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분쟁, 의미와 결론은?
노벨상 수상 결과와 다르게 진행되는 특허소송 소송 결과가 관련 생명공학기업 운명 가를 수도
생명공학기술은 21세기 들어서도 여러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역시 매우 주목해야 할 기술이다. 크리스퍼(CRISPR)란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영문 머리글자로서 ‘규칙적인 간격을 갖는 짧은 회문구조 반복단위의 배열’이라는 뜻이다.
회문구조란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똑같은 문자배열구조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염기서열을 지니는 RNA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내고, CAS9 등 특정의 제한효소가 DNA 염기서열을 정교하게 자르는 유전자편집기술이다. 제3세대 유전자가위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이전의 유전자가위에 비해 오류 발생이 매우 적으며,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즉 동식물의 형질 개량, 유전자 치료, 해충 퇴치, 멸종 동물의 복원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는 획기적이고 막강한 가능성을 지닌다.
크리스퍼 구조는 원래 박테리오파지와 같은 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을 유전자편집기술로 발전시키게 된 것은 2012년부터이며, 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기술을 활용한 세포치료제 등이 선보이면서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획기적인 신기술 또는 신제품의 개발에는 대부분 격렬한 특허 분쟁이 뒤따르곤 하였는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를 둘러싼 치열한 다툼과 법정 소송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및 공동 연구자였던 프랑스 출신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였다. UC버클리는 2012년 5월에 최초로 미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으로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의 장펑 박사 역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기술 관련 특허를 출원하였다.
그러나 특허 출원이 늦었던 브로드연구소가 신속심사제도를 통하여 2014년 4월에 첫 특허 등록을 받았고, UC버클리의 특허들은 몇 년 후인 2018년 6월부터 등록을 취득하게 되었다. UC버클리 측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처음 특허를 낸 것은 다우드나 팀이고 브로드연구소의 장펑 박사 등은 뒤늦게 편승한 것뿐이므로,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는 무효라 주장하면서 특허심판과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국 특허청 및 우리나라의 특허법원에 해당하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은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UC버클리보다 후출원이기는 하지만, 진핵세포 유도 등에 대해 신규성이 있고 기술적으로 보다 진보한 면이 있으므로 특허를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1차 특허 분쟁은 브로드연구소의 승리로 종료되었으나, 이후 특허 간의 이용-저촉 관계 등을 둘러싸고 양 진영 간의 2차 분쟁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 또한 현재로서는 브로드연구소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2022년 2월 말 미국 특허청의 특허심판원(PTAB)은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UC버클리보다 브로드연구소가 먼저 개발했다고 판정했으며 이는 저명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도 보도되었다.
UC버클리 측은 2020년도 노벨화학상을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받고 장펑은 수상자에서 제외된 것을 근거로 하여 우선권을 주장하였으나, 과학적 업적에 주어지는 노벨상과 유용성을 중시하는 특허는 별개의 문제이다.
연구성과를 먼저 내고 특허 출원도 앞섰던 UC버클리 측이 특허 분쟁에서 현재까지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최초에 특허를 낼 때 특허명세서의 청구항에 ‘진핵세포’라고 명시하지 않은 점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특허에서 구체적인 권리 범위는 일단 청구항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펑의 브로드연구소는 진핵세포에서 유전자편집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을 특허로 청구하였고, 특허청에 수수료를 더 내고 조속한 심사를 받는 신속심사제도(Track one)를 활용하여 먼저 특허 등록을 받은 것 역시 처음부터 특허 전략을 잘 전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박테리아라는 원핵세포에서 처음 유래했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고등생물은 진핵생물이다. 따라서 양 진영의 특허가 모두 유효하다고 해도 이용-저촉 관계에서 우선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원핵세포로 권리가 한정되는 UC버클리의 특허는 사실상 빈껍데기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UC버클리와 관련된 생명공학 기업의 주가가 2022년 심결 직후 폭락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UC버클리 측이 항소하여 현재 CAFC에 계류 중이므로 아직 분쟁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며, 양 진영 간의 화해와 합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 또한 미지수이다. 향후 최종 결론에 따라 연구당사자나 소속기관뿐 아니라, 관련된 기업들의 희비와 운명이 엇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성우는 일간신문, 잡지, 온라인 매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고 TV 과학채널 코너에 출연하는 등 과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전자 연구소 선임연구원, 중소기업 연구소장,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과학기술부 정책평가위원,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민간협의회 위원 등 과학기술 정책 자문도 맡았다.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기술,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위하여’, ‘진실과 거짓의 과학사’ ‘발명과 발견의 과학사’ ‘과학자, 인간의 과학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