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파괴범 사면과 대통령 셀프 사면을 금지하라
내란죄 사면하면 다른 범죄 처벌할 국가 권위 잃어 일반사면, 피고인도 포함… 대통령 ‘셀프 사면’ 가능 대선 때 사면 조항 개정하는 개헌안 국민투표 해야
“대한민국 헌법 제79조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한국의 사면 제도는 바야흐로 두 가지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내란범 등 헌정파괴 범죄자가 정략적으로 사면될 위험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된 형사피고인이 일반사면을 악용해 자신이 걸린 재판을 사라지게 할 위험이다. 국회는 이를 금지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차기 대선날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우두머리에게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내란의 죄는 최대급 범죄이자 헌정파괴범죄다. 이런 죄는 더 있다.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와 이적의 죄가 헌정파괴범죄에 속한다. 헌정파괴범죄에 맞먹거나 그 이상인 범죄들도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인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각종 전쟁범죄 등등이다.
밥상을 엎는 폭력이 용서받는 가정은 물을 엎지른 아이에게 주의를 줄 자격이 없다. 헌정파괴범과 학살범을 사면하는 것은 그 국가가 그보다 작은 범죄들을 처벌할 명분을 무너뜨린다. 사면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ICC 관할 범죄는 어차피 국내적 사면이 불가하다는 견해가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완벽히 정리된 것은 아니라면 금지 대상에 적시해도 될 것이다. 국제 규범 준수를 명문화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정히 죄목과 죄질, 가담 수준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면, 사면·감형·복권을 금지하는 대상을 우두머리급이나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받은 자들로 좁히면 된다.
국민의힘은 이 개헌을 막을 명분이 있는가.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윤석열의 내란이 옳다’가 아니라 ‘윤석열은 내란을 일으키지 않았다’이다. 그들 주장대로 윤석열이 진정 무죄일 경우는 사면이나 감형을 받을 일 자체가 없으니, 친윤 차원에서도 이 개헌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혹 윤석열의 처우를 떠나 일반론 차원에서 사면 금지 자체를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가 나온다면 사면이 아니라 재심을 받으면 될 일이다. 헌정파괴범조차 사면받을 수 있는 나라라면 정치인의 온갖 중대 범죄, 부패 범죄도 사면받을 수 있다.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국민의힘은 답해야 한다.
헌정파괴범과 함께 사면 금지 대상이 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본인은 대통령이다. 요즘 국민의힘 인사들이 헛짚는 것이 있다. 전 당 대표 한동훈이나 박민영 당 대변인 같은 이들은 ‘이재명이 대통령을 하면 계엄을 할 것이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이니 막을 수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윤석열의 계엄을 예측하지 못한 자들이 이재명의 계엄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도, 이들이 현행 헌법의 진짜 허점을 모르고 헛다리를 짚는 것도 가소롭다.
이재명이 쓸 수 있는 카드로 ‘셀프 사면’이 있다. 그게 가능한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피선거권이 박탈된 범죄자는 애초 대통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특별사면’에 국한된 것이다. 지난 30년간 단행되지 않은 제도지만 ‘일반사면’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사면은 첫째, 특별사면과는 달리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둘째, 특별사면은 개개인을 지명해 사면하는 것이고, 일반사면은 특정 범죄를 저지른 모든 자를 사면한다. 셋째, 특별사면은 형을 선고받은 자만 사면하지만, 일반사면은 '형을 선고받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도 ‘공소권이 상실’되도록 한다(사면법 제5조 제1항 제1호).
대통령이 된 형사피고인은 자신과 같은 죄에 걸린 모두를 사면함으로써 자신도 사면할 수 있다. 한국 사면제도의 급소다. 물론 일반사면에는 국회 동의가 있어야 하며, 윤석열처럼 국회의원 다수의 규탄을 받는 대통령은 직무수행 중이라 해도 셀프 사면에 실패하겠지만, 국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에드워드 코크) 17세기 영국에서 피어난 법 격언이다. 한국 헌법이 이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집권 이후 셀프 사면의 용의가 없는가.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헌정파괴범이 아니라 믿는가. 그렇다면 헌법 개정에 나서라. “제79조 ④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자는 제1항·제2항·제3항에 따른 사면·감형·복권의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1. 내란·외환·반란·이적의 죄나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자 2. 대통령.”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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