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 대학 서열 기준 '머니 파워'가 좌지우지

가난한 학교는 총액 1억불 쌓기도 어려워 '빈익빈 부익부'   1년새 113억불 번 하버드, 기금액 532억달러로 전체 1위  사립 스탠포드, 289억불로 라이벌 주립 UC버클리의 9배 

2021-10-30     LA=봉화식 객원특파원

최악의 코로나 팬데믹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미국내 명문 대학의 기준이 점차 '머니 파워'로 변질되고 있다. 가을학기부터 대부분의 캠퍼스가 개방되며 접종율도 70%에 도달했다. 이에따라 대학 관계자들은 본격적으로 경제계 인사 접촉을 본격화하며 기금 모으기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형국이다. 

21세기 미국 상아탑의 기준은 고전적 아카데미즘에서 탈피, 펀드와 적립금 총량, 기부금 액수로 대표되는 '돈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하반기-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집계한 2021 회계년도 각 대학 투자 수익률은 역대급 호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뉴욕 타임스-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동부 8대 사립 명문 아이비리그는 평균 42%의 수익으로 사상 최고치 대박을 쳤다. 이는 같은 기간 뉴욕 증시의 상승률보다 높은 수치다. 코비드-19 접종 확대와 정부지원책에 힘입어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주식투자와 자산 값어치가 나란히 폭등했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위험한 벤처 캐피탈-헤지펀드-사모펀드에 대학 당국이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이들 매체는 분석했다.

하버드대학교 전경. (사진=하버드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신성한 대학기금이 투기 전문꾼들의 손에 놀아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이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한 댓가를 뽑았다. 번 돈으로 우수교수를 채용하고 가난한 학생에 장학금을 지급하며 각종 시설 개보수, 세미나-연구 지원금 확대로 학교가 발전하는 선순환을 이어가는 것이다. 최고 명문 하버드대의 펀드는 역대 최고인 532억달러로 1년새 무려 113억달러가 늘었다. 기금 투자 수익률 역시 33.6%로 1년전 7.3%에 비해 5배 가까이 뛰었다. 합법적인 기부금 입학제도의 최저액은 1000만달러로 알려졌다. 

미국 50개주 3000여 대학 가운데 하버드가 지난 1년간 벌어들인 기금 액수보다 많은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10여곳에 불과하다. 바꿔 말해 전체 99.7%의 학내 기금 규모가 하버드의 1년 수입보다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기금 총액 1억달러를 넘어서는 학교를 보는 일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며 소규모 사학은 만성 적자로 존폐 걱정까지 하게 됐다.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하버드의 수익률은 라이벌 예일대의 40.2%는 물론, 아이비리그 전체 평균 42%보다 낮았다. 헤지 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인덱스 펀드에 집중 투자한 탓이다. 예일대는 1년사이 111억달러를 벌어 전체 2위인 423억달러의 기금을 보유하게 됐다. 아이비리그 가운데 수익률 1위는 로드 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브라운 대학으로 51.5%에 달했다. 그러나 덩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69억달러에 머물렀다. 코넬대 역시 2020년 1.9%에서 41.9%로 20배 이상 몸집을 불리며 전체 기금 100억달러의 벽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펜실베니아 대학도 200억달러 고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아이비리그는 아니지만 이공계 전문인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1년사이 90억달러 늘어난 274억달러를 마크했다. 서부지역의 경우 사립 스탠포드대가 289억달러로 이웃 라이벌인 주립 UC버클리(30억달러)를 9배 차이로 압도했다. 이밖에 LA의 사립 남가주대(USC)는 60억달러, 주립 UCLA는 40억달러의 적립금을 확보했다. 동부지역보다 떨어지지만 이 정도 액수라도 연간 수억불 규모의 이자가 보장된다. 원금을 손대지 않고도 다양한 프로젝트 추진이 가능한 규모다. 

메이저 대학마다 '물 들어올때 노 저으라'는 속담을 충실히 이행한 한해였다. 코로나 걱정도 잠시, 1년만에 즐거운 비명을 올리게 됐다. 그렇지만 '비 올 날을 대비하라'는 말도 있다. 하버드는 코로나 사태가 덮치기 직전까지 오히려 대규모 투자 손실을 본 뼈아픈 경험이 있다. 장기 경기침체로 기부금이 격감하며 재정난이 악화, 법학 대학원 등록금 면제 프로그램이 일시 중단되는 수모를 자초하기도 했다. 졸업후 5년동안 비영리 기관 또는 정부 부처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면 수업료를 탕감해주는 이 제도는 최근 재개됐다. 또 지구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경우 하버드 펀드 규모는 전년보다 27% 감소한 260억달러로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당시 하버드 역사상 처음으로 비인기 학과 노교수들을 대상으로 명예 퇴직을 실시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현재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하버드 로스쿨은 3년 과정을 이수하는데 평균 30만달러 가량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상당수 졸업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고도 10만달러 가량의 빚을 떠안은채 사회에 진출한다. 이때문에 급여가 낮은 공공기관 봉사직 취업을 기피하고 초봉이 높은 맨해튼 월 스트리트의 법률회사에만 인재가 집중되는 부작용이 이어진다. 이같은 현상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상아탑의 이상주의와 현실의 벽이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곳간 채우기 경쟁은 점점 죽고 살기식의 '오징어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Money Talks'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가난한 학교는 무능한 곳'으로 여겨지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전개될지 코로나가 완전히 극복된 이후가 궁금해진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