 1993년 60세→1999년 62세→2022년 63세로 올렸다. 2030년에는 65세로 높일 예정이다. 일본은 법정 정년이 65세이지만, 토요타 자동차는 작년 8월부터 70세까지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2031년까지 정년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늙어도 현역이고 싶다”… 5060이 생각하는 노인은 ‘73세’

한국인들은 ‘만 65세’ 노인 기준 나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금융자산 1억원 이상 보유한 50~60대 1,000명을 조사했더니 노인 기준 나이는 73세가 적당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동일 연령대와 비교해 '외모와 건강이 더 젊어졌다'는 응답이 69%에 달했고, '나도 이제 늙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4%에 그쳤다.

서울시가 2022년 만 65세 이상 남녀 3,01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 노인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은 72.6세로 현행 법적 기준보다 7.6세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노인실태 조사에서 노인들이 생각하는 기준 나이는 71.6세였다. 

노인 기준 나이 단계적으로 올리자…1~3년 또는 10년에 한 살씩

대한노인회 이중근 회장(부영그룹 회장)은 작년 10월 노인 기준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매년 한 살씩 올리는 방안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노인 인구는 현재 1,000만명에서 2050년 2,000만명으로 급증할 전망이어서 생산인력 부족에 따른 경제 위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년 연장 첫 해에 현역 피크임금의 40%를 받고, 10년 후엔 20% 정도를 받도록 해 노인의 생산현장 잔류기간을 10년 연장하자는 게 이 회장 주장이다. 

노인들이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석 KDI 선임연구위원은 “올해부터 10년에 한 살씩 노인 나이를 상향 조정하면 2100년에 노인연령은 73세가 되고 생산연령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율은 60%가 된다”고 추정했다. 현행 65세 기준 대비 노인인구 비율이 36%포인트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해 노인연령을 2년에 한 살씩 올리거나 매년 4개월씩(3년에 한 살) 단계적으로 올리자는 의견도 나온다.  저속노화 개념으로 주목받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또한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해 노인연령을 점차적으로 77세까지 올리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기대여명 15년’을 노인 기준으로 하면 ‘만 73세’가 적당

미국 경제학자 워런 샌더슨은 ‘기대여명’(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에 기반한 노인 기준을 제안했다. 기대여명이 15년 남은 시점을 노인으로 보자는 주장이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1972년 50세 여성과 2014년 60세 여성은 기대여명이 29년으로 동일하다. 현대인이 이전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수십 년전과 동일한 노인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우리 학계에서도 노인연령과 건강 상태를 감안해 ‘기대여명이 15년 남는 시점을 노인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이 나온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적용하면 기대여명 15년 남는 시점이 1990년 65세, 2023년 72세, 2060년에는 76세이다. 이렇게 되면 2065년 기준 노인인구 비율을 46.1%에서 26.2%로 낮출 수 있다. 노인부양비율(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노인인구 비율) 또한 2065년 100.4에서 39.7로 급격히 낮아진다.

경로우대 혜택 손질→공적연금 등 소득보장제 개선→만 75세 상향

전문가들은 단계별로 노인연령을 올리자고 제안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일 주최한 ‘노인연령 전문가 간담회’에서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노인연령 규정은 신체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제도 지체'를 보여 상향 조정 필요성이 충분하다"며 3단계에 걸친 노인연령 조정을 제안했다.

1단계(2030년까지)에서는 상징성 있는 정책 변경을 통해 노년 기준 상향의 신호를 보낸다. 예컨대 올해부터 지하철 무임승차, 철도 할인 등 경로우대 혜택 기준을 매년 한 살씩 높여 70세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조례 개정을 통해 공원, 박물관 등 무료입장 기준도 점차 올리고, 노인복지법을 고쳐 '노인은 70세 이상'을 선언하자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등 노후소득보장 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한다. 예컨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2048년까지 68세로 연장하고 기초연금 신규 수급 연령도 현재 65세에서 2030년 66세로 높이면서 2040년까지 70세로 맞추는 방식이다. 이어 고령화가 지속되고 건강수명이 더 늘어나면 75세로 중장기 목표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석 교수는 “개별 제도별로 조정 속도를 달리하는 것은 물론 개인 건강·소득 등의 차이를 고려한 유연한 정책설계가 필요하다”며 "중요한 것은 연령 상향 조치가 고령층 삶의 질을 저하하지 않도록 설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노인연령을 올리려면 청년 일자리 감소, 기업 부담 증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감안해 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 임금 피크제, 순환근무제 등 고령자 재취업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2024년  6월 뉴스버스 공동대표로 합류해 경제 부문을 맡고 있다.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우직하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힘을 믿는 언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