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터러시⑤] 충격 부른 딥시크의 혁신 영감, 어디서 나왔을까?
딥시크, 정보 중요도 따른 선택적 접근 방식 기술 혁신 돌파구, 인간의 삶과 경험 역사에 내재
최근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 딥시크(DeepSeek)가 개발한 대규모 언어 모델 '딥시크-R1'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AI 모델들이 입력되는 모든 정보를 동일한 비중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딥시크-R1은 MoE(Mixture of Experts‧전문가 망) 방식을 활용해 6,710억 개의 파라미터 중 370억 개만 활성화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선택적 상태 추적(Selective State Tracking)'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처리 방식을 달리한 것이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높은 성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딥시크의 접근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AI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정보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정보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개념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안을 국민투표로 결정하지 않고 대표자를 통해 처리하며, 기업에서도 모든 의사결정에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대신 책임자급 회의를 통해 결정을 내린다. 물론 인간 사회의 대리 결정 방식과 AI의 정보 선별 처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이지만, 제한된 자원 속에서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인터넷 검색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검색의 강자였던 야후는 정보를 직접 분류하는 방식(디렉토리 검색)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이 웹사이트들을 일일이 검토하여 '스포츠', '뉴스', '교육'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했고, 이용자들은 이 분류 체계를 따라 원하는 정보를 찾아갔다. 예를 들어 '스포츠 > 구기종목 > 축구'와 같이 단계별로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도서관에서 전문 사서들이 책을 분류하고, 이용자들이 그 체계에 따라 책을 찾는 것과 유사했다.
반면 후발주자였던 구글은 정보 자체가 가진 연결성에 주목했다.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을 통해 웹페이지들 사이의 링크 관계를 분석하고, 많이 참조되는 웹사이트를 더 중요한 정보로 평가했다. 또한 사용자들의 클릭 패턴, 체류 시간 등 실제 이용 행태를 분석해 검색 결과의 순위를 결정했다. 마치 책의 참고문헌으로 많이 인용될 수록 인용되는 그 책의 가치가 높다고 보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야후와 구글의 접근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차이를 넘어 정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야후가 전문가의 판단으로 정보를 체계화하려 했다면, 구글은 사용자들의 자연스러운 행동 패턴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검색 시장에서 승부는 구글의 승리였다.
기술 혁신의 역사는 자원의 한계를 창의적으로 극복해 온 과정이었다. 대항해 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왕실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범선을 띄웠고, 뒤이어 영국도 왕실의 후원으로 바다로 나갔다. 반면 가난한 작은 어업국가 네덜란드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민간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장거리 무역을 발전시켜 오늘날 주식회사라는 혁신적 제도의 모태가 됐다. 결핍이 오히려 혁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사례들은 AI 개발에서도 유사한 교훈을 준다. 무작정 자원을 확장하기보다, 기존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혁신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오픈AI의 챗GPT는 모든 입력을 종합적으로 처리해 맥락 유지와 정교한 응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최적화해 있다. 이는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엄청난 컴퓨팅 자원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딥시크의 MoE 모델은 특정한 정보만 활성화해 연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과거 야후가 정보를 카테고리화했던 것처럼 선택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화하면서 미리 정해놓은 선별 기준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선택과 집중의 접근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네덜란드가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식회사라는 혁신적 제도를 만들어낸 것처럼, 자원의 제약이 오히려 창의적 해결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딥시크-R1이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보 처리에서는 야후처럼 선택적 접근을 택했지만, 기술 공유 방식에서는 구글이 보여준 개방성을 따른 것이다. 이는 두 접근 방식의 장점을 결합한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AI 기술의 발전에서 딥시크의 사례는 기술 혁신이 인간 사회의 지혜와 역사에 대한 통찰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앞으로 AI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 윤리적 판단과 책임 소재, 의사결정의 정당성 등의 문제 역시 기술 자체가 아닌, 인간의 경험과 역사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 혁신의 진정한 돌파구와 답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역사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희연은 AI리터리시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의 일상적 활용 등에 천착, AI리터러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똑똑한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3월 출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