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노 타임 투 다이'…여성 제임스 본드를 꿈꾸며

2021-10-30     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007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는 영화를 왜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지를 확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광대한 스케일의 압도적인 화면, 낯설지만 고혹적인 풍경, 창의적이면서도 과감한 액션은 특히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6대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늙어 보였다. 7대 제임스 본드는 여성이 가능할까? 

출처: 유니버설 픽쳐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나노봇을 이용한 전 세계 테러를 막기 위해 은퇴한 제임스 본드가 복귀하여 이를 해결하는 줄거리이다. 
 
제임스 본드 역할과 특징 

007 제임스 본드는 MGM(Metro Goldwyn Mayer,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제작사의 대표적인 영화 캐릭터이다.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기초해, 1963년 개봉된 <007 위기일발>로부터 시작되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25번째 007시리즈 작품이다. 제임스 본드는 영국 비밀정보부(MI6)에 속한 전설적인 첩보원으로 그 누구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주변 도움은 받지만, 일 처리는 주로 혼자 한다. 1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너리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 역할은 주로 잘 생기고 멋진 백인 남성이 해왔다. 

비록 제임스 본드를 맡은 배우들은 달랐지만(숀 코너리,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스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 그의 역할과 특징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 민첩한 몸놀림, 과감한 액션, 본드 걸과의 사랑, 애스턴 마틴 V8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이 되면서 훨씬 더 많은 액션 장면이 들어가고 첨단 장비 의존이 줄어들긴 했지만, 기본적인 특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처: 유니버설 픽쳐스

특히, <007 노 타임 투 다이> 영화 초반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이용한 추격 장면은 시선을 강탈했다. 씨네21 배동미 기자에 따르면 이 부분은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007 노 타임 투 다이' 한 시대를 장식한 대니엘 크레이그의 작별 인사). 상영시간이 무려 2시간 43분이었지만 지루한 줄 몰랐다. 더군다나 이탈리아, 자메이카, 쿠바, 노르웨이, 영국을 넘나들며 촬영한 장면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에 나가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다양한 장소의 생경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작품은 007로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영화속에서도 죽는 것으로 나와 다음 007을 기대하게 만든다.

제임스 본드 세계관 확장 필요  

초기의 007시리즈와 비교할 때 여성 캐릭터(본드 걸)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요즘은 본드 걸이라는 용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초기에 본드 걸은 성적 대상으로 그려졌지만, 이 영화에서 본드가 사랑하는 매들린(레아 세두)은 독립적이고 지적인 심리학 박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여성 007 노미(라샤나 린치)의 역할은 실망스러웠다. 007임에도 그녀의 비중은 미미하였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007 암호명을 다시 제임스 본드에게 돌려주기까지 한다. 그녀가 다음 007 제임스 본드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제임스 본드 복귀를 위한 공백을 채우려 했다고 해도 여성 007을 이 영화에 삽입한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출처: 유니버설 픽쳐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사가 먼저 여성 007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성 제임스 본드를 기대하고 싶다. 제임스 본드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면, 007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주요한 특징이 상상력이라고 할 때, 여성 제임스 본드의 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약에 기존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열렬한 팬들이 반대를 한다면 본드와 동급의 여성 주인공 투입을 제안하고 싶다. 

제임스 본드는 초능력을 보유하지 않은 인간적인 영웅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다량의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는 대신 본인이나 스턴트맨이 몸으로 하는 많은 액션을 필요로 한다. 단독 플레이 대신에 팀으로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상당한 부담과 부상의 위험도 줄이면서, 스토리텔링의 확장성도 커질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선 또 하나의 볼거리가 늘어나는 셈이다.

아쉬운 점 

아쉽게도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이야기 구조 짜임새는 그리 탄탄하지 않았다. 매들린에 비해 세기의 악당인 사핀(라미 말렉)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적다. 또한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사핀은 너무 허무하게 쓰러진다. 이전에 보여준 그 섬의 위용과 위세는 어디로 가고, 부하들은 또한 어디로 갔는지? 그가 제작한 나노봇을 가지러 오기로 한 손님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출처: 유니버설 픽쳐스 

더군다나 영화를 보면서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면, 매들린의 집을 떠난 후 벌어진 차 추격전에서 상대방은 총을 하나도 쏘지 않았고, 제임스 본드 차가 그들 차를 밀어붙이자 무력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매들린의 딸이 사핀의 손을 물었을 때도 그는 그녀를 아무런 제지 없이 놓아주었다. 이 모든 것이 본드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에 보았던 007 시리즈물을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애스턴 마틴 V8을 다시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에 본 영화 중,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필요를 다시금 일깨워준 영화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임스 본드의 세계관, 좁게는 여성관의 변화와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