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첫 '법관탄핵' 각하..."임기 끝나 파면 못해"

5(각하):3(인용):1(심판종료)...법정의견은 '각하' 재판관 3인 "중대한 헌법 위반 확인"

2021-10-28     윤진희 기자
28일 서울 종로 소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사진=뉴스1)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탄핵 사건이 ‘각하’로 종결됐다. 피소추인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이미 퇴직한 판사를 파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8일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첫 법관탄핵 피소추인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5(각하):3(인용):1(심판종료)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심판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심판 청구 자체가 부적법한 것으로 보고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을 종료하는 것을 말한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퇴직자 신분...파면 여부 따질 수 없어

이날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탄핵 사건에서 법정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선고한 주요한 이유는 탄핵심판의 피소추인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직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9인 가운데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 등 5인의 재판관은 "탄핵심판의 이익이란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기 위해 심리를 계속할 이익"이라며 "파면 할 수 없어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심판 이익은 소멸하게 된다"고 밝혔다. 

탄핵제도는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 위헌‧위법적인 행위를 했을 때 해당 공직자를 가능한 빠르게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피소추인이 임기만료로 퇴직하거나 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경우에는 탄핵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헌법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다수의견을 낸 5인의 재판관 가운데 이미선 재판관은 종국 결정을 ‘각하’로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향후 입법을 통해 퇴직 법관에 대해서도 파면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유남석 헌재소장‧이석태‧김기영 재판관 “탄핵 인용해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석태‧김기영 재판관 등 3인의 재판관은 국회의 탄핵 소추를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3인의 재판관은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인정해 본안 판단에 나아가 피청구인의 행위가 직무집행에 있어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더해 “피청구인의 행위로 인한 법치주의 훼손을 확인하면서 탄핵심판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형배 재판관은 임 전 부장판사가 퇴직했기 때문에 탄핵심판 절차 자체를 종료하는 게 타당하다는 ‘심판절차 종료’ 의견을 냈다. 문 재판관은 “피청구인이 임기 만료로 퇴직한 경우 더 이상 탄핵심판의 피청구인이 될 자격을 보유하지 않은 것”이라며 심판 절차 종료 의견을 낸 이유를 밝혔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8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임성근 탄핵소추 사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 '추문 칼럼' 가토 지국장 재판 관여 등

임 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2015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일본 <산케이신문> 소속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사건 재판의 재판장에게 판결문을 수정토록 하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회조정실장과의 지속적인 소통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양승태 대법원의 소위 ‘사법농단’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임 전 부장판사는 2019년 3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형사법정에 서게 됐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 임 전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법상 무죄판단과는 별개로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에 대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명시했다.  임 전 판사는 항소심에서도 무죄판단을 받았다.  다만 형법상 범죄혐의의 유무죄 여부는, 직무상의 위헌위법 행위를 심판대상으로 삼는 탄핵심판 심리와는 별개다. 

헌정사상 첫 법관탄핵 ...'용두사미' 예정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재판 개입'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회는 임 전 부장판사가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다른 법관의 재판에 관여했다는 것을 소추사유로 2021년 2월 1일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국회는 같은 달 4일 본회의를 열어 재적의원 300인 가운데 179명의 찬성으로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헌재에 탄핵심판을 청구했다.

법관 탄핵을 주도했던 여당은 현재 법관으로 재직 중인 사법농단 관여자들에 대한 탄핵 소추는 진행하지 않고, 임기만료 퇴직을 20여일 앞둔 임 전 부장판사만을 소추했다.

이 때문에 법관사회와 학계 일각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가 법관독립을 침해한 법관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닌, 법관탄핵 등을 선거공약 등으로 내걸었던 특정 의원들의 ‘공약 이행 모양새 갖추기’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