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행성에 인간이 살 수 있을까?
제2의 지구가 되기 위한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SF영화 중 하나는 외계행성으로 이주한 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국내에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인간이 거주할만한 외계행성을 탐험하거나 다수의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외계행성으로 이동하는 내용의 영화들도 다수가 있다. 외계행성, 즉 태양계 밖의 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에는 외계행성의 존재를 입증한 천체물리학자인 미셸 마요르(Michel Mayor)와 디디에 쿠엘로(Didier Queloz)가 관측천문학적 공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외계행성을 발견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외계행성이 앞을 지날 때 모항성의 밝기가 약간 줄어드는 현상을 측정하는 트랜짓(Transit) 관측법,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에 의해 모항성에서 발생하는 빛의 도플러 효과를 측정하는 시선속도 측정법 등이 대표적이다.
외계행성의 발견에는 우주망원경들의 역할도 컸는데,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가동된 케플러(Kepler) 우주망원경과 그 뒤를 이은 테스(TESS) 우주망원경은 외계행성 탐색 전용 우주망원경으로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최고의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James Webb) 우주망원경은 다목적의 임무를 지니고 있지만, 외계행성 관련 관측과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까지 확정적으로 발견된 외계행성이 6,000개 가까이 되고, 외계행성여부를 검토하면서 확실한 판정을 기다리는 것도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외계행성에 학계와 대중들의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이들 중 일부가 지구와 유사하여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을 거라 추측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제2의 지구’, 즉 지구를 닮은 외계행성으로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려면, 일단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른바 ‘골디락스 영역(Goldilocks zone)’에 위치해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영역에 있는 외계행성이라고 해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살기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프록시마b(Proxima b)라는 외계행성이 있는데, 이것의 모항성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계 밖의 항성 중에서 지구에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록시마b는 골디락스 영역에 있는 외계행성이지만 제2의 지구가 되기는 매우 어려운데, 모항성의 특성이 태양보다 훨씬 작은 적색왜성이기 때문이다.
즉 외계행성이 모항성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게 되면 기조력이 대단히 커지게 되는데, 프록시마b의 공전반지름은 지구의 1/20 정도이다. 모항성에 의한 기조력이 너무 커지면 행성은 자체 자전을 사실상 못하게 되어, 마치 항상 같은 면만을 보이면서 지구를 공전하는 달처럼 공전과 자전주기가 같아지는 동주기자전(Synchronous rotation) 행성이 된다. 즉 지구처럼 낮과 밤이 교대로 찾아오지 않고 조석고정(潮汐固定·Tidal locking)이 되어, 행성의 반쪽에는 영원한 낮이, 나머지 반쪽에는 영원한 밤이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조석고정이 된 행성은 반은 얼어붙고 나머지 반은 매우 뜨거울 것이므로, 마치 사람 눈을 닮았을 것이라 해서 일명 ‘아이볼 행성(Eyeball planet)’이라고도 부른다. 프록시마b를 비롯하여 모항성에서 가까운 상당수 외계행성이 이러한 아이볼 행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과학자들은 낮과 밤이 계속되는 각 반쪽의 경계에 위치한 지역은 쾌적한 온도일 것이므로 그곳에 생명체가 살 수도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낮과 밤의 변화가 없는 외계행성을 과연 ‘제2의 지구’라 부를 수 있을지 여러 가지로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외계행성의 모항성이 적색왜성처럼 작은 별이 아니라, 매우 거대한 항성이라면 어떻게 될까? 크기와 질량이 대단히 커다란 항성의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이라면, 골디락스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계행성이 모항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공전한다면, 일단 발견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트랜짓(Transit) 관측법이나 시선속도 측정법 등은 모항성에서 가까운 외계행성들의 관측에는 적합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공전 주기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이상인 외계행성들을 발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항성의 수명은 초기의 질량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데, 태양보다 훨씬 큰 질량을 지닌 항성은 매우 불안정해서 탄생 후 초신성 폭발 등으로 최후를 맞기까지 불과 수백 만년에서 수천 만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의 수명에 비하면 매우 길지 몰라도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지구가 탄생하고 나서 수억 년 이후에 원시 생명체가 나타나고 다시 수십억 년이 지난 후에야 고등동식물과 인류로 진화한 것을 감안한다면, 초대형으로 태어난 별을 모항성으로 지닌 외계행성에서는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할 시간 자체가 매우 부족할 것이므로 고등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즉 제2의 지구가 되려면 골디락스 영역에 있을 뿐 아니라 모항성이 태양과 유사한 주계열성으로서 외계행성의 공전 주기도 지구와 엇비슷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액체 상태의 물뿐만 아니라 산소를 포함한 대기와 딱딱한 암석층을 지녀야 할 것이며 크기와 밀도, 물질의 조성 등도 지구와 유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철(Fe) 성분은 산소만큼이나 생명체에 중요한데, 그 이유는 모항성이나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방사선 등으로부터 행성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권(Magnetosphere)을 형성하려면 철에 의한 자기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갖춘 외계행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이 이주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행성인 프록시마b가 4.24광년의 거리로서, 빛의 속도로도 4년 이상이 걸린다는 의미이다. 같은 태양계 내에 위치한 행성인 화성까지 가려면 현재의 우주선으로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빛의 속도로는 불과 몇 분의 거리이다. 물론 화성에조차 인간이 가본 적은 없고, 무인 탐사선만 자주 보냈을 뿐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지구를 매우 닮은 외계행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류가 이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최성우는 일간신문, 잡지, 온라인 매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TV 과학채널 코너에 출연하는 등 과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중소기업 연구소장,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부 정책평가위원,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민간협의회 위원 등 과학기술 정책 자문도 맡았다.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기술,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위하여’,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 ‘발명과 발견의 과학사’ ‘과학자, 인간의 과학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