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뜨거운 감자’ 개헌, 서두를 문제 아니다
[조신의 정치 내러티브] 내란 사태는 수준 이하인 윤석열의 '일탈'이 원인 국가 운영의 책임성∙효율성 담보할 권력구조 고민해야 ‘87년 체제’ 바꿀 개헌은 국민참여형 추진이 바람직
정치권의 단골 메뉴인 ‘개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여야 대권 주자들이 저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선 내란 극복, 후 개헌’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지금 개헌 얘기를 하게 되면 이게 블랙홀이 된다”며 개헌 주창자들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한다. 여하튼 윤석열에 놀란 여론은 변화를 원하고 있고, 개헌은 조기 대선에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프레임의 한계
개헌 논의의 중심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자리잡고 있다. ‘87년 체제’ 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3차례 탄핵소추가 있었고, 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제왕적’이기 때문에 발생한 만큼 권력구조를 바꿔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개헌 주창자들의 권력구조 개편 방향은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4년 중임 대통령제’로 수렴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권력구조 개편의 취지에서 본다면 이는 모순적일 수 있다. 4년 중임제는 장기적인 국가경영 구상을 가능하게 하고 국정운영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더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의 경험을 보더라도, 4년 중임제는 장기적 국정운영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현직 대통령의 재선 부담 탓에 자연스럽게 자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 개헌 논의를 촉발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를 오히려 강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만약 87년 체제의 대통령들이 정말 제왕적이었다면, 문재인·노무현 정부에서 검찰개혁이 그렇게 어려웠겠는가. 국회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질 때마다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서 무력했던 현실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지금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는 것은 권력 분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의도의 통념’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은 87년 민주화 이후 지속해서 변화해왔다. 특히 3김 정치가 막을 내린 이후, 대통령과 여당·국회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실질적 권력 배분도 점진적으로 대통령에게서 국회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현재의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자신도 별로 힘이 없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권한을 남용하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일탈한 대통령’일 뿐이며, 이것이 곧바로 현행 제도의 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사실 윤석열 같은 시대착오적 일탈이 헌법 때문이라고 믿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근본적인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윤석열 개인의 자질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석열 트라우마’를 넘어서 국가의 미래를 향해야
그렇다고 38년간 글자 하나 바뀌지 않은 지금의 헌정 체제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장기집권 독재의 견제 장치로 등장했던 87년 체제가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낡았다면,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헌의 방향과 목적이다. 개헌 논의를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라는 좁은 틀에서만 접근한다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앞으로 어떤 권력구조를 설계하든,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조항 등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의 일탈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통령 권한 축소와 분산에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국가 운영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려 대통령제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윤석열 트라우마’를 넘어 어떤 권력구조가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유능한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며 행정부의 인사권자로 머무르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주적인 유능한 지도자다. 따라서 개헌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프레임을 넘어,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고려하는 장기적 비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 참여형 개헌안 마련이 필요하다
개헌은 막 서둘러 진행될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 합의도 중요하지만, 국민 의사가 반영되는 논의 구조도 마련돼야 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개헌 논의가 활발하던 2017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국민이 “개헌안은 정부나 국회가 아니라 국민참여 기구를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금도 국민의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4년 중임제든 5년 단임제든 각각 장단점이 있고, 제도 자체가 국정의 성공, 성공한 대통령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완벽한 제도는 없다. 시민적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대선 기간을 통해 개헌 논의 방식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고, 적절한 숙의 과정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개헌이 단순히 국민투표 통과 의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참여에 기반한 새로운 헌정 질서를 마련하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운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조신은 한국일보에서 17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이후 참여정부 국정홍보처 정책홍보관리관(대변인), 서울시교육청 공보관,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상임위원 겸 기획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 성남시 중원구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총선에 출마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임감사,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원장 등 공공기관에서도 일했다. 현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상임고문으로 있다. 다양한 정책 경험을 토대로 국가 미래 비전을 고민하는 진보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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