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할수록 무식 드러나는 정치권 

개헌없이 가능한 책임총리제도 안하면서 ‘분권형 대통령제’? 지방 분권은 지방 민주주의 저해할 소지 개헌은 시작 아닌 결과… 사람부터 바뀌어야 

2025-04-14     김수민 정치평론가
국민의힘 인사들이 2월 12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이양수 사무총장,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도해 왔다. 대통령 1인에게 국정의 모든 권한이 집중되면서 협치는 실종되고 정치가 진영 대결로 변질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87 개헌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왕적 국회의 출현.” 이것은 토론회에서 나온 공방 내용이 아니다. 놀랍게도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개헌 필요성을 강조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다. 

대한민국이 <글래디에이터Ⅱ>의 형제 황제처럼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가 함께 있는 나라인가.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를 모두 청산하는 개헌은 과연 어떤 것일까. 대통령과 국회의 독자적 권한이나 상호 견제 기능을 모두 줄이는 것? 그러면 양쪽 다 고삐가 풀린다. 아니면 모두 키우는 것? 그러면 서로 더 꽁꽁 묶인다. 설마, 국민투표로 의회와 행정부의 권력을 대거 이관하는 급진주의는 아닐 것이다. 

헌법 개정 이후 38년이 지났다. 두 번의 대통령 파면과 그에 얽힌 뇌물 게이트, 내란 사태를 경험했으니 헌정 질서 전체를 돌아보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권의 논의를 살펴보면 ‘지금은 개헌할 때가 아니다’를 넘어, ‘역시나 개헌은 안 된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오용되는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다. ‘외교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내각)’이라는 설명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예컨대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위해 부지 소유주와 논의하는 것은 외교인가, 내치인가. 오스트리아도 실질적 정상회담에는 총리가 나온다. 외교와 내치의 권한을 분리한 나라는 동서고금에 없었고 공상과학소설에도 존재할 수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해보이겠다면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현행 헌법으로도 책임총리제 내지 이원정부제는 가능하다. 국무총리 임명동의권이라는 지렛대가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회 다수파가 추천하는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할 경우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 된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이원정부제 국가들은 개헌 이전에 의원내각제적 규범과 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도를 먼저 했다. 한국은 1998-2000년의 경험이 전부다. 분권형 대통령제 지지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시제품도 없이 광고부터 하니 시장 반응이 나쁜 것이다. 더구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간신들이 이제 와 분권형 개헌을 떠드니 설득력을 갖출 수 없다. 

개헌 논의를 물리치거나 보류하는 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라고 하는 제왕적 제도 때문에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부터 레임덕이 시작됩니다.” 단임제=제왕적=레임덕? 이런 수준이라면 머리를 맞댈수록 더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오는 지방 분권 개헌론도 개악이다. 지방정부가 커다란 결정권을 갖고 그 지역에서 걷은 재원을 그 지역에서 쓰는 비중을 늘린다면, 그 결과는 ‘지역 불평등’이다. 지방 분권은 각자도생이고, ‘균형 발전’, ‘수도권 과밀 해소’, ‘지방 소멸 대응’과 모두 충돌하는데도, 이들을 한꺼번에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 끌어 모아놓으면 그럴싸할 것 같은가. 

지방 분권형 내지 연방제인 국가들은 본디 지역간 문화와 제도의 차이가 컸다. 통합을 위해서라도 각지에 강한 자치권을 줘야 할 사정이 있었다. 한국은 그 반대다. 지방 분권은 지방민주주의까지 저해할 것이다. 지방 ‘주민’ 다수는 외롭거나 관심이 없고, 규모 있는 중앙정치의 ‘국민’보다 힘이 약하다. 견제도 제대로 받지 않을 소통령들 일자리를 창출할 시간에, 현행 지방자치나 똑바로 하라.

한편 시민사회의 여러 개헌론자들은 ‘국민 주도 개헌’을 주창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시간이 없다. ‘참여’는 참여 가능한 엘리트들의 허울일 뿐이다. 국민이 책임질 도리도 없다. 다수 국민이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에 맞지 않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가령 다당제를 선호하면서 비례대표제 확대나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반대한다거나, 국민연금 지속성을 중시하면서 소득대체율 인상을 찬성한다거나). 추첨제로 개헌 숙의 기구를 만드는 것은 필요하지만, 불참 국민들이 공론화 결과를 존중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개헌을 포함한 중대한 정책 결정에 필요한 것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을 대면하고 국민의 수긍을 얻어낼 ‘리더십’이다.  

내가 이 글에서 지적한 것들은 10년, 15년 전에도 했던 얘기들이다. 그동안 아무 진척이 없었는데 갑자기 진전될 수가 없다. 개헌은 변화의 시작이 아니라 그 결과다. 개헌론으로 변화를 추동하겠다는 건 ‘말 앞에 수레놓기’다. 정치하는 사람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납득케 하고 개헌이 가능한 구도를 만들 이들이, 스스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교착 구도에 의존해 정치를 해온 자들을 밀어내야 한다. 개헌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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