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개헌'은 이재명 막으려는 ‘보수 대연합’의 트로이 목마

내란 종식도, 정권교체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건만...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 개헌 앞세워 이재명 고립 노골화 움직임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내란이 진압되지 않았다는 반증

2025-04-09     공희준 메시지컨설턴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최상목 기획재정부장관. (사진=연합뉴스)


민주자유당의 출생의 비밀이었던 내각제 개헌 합의

민주자유당은 노태우 총재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세 당이 전격적으로 통합해 1990년 2월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약칭인 ‘민자당’으로 더 자주 불렸던 민주자유당은 전체 299석 가운데 무려 217석에 달하는 국회 의석수를 차지한 가히 공룡급 정당이었다.

민자당은 세 가지 목적을 갖고 창당됐다.

첫 번째 목적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로 탄생한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내각제로 바꾸는 일이었다. 이는 노태우와 김종필(JP)의 핵심적 노림수였다.

두 번째 목적은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이었다. 김대중(DJ)과 오랫동안 숙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온 김영삼(YS)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며 군부 권위주의 세력과의 야합을 불사한 배경이자 동기였다.

세 번째 목적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기초한 보수 대연합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보수 대연합을 현실화하려면 호남 민중의 배제가 전제돼야만 했다. 3당 합당의 가장 크고 두드러진 비윤리성과 부도덕함은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장기간의 차별과 박해를 아예 항구적으로 제도화하려 는 데 있었다.

3당 합당의 주역인 YS와 JP, 노태우는 이제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3당 합당의 한 축인 JP와 연대해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성사시킨 DJ 또한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보수 대연합의 음산한 유혹만은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국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윤석열이 점화한 내란의 불길이 아직껏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단적인 사례로 윤석열 정권의 2인자였던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대통령 몫의 신임 헌법재판관에 지명하는 위헌적 무리수를 태연하게 감행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인 한 총리에게 그와 같은 권능이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완규 처장은 윤석열의 12·3 친위 군사쿠데타 이튿날 은밀하게 열렸던 이른바 ‘삼청동 안가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모임 직후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기를 곧바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완규는 윤석열의 내란 음모에 동조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누가 벌써 샴페인을 터트리는가

내란에 확실한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개헌 논의는 한마디로 샴페인을 터뜨려도 너무 일찍 터트린 격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조기 대선과,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제안하는 것과 같은 작금의 성급한 개헌 공론화 작업은 산 곳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데도 산불 다 껐다고 기뻐하며 돼지 잡고, 닭 잡아 요란하게 마을잔치 여는 형국이라 하겠다.

내란의 불씨가 완벽히 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일부까지 개헌으로의 국면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바람대로 개헌 정국으로의 변침과 이행이 급속도로 진행된다면 어떠한 결말로 귀결될까? 나는 1990년의 3당 합당 당시의 분위기와 유사한 정세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첫째로 대다수 국민의 참다운 민의와는 무관하게 현행 대통령제를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려는 소수의 특권적이고 폐쇄적인 과두정치(Oligarchy) 집단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많다고 떠들어대는 소리는 겉으로 무슨 핑계와 명분을 둘러대든 간에 속으로는 내각제 하자는 얘기와 똑같기 때문이다.

둘째로 3당 합당 강행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사태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저지해야만 한다는 초조함의 표출이었듯이, 지금 시점에서의 막무가내식 개헌 주장은 이재명이 집권하는 경우만은 어떤 권모술수를 동원해라도 일단은 막고 봐야 한다는 정치병리학적인 강박증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셋째로 내각제 개헌 시도가 초거대 여당 민자당으로 상징되는 보수세력의 대연합 결성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처럼, 윤석열 내란 국면에서의 준비 안 된 졸속적인 개헌 추진이 제2의 보수대연합을 태동시킬 위험성을 마냥 배제하기는 어렵다. 때마침 조선일보를 위시한 여러 보수 언론사들은 개헌을 기치로 내걸고 이재명을 고립시키고 더불어민주당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이미 노골화한 상태이다.

한덕수의 마구잡이 인사권 남용은 내란이 끝나지 않았음을 뚜렷이 웅변하고 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윤석열은 자신의 지지층을 선동하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메시지를 수시로 내보내면서 권토중래를 도모하고 있다.

국민을 특히 불안하게 하는 부분은 윤석열과 시종일관 일심동체로 행동하고 있는 내란 세력의 불온하고 께름직한 동향이다. 내란 세력은 이재명 체제의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을 향해 헌법개정에 협조할 것을 압박하며 ‘개헌세력으로의 신분세탁’을 교묘하게 획책해왔다. 개헌이 응당 이뤄져야 할 정권교체의 흐름에 어깃장을 놓고, 사회 대개혁이 있어야 마땅할 자리에 엉뚱하게도 보수 대연합을 들여앉히는 트로이의 목마 구실을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재 단연코 제일 중요하고 긴박한 과제는 정권교체와 여기에 자연스럽게 후속될 사회 대개혁일 테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민심에 찬물을 끼얹고, 사회 대개혁과 필연적으로 정면충돌할 보수 대연합의 개헌 대오에 야권 일각마저 개념 없이 부화뇌동하는 세태에 대해 필자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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