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집무실 일단 쓰겠다"는 이재명의 돋보인 실용주의
윤석열 정권과의 확실한 결별은 '국민' 최우선 국정운영
윤석열 정권은 용산으로 시작해 용산으로 끝났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대통령직에서 수치스럽게 파면당한 윤석열과 조만간 남편처럼 법정에 서야만 할 처지인 김건희 두 사람의 개인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용산구와의 특별한 인연은 발견되지 않는다.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가 용산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구체적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기까지는 앞으로 어쩌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성싶다.
'용산 이전'은 윤석열의 인생 첫 돌려막기
대통령의 공적 업무 수행과 밀접히 관계된 여러 긴요하고 필수적인 국가 시설물들의 이전 추진 과정에서 떨어질 짭짤한 콩고물을 노렸기 때문인지, 또는 세간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대로 무속인들의 주술적 조언을 맹종했기 때문인지 상세한 이유는 여전히 장막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난 결과는 우리가 지금 생생하게 목격하는 바 그대로이다.
윤석열은 임기 초기의 귀중한 국정 동력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기존 청와대에서 삼각지와 한남동으로 무리하게 이전하다가 헛되이 탕진하고 말았다. 그나마 잔존한 에너지는 윤석열이 대권 주자 시절부터 줄곧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를 폭력적으로 숙청하는 데 써버렸다.
과거에는 신용카드 한도가 소진되면 다른 카드로 급히 신용대출을 받아 구멍 난 카드를 메우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흔히 하곤 했다. 카드 대란 사태 이후 개인신용 제도가 크게 바뀌면서 이런 돌려막기 대책은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습관적이고 아슬아슬한 돌려막기의 끝은 신용불량자로의 전락이나 파산이기 일쑤인 탓이었다.
윤석열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가 사법시험을 무려 9번씩이나 응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나이 서른이 되도록 번듯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아도 생활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집안의 재력이 탄탄한 덕이었다. 더욱이 윤석열은 변호사로 일한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면 월급이 밀리거나 떼일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검찰 공무원으로만 근무했다. 돌려막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 처절히 깨달을 계기가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윤석열이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본 돌려막기가 하필이면 ‘국정 동력 돌려막기’라는 점이었다. 그는 용산 이전 강행으로 공중으로 허망하게 날려 먹은 국정 동력을 처음에는 검찰에게서 빌려왔다. 검찰의 힘만으로도 모자라자 급기야는 군부에서 국정 동력을 끌어왔다. 국회와 선관위를 수백 명의 무장군인들을 동원해 불법 침탈한 12·3 내란은 윤석열이 저지른 무모한 돌려막기 행각의 파국적 결말이었다.
소진된 국정 동력을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인 선거절차를 통해 정상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는 윤석열에게도 당연히 보장돼 있었다. 바로 작년 4월 실시된 제22대 총선이 그 무대였다. 그러나 윤석열은 절대 놓쳐선 안 될 이 금쪽같은 재충전의 기회를 12살 연하의 띠동갑 아내인 김건희를 막무가내로 감싸고 도느라 어리석게 제 발로 저 멀리 냅다 차버렸다. 김건희는 대통령 배우자가 자행할 수 있는 일탈과 비리 행위의 성격을 단순한 부정부패 수준에서 총체적 국정개입 차원으로 몇 단계 업그레이드(?)해놓은 터였다.
이재명은 허깨비 같은 공간과 싸우지 말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3일 치러질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할 게 유력시되는 분위기이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최신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여야 양자 경쟁은 물론이고 3자 대결을 가정한 상황에서마저 과반선인 50퍼센트를 돌파했다.
투표함을 모두 개봉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게 선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윤석열의 철없고 후안무치한 신당 놀음에 국민의힘이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농락당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마지막 극적 반전은 없을 전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는 국무총리 한덕수를 중심으로 정치권 언저리에서 모의되는 소위 빅텐트 움직임은 국민의힘의 몰락을 되레 한층 더 도드라지게 만들 뿐이다. 검찰과 법원에 아직 똬리를 틀고 있는 일부 법기술자들의 대선판 뒤집기 시도는 이재명 지지층의 결집력만 외려 높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선거 승리 못잖게 차기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의 국정운영에도 적잖이 신경을 써야만 하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역시 조기 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3개월에 달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 없이 곧바로 집무에 착수해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준비된 대통령이 돼야만 할 운명이다.
새 대통령 이재명의 발등에 가장 먼저 떨어질 불은 윤석열 정권이 남긴 대표적인 부정적 유산인 용산에 소재한 대통령 관련 시설들의 처리 방향이다. 윤석열과 그의 추종 세력이 내란 음모를 기획·실행한 옛 국방부 청사 건물 안의 대통령 집무실을 계속 사용할 것인지를, 직전 영부인 김건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을 한남동 관저에 아내인 김혜경 여사와 함께 입주할 것인지를 이재명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기 무섭게 즉시 결정해야만 한다.
솔직히 들어가기 싫을 것이다. 삼각지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 전부 폐가를 넘어 심지어 을씨년스러운 흉가의 기운조차 풍기고 있는 탓이다.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전복을 획책한 전임 정권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청산을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이 윤석열의 흔적과 체취가 물씬한 장소들을 변함없이 이용하는 일은 일종의 자기모순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 곤란한 난제에 관해 이미 명확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의 마당을 빌려 일단은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갈 방침임을 천명했다. 용산에는 무조건 입주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견해를 피력한 김동연 경기지사나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반응이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윤석열 시대와의 확실한 결별은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윤석열이 쓰던 건물과 장소를 무조건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안겨줄 부담과 피해는 터럭만큼도 아랑곳하지 않은 윤석열의 교조적이고 경직된 태도와는 정반대로 유연하고 실용주의적 접근법 아래 제반 문제와 현안을 해결하는 길에 진정한 차별화가 있으리라.
청와대로 다시 옮기건, 아예 세종시로 내려가건 이전 작업 비용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납부한 혈세에서 나온다. 아무리 거창한 명분과 대의를 표방한들 민중에게 커다란 짐을 지운다면 해당 국책사업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단적으로 과도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다 멸망한 국가와 왕조의 사례는 인류사에 차고도 넘친다.
이재명의 비판자나 반대파는 그가 교조적이고 경직된 정책을 고집할 것이라고 요란하게 주장해왔다. 이재명이 정적들의 주장을 일거에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문제에서부터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유연하고 실용주의적 면모를 현재처럼 과시하면 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초기의 귀하디귀한 국정 동력을 공간과의 싸움에 무용하게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에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나라 안팎의 산적한 과제들이 너무나 무겁고 벅차다. 이재명에 대한 민심의 압도적 지지는 그런 중대하고 화급한 숙제들부터 우선 풀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행간에 묵직하게 담긴 성원과 믿음의 표시일 것이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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