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⑧] 인공지능(AI) 시대, 사윗감 1위 직업은?
인공지능(AI)시대 각광 받을 직업과 대체될 직업 전통적 직업도 혁신이 결합되면 새로운 가치 창출
최근 한 지인의 흥미로운 사례를 접했다. 그의 여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예비 사위가 가업이었던 도축장을 물려받았다는 것. 어머니는 "도축업자에게 귀한 딸을 어떻게 보내느냐"며 결혼을 말렸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의 직업에 대한 여전한 고정관념과, 급변하는 미래 산업 환경 속에서 직업 가치를 어떻게 재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대에 따라 바뀌어 온 직업 가치
직업에 대한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조선시대에 도축을 담당하던 백정은 천민 취급을 받았고, 오늘날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는 의사(의원)조차 '중인' 신분에 불과했다. 양반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의사가 지금은 전국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앞다퉈 진학하는 직업이 되었다. 시대에 따라 직업의 위상이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례다.
20세기 초 자동차가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고종 황제가 처음 자동차를 사용한 1900년대 초), 운전사는 고급 기술직이었다. 그러나 자동차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70-1980년대를 지나 오늘날엔, 운전은 대부분이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상적 기술이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직업 가치의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직업 가치의 변화는 학문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1980-1990년대 초 대학가에서는 영문학과가 문과 최고 인기 학과였고, 사학과나 철학과는 취업이 어려운 비인기 학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불과 30여 년이 지난 지금, 심리학과와 국문학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 사례를 들어보자. 1980년대에 사학과에 진학한 한 학생이 질병 사학(의학사)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결정했을 때, 부모는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공부"라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의과대학 교수가 됐다. 질병의 역사적 패턴과 사회적 대응을 연구하는 그의 전문성이 현대 의학교육과 공중보건 정책에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밥줄 끊기는 학과'로 불렸지만, 현재는 기업 윤리, ESG 경영, 인공지능 윤리 등 복잡한 현대 사회의 기업 거버넌스 이슈를 다루기 위해 경영학과에 철학 교수를 초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세대 만에도 학문과 직업의 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직업 혁신의 사례 : 본앤브레드
이런 맥락에서 서울 마장동의 '본앤브레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정육점 가업을 이어받은, 소위 '도축업자의 아들'은 어떻게 변신했을까?
이 젊은 기업가는 단순히 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에서 벗어나, 최상급 한우를 선별해 프리미엄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현대적 레스토랑으로 사업을 발전시켰다. 한우 오마카세 '맡김 차림'이라는 혁신적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단순한 메뉴 변화가 아닌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전환이었다. 전통적인 도축업과 정육업은 원재료 공급자 위치에 머물렀지만, '맡김 차림'은 그 경계를 허물었다.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14가지 부위의 한우를 21가지 코스로 선보이며 식재료의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방식을 직접 제시함으로써,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고, 고객에게는 유례없는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이중 혁신이었다.
혁신의 결과, 본앤브레드는 '2023 아시아 50베스트 레스토랑'에 47위로 선정되었고, 2022년 기준 매출액은 약 56억 원(전년 대비 46.56% 증가)을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저평가됐던 직업이 어떻게 현대적 가치와 결합하여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AI 시대의 직업 지형도 변화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 시점에서, 직업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AI가 사무직, 데이터 분석, 기초 진단, 법률 문서 검토 등 전통적으로 '좋은 직업'으로 여겨졌던 많은 영역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어머니, AI한테 소 잡으라고 해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AI가 불쌍한 소 이모티콘을 띄우며, "저는 소를 도축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AI 시대의 직업 가치를 재고해야 함을 시사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분석과 패턴 인식에 탁월하지만,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정교한 작업, 특히 장인 정신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다.
미래학자들은 AI 시대에 다음과 같은 직업군이 오히려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1. 인간 감정과 관련된 직업 / 심리상담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2.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 / 예술가, 디자이너, 창작자 등
3. 고도의 손기술이 필요한 직업 / 장인, 수공예 전문가, 정교한 기술 분야
4.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한 직업 / 시스템 엔지니어, 융합연구자 등
5. 인간 상호작용이 중요한 서비스업 / 고급 요식업, 개인화된 서비스업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Future of Jobs Report)'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AI와 자동화가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정적, 창의적, 육체적 기술이 더욱 가치 있게 평가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도축업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다양한 부위의 특성을 이해하고, 최적의 방법으로 가공하는 전문성은 인공지능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직업 가치의 패러다임 전환
직업의 가치를 단순히 과거의 사회적 인식이나 현재의 소득 수준만으로 판단한 일은 아니다. 미래 산업 환경에서의 지속가능성, 인공지능으로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가치, 그리고 혁신을 통한 발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본앤브레드의 사례는 소위 '전통적인' 직업이 혁신과 결합할 때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축업이라는 기본을 넘어, 고급 미식 문화를 창조하고 한국의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사업가로 진화한 것이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직업의 가치는 끊임없이 재평가된다. 조선시대 중인이었던 의사가 현대 사회의 최고 직업이 됐듯, 오늘날 저평가된 직업이 AI 시대의 필수 직업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직업에 대한 평가는 과거의 고정관념이 아닌, 미래 사회에서의 지속가능성과 혁신 가능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가장 전통적인 직업이 현대 기술과 만나 가장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도축업자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진정한 문제는 예비 사위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직업에 대한 시대착오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는 직업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딸을 도축업자한테 시집보냈다면서요? AI 시대에 정말 현명한 선택이셨네요!" 어쩌면 10년 후, 다른 어머니들이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김희연은 AI리터리시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의 일상적 활용 등에 천착, AI리터러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똑똑한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3월 출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