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산불에 폐허가 된 숲, 그 이면의 진실
산불, 왜곡된 산림정책과 소나무 조림이 부른 '인재(人災)' 탄소배출권 시장의 역설…생태계 파괴와 대형 산불 소나무의 마른 잎과 가지, 산불 도화선·화약고 역할
최근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산불은 영남 지역을 붉게 물들이더니, 새까만 폐허로 만들어놓았다. 몇 년 전 강원도를 태운 산불이 올해는 영남 지역 전체와 지리산 자락까지 삼켰다.
그런데 이 산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 2016년과 2021년 이스라엘에서도 대형 산불이 휩쓸었는데, 당시 산불이 난 곳은 대부분 소나무 숲이었다.
이스라엘의 소나무 심기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사막에 꽃을 피우자"는 시오니즘의 구호 아래 유럽 소나무, 그리고 호주에서 들여온 유칼립투스를 심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를 심어 그들의 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이들 나무들이 산불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면서 산불 재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마푸체족들은 조상 대대로 그 숲의 자생림과 함께 살아왔다. 버섯을 따고, 가축을 양육하고, 땅을 일궜다. 이 마푸체족의 땅에 어느 날부터 소나무가 심어졌고, 그 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이 소나무 때문에 땅에서 쫓겨난다. 소나무를 심으면 탄소배출권이 발급되고 돈벌이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태 균형이 파괴된 소나무 조림은 결국 산불 화약고가 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칠레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빨리 자라는 소나무를 심었다. 공공재정을 두개의 임업 기업에 지원하고 닥치는 대로 소나무 조림을 확대했다. 이 소나무를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고온 건조한 기후 상태가 점점 심해지면서 산불 위험성이 커지고 산불도 빈발했다. 이후 칠레 과학자들은 소나무와 유칼립투스가 산불을 쉽게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세계에서 유칼립투스가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가 포르투갈이다. 펄프 및 제지 산업 때문이다. 포르투갈 역시 대규모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의 역설
전세계에 걸쳐 빨리 자라는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는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한 주요 수단이 되었고, 자본가들은 이들 나무를 심어 빠르게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기후위기를 벗어나고자 도입한 탄소배출권 시장이 원래 살던 숲과 사람을 내쫓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었고,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는 결국 산불의 도화선이자 대규모 탄소 발생의 원인이 되고 마는 악순환을 초래한 것이다. 자본가들에 의해 또는 국가에 의해 조성된 단일 숲, 소위 소나무 조림이 펼쳐진 이스라엘, 남미의 칠레, 그리고 지중해 연안 국가 포르투갈 등에서 산불이 극성을 피우는 이유다.
왜곡된 산림정책의 심각성
역대 우리나라 산림 정책의 핵심은 조림과 보호 육성이다. 그러다 보니 조림 수목이 산림을 결정한다. 조림 수목은 대부분 소나무이다. 보호 육성 역시 소나무 중심이고 활엽수는 제거 대상이었다.
관료제의 관성과 더불어 전 국토를 소나무 조림으로 가꿔 시장성을 유지하려는 성장주의 관성들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산림청은 기후위기 시대에 소나무를 심으면 안 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 산불의 도화선을 매설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나무 숲 조림으로 대표되는 숲 가꾸기 사업은 숲을 건조하게 만든다. 자연숲은 빗물을 머금고 토양을 늘 촉촉하게 유지하지만, 숲 가꾸기 숲은 빗물을 오히려 숲 밖으로 내보낸다. 연간 유출량이 무려 1.7배나 증가한다. 저장하는 빗물의 양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니 당연히 숲은 말라간다. 게다가 다량의 송진을 포함한 소나무의 마른 잎과 가지는 불이 붙을 때 불소시개가 되고 산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숲 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숲에 들어가면 바짝 마른, 기름을 두른 소나무 잎 들이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국립공원은 자연림으로 구성돼 대형 산불이 발생하지 않고, 인접 지역에서 큰 산불이 발생해도 웬만해선 국립공원 내부로 잘 옮겨 붙지 않는다.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 때문이다.
산림청의 숲 가꾸기는 주로 불쏘시개가 되는 소나무만을 남기고, 산불을 억제하는 진짜 나무(참나무)를 포함한 낙엽활엽수들을 잡목이라 해서 다 베왔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산불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불의 위험성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대형 산불이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드는 데 세금을 투입한 결과로 봐야 한다.
산림청은 이제 소나무 중심의 산림 정책에서 활엽수와 침엽수의 균형을 맞추는 숲 가꾸기로 전환해야 할 때가 왔다. 단지 산불 예방 차원을 넘어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근본적인 산림 관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인형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맡았고, 서울대 농생대에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지금은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개인신용정보 분산화 플랫폼도 준비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관심사다.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면서, ESG코리아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