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의 시대, 내전을 피하는 법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다시 확인된 반탄세력의 준동 극우세력 결집에 위기감 느낀 학생∙시민들 경각심 커져 혼돈 피하는 길은 압도적 다수 형성, 민주당 이재명 달라져야
대검찰청이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 사건 1심 재판부의 구속 취소 결정에 항고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전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법원을 대표하여 “저희(법원)는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그런데 구속기간을 계산할 때는 종전처럼 시간이 아니라 날짜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전국 검찰청에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번 구속취소 사태의 출발점은 검찰이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윤석열 기소에 시간을 끈 것이다. 검찰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전가의 보도와 같던 즉시항고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법을 입맛대로 주무르다 성긴 법망의 틈을 이용해 윤석열을 풀어준 전형적인 법비 행태에 다름 아니다. 검찰이 윤석열 지지세력의 준동에 다시 태세를 전환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와 광화문에 나온 시위대를 보면 극우세력이 예상한 것보다 많아 보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는 자발적 의지에 의한 자연스러운 민의의 표출이 아니다. 일부 교회와 목사들이 신도들을 자극해 동원한 결과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극우 유튜버들이 거짓 정보를 동원해 선동한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의 부정선거를 밝혀내 윤석열을 탄핵의 수렁에서 건져내 줄 것이라며 열심히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는 극우세력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트럼프가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말을 해도, 심지어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북한의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끽소리 하나 못한다. 그러면서 애국시민을 자처한다. 이런 세력을 믿고 의지하는 국민의힘은 이미 공당으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자신들의 기세를 믿고 윤석열 탄핵이 기각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헌재는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지검장 등 검사들의 탄핵을 기각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필요한 법정 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 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소명됐다”며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다 하더라도 탄핵소추권이 남용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의 한 이유로 민주당 등 야권의 연이은 탄핵을 꼽았는데, 이 주장을 사실상 부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탄핵을 많이 한 것이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 윤석열이 지시하고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목격한 국회와 선관위 침탈은 명백한 불법이다. 출동한 군인들의 증언을 아무리 궤변으로 분식해도 불법 행위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최상목 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14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명태균 특검법'에 대해 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다. 벌써 8번째 거부권 행사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지는 따지지 않은 채 그저 여야 합의만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정치력이 딱하다. 명태균 특검법을 60% 넘게 지지하는 민의를 외면하면서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나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 기각으로 복귀한 이창수 서울지검장이 김건희씨와 명태균씨 수사를 제대로 할까?
헌재의 윤석열 탄핵 심판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윤석열이 탄핵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주 일단의 극우 유튜버들이 대학교 정문에서 시위를 벌인 날, 대학생 제자들이 급하게 소통을 요청해왔다. 말로만 듣던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니 진정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들도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다고 했다.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20∙30대가 각성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착각이다. 14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8~29세의 정권 교체 지지율은 55%에 이른다. 정권 유지론 34%보다 20%가 높다.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것을 보면서 진짜 계몽된 것은 이런 시민들이다. 극우가 나서자 반대편도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인 후퇴는 있어도 역사의 도도한 전진을 막을 수는 없다. 비양심이 양심을 누르거나, 불의가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한다.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단, 민주세력이 승리하려면 선결 조건이 있다. 민주당이 달라져야 한다. 민생 등 문제 해결에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윤석열과 다르다는 점을 확신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다가올 대선에서 선뜻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한다. 설혹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해도 조금만 잘못하면 다시 돌아설 것이다. 그러면 정국은 혼란에 빠진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에도 민주당과 이재명의 지지율은 정체구간에 빠진 채 미동도 않고 있다. 이날 갤럽 조사 결과, 탄핵에 대한 찬반 격차는 오히려 좁혀졌다. 혹여 민주당이 대선은 어차피 51대 49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딱 그만큼만 이긴다면 그건 진짜 승리가 아니다. 방법은 압도적인 다수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탄핵 이후 내전 상황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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