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⑬] AI 시대 '공부란 무엇인가'…'질문과 실행'

질문의 격차와 실행의 격차로 공부 판단 기준 바뀔 것

2025-04-13     김희연 AI리터러시 컨설턴트

“공부 좀 해라.”
오랜 세월 이 말은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교과서를 외우고, 이해하고 성적을 올리는 행위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뜻을 다시 물어야 할 때다. AI가 지식을 정리하고, 요약하고,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다.

과거 공부의 개념과 AI시대 달라진 공부의 개념을 반영해 챗GPT가 그려낸 그림.(삽화=뉴스버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학생만의 몫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 사람을 뽑는 리더,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려는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공부의 본래 뜻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한자로 공부는 ‘공부(工夫)’다. 공(工)은 손과 도구를 써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조의 행위이고, 부(夫)는 자기 삶을 주도하는 어른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즉,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삶을 다듬고 문제를 풀어가는 실천이자,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인생의 공방(工房)인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 우리는 그 본래의 뜻을 잃었다. 이 왜곡은 시대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취했고, 이미 정해진 정답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알고 적용하느냐가 성패를 갈랐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는 암기와 성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성적 →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안정된 삶이라는 등식은, 적어도 그 시대엔 틀리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세대들은 이러한 공식을 믿고 실천했고 높은 교육열은 분명 한국의 빠른 발전에 기여했다.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피할 수 없는 전제가 되었고, AI 혁명, 기후 위기, 인구 절벽 등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과제들이 넘쳐난다.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야 할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AI가 가져온 지식의 민주화는 더 큰 전환점이다. 누구나 챗GPT와 같은 도구를 통해 최고의 정보와 학습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의 격차’는 줄고 '질문의 격차', '실행의 격차'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미래 직업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높아질 역량은 비판적 사고, 창의성, 사회적 지능, 그리고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꼽는다. 모두 단순 암기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역량들이다.

건강이란 단어를 떠올려 보자. 과거엔 병이 없는 상태, 혹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건강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삶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예방, 회복력, 생활습관이 건강의 핵심으로 이동했다. 운동을 가르치는 PT 트레이너 직종이 생기고, 건강 검진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을 담는 단어의 정의도 함께 바뀐다.공부도 예외는 아니다.

AI 시대의 공부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시도하고 부딪히며, 실패하면서 감각으로 체득해내는 과정이다. 하버드 대학의 교육학 교수 토니 와그너는 "지식이 아닌 호기심,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이 미래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전환은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지만, 서예 수업에서 얻은 감각이 애플 디자인의 미학을 만든 기초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전통 교육에서 벗어나 스스로 로켓 과학과 제조 기술을 익혔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양재동 코딩 부트캠프 출신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서연(가명) 씨는 인문학 전공자로 전통적인 IT 경력이 없었지만, 짧은 교육 기간 동안 실제 문제 해결 중심의 학습을 통해 현재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한 씨는 "암기보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을 찾고 적용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부딪히며 배우는 시대다. 교과서보다 현실이 더 빨리 변하고, ‘학(學)’보다 ‘습(習)’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부, 그대로여도 괜찮을까?

문제는, 여전히 대치동 학원가는 붐비고, 부모들은 대학 이름으로 미래를 점친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기존의 공부 방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78%가 "학교 성적보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물론 여전히 입시나 학벌이 의미를 갖는 사회 구조는 존재한다. 특히 명문대가 제공하는 네트워크와 기회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경험을 쌓으며,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입시와 새로운 학습 패러다임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할 요소들이다.

공부는 자기 삶의 공방(工房)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AI 시대는 지식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대다. 그 지식을 어떻게 질문하고 실행하는지, 그게 진짜 공부다. 과거 지식 쌓는 방법인 '외우고 이해하는 데' 머무른다면, 그건 공부가 아니라 과거의 모형을 반복하는 일일 뿐이다. 이제 공부는 변화를 감각적으로 체득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행위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김희연은 AI리터리시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의 일상적 활용 등에 천착,  AI리터러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똑똑한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4월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