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갈수록 재앙 수준의 산불이 발생하는 이유는?
식물 생태계가 산불 유발?
최근 경북 지방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난 산불은 엄청난 피해를 내면서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금세기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빈도와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는데,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진화하기 어려운 경우마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2007년부터 전국적 규모의 동시다발적 산불이 자주 발생하여 큰 피해를 냈고, 2018년 여름에는 사상 최초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산불이 일어난 적이 있다.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은 한 달 이상씩 지속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2019년 하반기부터 이듬해까지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6개월가량 계속된 산불은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로 나라 전역을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게 하면서 마치 지구 종말의 날과 같은 광경을 연출했을 뿐 아니라, 연무가 다른 대륙에까지 날아갈 정도여서 지구촌 전체에 큰 충격과 고민을 안겨준 바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심각해져 가는 산불은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 현상과 큰 관련이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즉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기온이 점점 올라가고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예전에는 산불이 잘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마저 고온 건조하게 변화하면서 산불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형 산불의 결과 너른 숲이 소실되고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므로, 지구온난화가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원시림이 극히 적고 대부분 실화에 의해 산불이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해당하지 않겠지만,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산불은 오랫동안 대규모의 파괴와 함께 새로운 환경을 생성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즉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에서 크고 작은 산불은 늘 일어났고, 그때마다 생태계 전체가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살아남아 번성하도록 환경에 적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자연발생적인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은 식물의 생태계가 산불을 유발한다고 추정되어왔다. 그동안 증거가 부족한 가설이었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 산불과 식물이 상호작용하는 작동 원리가 밝혀지고 있다. 산불로 인하여 폐허가 된 지역에서는 ‘화재 후 단명식물(Fire Ephemerals)’들이 갑자기 늘어나는데, 몇 년 이상 땅속에서 묻혀 있던 씨앗들이 산불을 계기로 하여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불로 식물이 타는 연기에서 나오는 카리킨(karrikin)이라는 독특한 화학물질이 잠들어 있던 씨앗을 깨워서 발아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적인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연기’를 지칭하는 그들의 언어에서 비롯된 용어라 한다. 카리킨은 산불이 나서 섬유소 계열의 탄수화물이 불에 타는 과정에서만 만들어지며, 식물의 잎에서 평상시에 자연적으로는 전혀 생성되지 않는다. 산불로 인한 연기가 땅속에 스며들어 씨앗과 만나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면, 발아한 씨앗은 땅 위에서 꽃을 피우고 다시 그 씨앗은 땅속에서 잠자면서 다음번 산불을 기다리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불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서 소나무 군락이 지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침엽수로서 송진을 함유하는 소나무는 잎이 두꺼운 활엽수 종에 비해 산불에 취약한 나무이다. 미국 등 해외지역에서 소나무는 산불을 유발하는 식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불을 통하여 더욱 번성하게끔 진화해와서 산불이 더욱 맹렬해지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두꺼운 방어벽으로 안에 있는 씨앗을 보호하는 솔방울은 소나무가 불을 이용하여 증식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산불은 솔방울을 열어서 씨앗이 땅에 떨어지도록 도울 뿐 아니라 소나무와 경쟁이 될만한 다른 나무들까지 모두 태워서 없애주기 때문에, 산불 후에 발아한 어린 소나무는 다른 식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소나무 중에서 남아프리카나 유럽 등지에서 자라는 우산 소나무(Stone pine; Pinus pinea)는, 잎을 불이 닿지 않도록 꼭대기 부근에 보존하여 살아남는 방법으로 화재에 맞춰서 진화하였다.
코알라의 먹이로도 잘 알려진 유칼립투스 나무 역시 번식을 위해 산불을 유발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인 유칼립투스의 나뭇잎과 수액은 불에 잘 타기 때문에, 연료를 제공 받은 불길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산불로 주변이 황무지가 된 후에야 불에 탄 유칼립투스의 씨주머니(Seed capsule)가 열리고, 새로운 생명은 다시 자라나게 된다.
물론 식물이 산불을 유발한다고 해서, 사람의 방화나 실화처럼 직접 산불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발화하는 산불은 번개로 인한 불꽃, 또는 극도로 메마른 환경에서 마찰열 등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컨대 오랫동안 산불에 함께 번성하도록 진화해 온 많은 식물로서는 산불 자체가 생태계의 하나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근래의 기후변화 등에 의하여 산불이 더 잘 일어나고 맹렬히 번지도록 촉진되면서, 인간에게는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되어가고 있다.
최성우는 일간신문, 잡지, 온라인 매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TV 과학채널 코너에 출연하는 등 과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중소기업 연구소장,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부 정책평가위원,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민간협의회 위원 등 과학기술 정책 자문도 맡았다.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기술,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위하여’,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 ‘발명과 발견의 과학사’ ‘과학자, 인간의 과학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