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여하튼 봄은 온다- 김건국 작가

2025-03-02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자신이 나고 자라며 직장을 다닌 전남 목포를 그리는 김건국 작가(64)는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미술고 실기 교사를 하였다. 그의 도시 풍경화는 이 때 시작됐다. 대형 아파트가 들어선 중첩,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시·자연의 버무러진 변화를 담아내곤 했다. 수년 전 방문한 작업실에 놓인 붓펜으로 그린 스케치들은 마치 목탄으로 그린 듯 명암과 구도가 선명했다.

목포항 여운 73×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김건국은 6년간의 미술 교사를 마치고 귀향하였다. 그가 전시 타이틀로 즐겨 사용하는 ‘백걸음의 여행’은 5년전 마련한 목포시 유달로 101번지 작업실을 오르는 계단을 상징한다. 오르는 계단은 백걸음으로 축약되지만 삶의 여정은 고단한 여행이었다는 은유이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선명한 구도는 대상(對象)을 공간과 장소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 화폭에 자주 등장하는 가로등, 나무, 전봇대는 반 고흐의 시그니처인 키 큰 상록수 사이프러스처럼 수직적 선과 비례를 나타낸다.

몽환적인 동양화 느낌은 다색 적층(多色 積層), 색과 색이 겹진 레이어의 아우라에서 온다. 화면을 들여다 보는 관람객은 종종 길을 잃고 목포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착각속에 빠져든다. 붓터치가 굳으면서 드러나는 자욱은 그 자체로 마띠에르와 오브제 역할을 한다.

 붉은 노을의 가톨릭 목포 성지 91×35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화면은 산동네인 온금동, 평지인 대성동, 이로동 등으로 무대가 바뀌면서도 하늘 배경은 노을질 때와 노을 진 후의 두 가지로만 구분된다.

미국 가수 돈 맥클린(Don McLean·1945 ~ )이 부른 ‘빈센트’(Vincent·1972)는 해넘이가 오기 전 ‘보랏빛 아지랑이로 소용돌이치는 구름’(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을 노래했다. 목포는 매일 매일 노을을 예고하는 구름이 산등성이와 해안가를 덮는다.

작가의 부모는 목포에서 배로 한 시간여 걸리는 비금도 출신이다. 부모는 뭍으로 나와 대성동 고개 마루 동네에서 쌀가게를 했다. 어린 시절 작가는 매일 북항 바다를 조망하며 살았다. 

작품 제목에 ‘분분하다’가 자주 등장한다. 꽃이 필 때 또는 피고 난 뒤 꽃이파리가 흩어지면 작가의 마음도 흩어진다. 목포는 눈이 잦지 않다. 눈 내리는 밤, 도로에 닿으면 녹아 내리는 눈도 분분하다. 꽃이파리든 눈이든 날씨가 화창하든 춥든, 또는 음산하든 마음의 분분함은 더해진다.

어느덧 인간이 유한하다는 자각은 해안 항구 도시에서 느끼는 자연의 변화와 맞닿는 순간의 감성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유달산 동구 겨울 표정 73×30cm acrylic on canvas 2021.

김건국의 겨울 풍경 묘사는 독특한 정취를 품는다. 겨울은 떠나 온 곳인지, 떠나갈 출발지인지 분명하지 않다. 바이올렛과 강렬한 붉은 색이 더해지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순환의 원리가 작동하는 지도 불분명하다. 대상과 모티브가 목포의 어디쯤이라는것만 짐작할 뿐이다.

 삼학도 겨울2 90.9×60.5cm acrylic on canvas 2021 

올초 북극에 머물러야 할 차가운 공기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반구로 밀려 내려와 남도의 봄기운 또한 더디게 온다.

여하튼 목적지든 출발지든 작가의 화폭 속 공간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말한 비일상(非日常)과 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이다. 실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다.

김건국은 근대를 간직하면서 현대화한 남도의 항구 도시에 살며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의 멈춰진 풍경을 가장 ‘목포스럽게’ 그린다. 그가 교육받고 직장 생활한 서울, 문화·경제적으로 밀접한 인근 도시 광주와는 또 다른 시간성과 장소성(placeness)이 드러난다.

하구언 일출 73×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김건국 그림에는 1942년 가수 이난영(1916~1965)이 불렀던 ‘목포는 항구다’에서 연상되는 항구, 선창가, 바닷가도 종종 등장한다. 언어와 특유의 리듬으로 덧씌워지기 전의 날것 그대로의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작가에게 목포라는 내재적 도시와 그 공간의 일상 자체가 모티브이다. 온금동 초입 작가 작업실은 내항(內港)을 바라보며 사계절과 밤낮을 조망하는, 등대의 써치라이트 혹은 인근 내해를 순항하는 잠수함이 장착한 잠망경 역할을 한다.

김건국 작가 / 제공 = 김건국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