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아바타 '한덕수'와 '2002년 후단협‘의 추억
한덕수 차출론은 윤석열과 보수정당의 종말 예고편
2002년 후단협과 2025년의 '후단협?'
“역사는 되풀이된다. 처음 한 번은 비극으로, 나중 한 번은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를 논평하며 남긴 유명한 명제다. 이 촌철살인의 명제는 내란수괴 혐의자 윤석열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전원일치 판결로 대한민국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올해 봄에도 어김없이 소환됐다. 자당의 대통령 후보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흔들어 쫓아내려던 후안무치한 후단협 일당의 망령이 만으로 23년가량의 시차를 두고서 우리나라 제도권 정치에 다시금 등장한 탓이다.
후보단일화협의회, 약칭 ‘후단협’의 표면적 출범 목적은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허나 후단협의 주축을 구성한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원래의 소속당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아예 한나라당에 입당해버린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실질적 노림수가 당내의 기득권 고수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내 기득권의 골간이 다음번 총선에서의 공천 보장과 본인이 관리하는 지역구에서의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후단협은 2002년에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와는 부정적 맥락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당하고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선출된 자당의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후단협 측의 전방위적 공세와 압박이 가히 엽기적인 막장 드라마 수준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부도덕의 단계를 넘어 심지어 패륜적이기까지 했던 후단협의 준동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른바 천신정 그룹이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계기와 구실로 작용했다. 후단협이 대선후보 시절의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남긴 충격과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었다는 뜻이다. 필자가 과거 한때 ‘노빠 공장 공장장’을 자처하며 ‘노무현 지키기 운동에 분연히 동참했던 일도 그 동기 부여의 8할은 후단협에 대한 분노와 응징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개인 차원으로는 이인제 전 의원이, 집단 층위에서는 후단협이 경선 불복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통용돼왔다. 그러나 이인제와 후단협 모두 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사실상 정해지거나 혹은 공식적으로 선출된 이후 불복 행위를 시작했다. 자당의 대선 후보가 아직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승복을 거부하며 당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2025년 봄, 윤석열을 여전히 추종하고 있는 친윤 세력은 경선 불복의 역사에서 새롭고 획기적인 장을 써나가고 있다. 그들이 경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기호조차 결정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자당의 대선 후보 흔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친윤 세력이 주도하는 보수판 후단협은 원조 후단협과 비교해 세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자당이 선출한 후보로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지레짐작하는 지독한 패배주의이다.
두 번째는 대선 승리보다는 자신들의 당내 기득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독한 이기주의이다.
세 번째는 권력이 던져주는 완장과 콩고물을 좇아서 수시로 둥지를 갈아타는 비루한 기회주의이다.
친한동훈계 김종혁, 음모의 몸통으로 尹·김건희 부부 지목
공통점이 민중의 공분을 부른다면, 차이점은 유권자들의 역겨움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첫 번째 차이점은 이미 앞부분에서 지적한 것처럼 원조 후단협은 선출된 후보를 흔들었지만, 보수판 후단협은 선출되지도 않은 후보를 미리 흔들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차이점은 원조 후단협은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 정상회담 실현, 한류 문화 창달과 정보화 강국 건설 등 재임 중에 다채로운 업적과 성과를 쌓은 김대중 정부를 계승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보수판 후단협은 임기 내내 실정과 폭주만 거듭하다가 종국에는 친위 군사쿠데타까지 일으켰다 자멸하고 만 윤석열을 보위하겠다는 허튼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원조 후단협은 당시 청와대의 실제 의중과는 무관하게 자기들의 독자적 판단으로 자당의 대선 후보를 공격했지만, 보수판 후단협은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탄핵의 핵심적인 원인들을 제공했던 직전 영부인 김건희가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김종혁 전 국민회의 조직부총장이 “거대한 음모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판을 뒤덮고 있다”고 분석하며, “각본을 쓴 건 물러난 대통령과 여사의 측근들일 가능성이 있고 감독은 친윤 지도부, 연출은 일부 찐윤 의원들 그리고 주연은 한덕수 권한대행이다”라고 '윤건희 부부'가 보수판 후단협의 몸통임을 까발렸겠는가.
2002년 후단협이 염두에 둔 노무현의 대안은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다. 현역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정몽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히딩크 사단이 이룩한 4강 신화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대선에 출마할 나름의 정당성과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아크로비스타에서 염치없이 개선장군 흉내를 내는 데 여념이 없는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그들의 추종자는 국민의 신임을 철저하게 배신한 '내란 세력'과 내란 우두머리 옹위 세력일 뿐이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를 인위적으로 주저앉힌 다음 한덕수를 꽃가마에 태워 범보수(빅텐트) 후보로 출전시키겠다는 시나리오는 어느 모로 보나 망상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를 2002년의 정몽준이 듣게 된다면 너무나 불쾌한 나머지 타임머신을 타고 2025년으로 날아와 국민의힘 당사로 쳐들어갈지도 모를 노릇이다.
한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에 관해 가타부타 구체적 입장 표명이 여태껏 없다. 한덕수에게는 밑져야 본전인 연유에서이리라. 그는 이대로 정권이 순조롭게 야당으로 교체되면 12·3 내란에서의 석연치 않은 처신과 행적, 그리고 국회 몫 헌재 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은 '위헌적 부작위' 행위 등으로 말미암아 공수처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기관의 수사선상에 오를 개연성이 짙다. 한덕수는 대통령 선거 입후보를 최고의 방탄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나경원을 제외한 한동훈과 김문수, 그리고 홍준표이다. 노무현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당차게 일갈함으로써 수구 언론의 정치공작 여지를 차단했다. 언론개혁을 열망하는 민심의 갈증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다 실패한 윤석열 세력들은 이제 정당정치까지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내란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사과·반성 한마디 없이 대선으로 몰려가는 당을 '공당'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어쨌든 정상적 절차를 통해 뽑힌 공당의 대선 후보자의 자리를 후보 단일화의 미명 아래 빼앗는 일은 정당정치의 존재의 이유가 근본적으로 부정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눈 뜨고 코 베일 처지에 놓인 한동훈에게, 김문수에게, 홍준표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는 지금 당장 국민의힘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라고 서초동의 아크로비스타를 향해 단호하고 분명하게 촉구하라고. 그게 한국 정치의 한 축으로 수십 년 동안 버텨온 보수정당의 마지막 자존심이나마 지키는 길일 게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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