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판설' 한동훈, 이대로면 극우 김문수에 필패
한동훈이 김문수를 이기려면
2024년의 한동훈이 1998년의 하석주가 된 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2025년 2월 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전국 1,002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 범여권 후보 적합도에서 김 장관의 지지율이 25.1%로 일방적 우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지지도는 7.4%로 조사되었다. 이는 유승민 전 의원(11.1%), 오세훈 서울시장(10.3%), 홍준표 대구시장(7.5%) 등에게 모두 밀리는 저조한 지지율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지금은 탄핵의 시간이다. 조기 대선의 시간은 아직 공식적으로 막이 오르지 않았다. 단지 참고사항에 불과할 수 있을 전광판 점수의 등락에 구태어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코치진은 물론이고 관중들도 한 가지 사항에서만은 잠시도 눈을 떼어선 안 된다. 시합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며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의 몸 움직임이다. 안목 있는 지도자와 눈썰미 매서운 스포츠팬이면 어느 선수가 요즘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 유행하는 표현으로 “폼이 떨어졌는지”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폼이 올라와 있으면 전광판에 찍히는 점수도 머잖아 올라가는 법이다.
정치와 선거는 본질상 단체전이다. 특정한 대선주자의 경기력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를 판단하려면 후보자 본인에 더하여 주변 인물의 발언과 행동거지까지 폭넓게 점검·확인해야 한다.
한동훈의 별의 순간은 언제 왔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데 한동훈 전 대표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관여·동참한 때였다. 만약 국민의힘에서 친한동훈계 국회의원 18명이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계엄 해제는 야당만이 참여한 반쪽짜리 해제에 그쳤을 테다. 한동훈이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령의 무효화에 힘을 보탬으로써 윤석열 탄핵은 범국민적 차원의 염원과 요구로 승화될 수가 있었다.
문제는 한동훈의 별의 순간이 너무 빨리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 있다. 나는 한동훈이 도대체 무슨 생각과 꿍꿍이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이른바 ‘공동 국정운영’ 방안이 담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는지 여전히 궁금하고 의아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이 음산한 비극이었다면, 한동훈이 한덕수와 나란히 담화문을 읽는 광경은 발칙한 희극이었다.
1998년에 개최된 프랑스 월드컵 한국과 멕시코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하석주 선수는 선제골을 넣은 다음 과도하게 흥분한 나머지 상대편 선수에게 쓸데없는 백태클을 했다가 레드카드를 받고 전반전에 일찌감치 퇴장당하고 말았다. 하석주의 불의의 퇴장을 계기로 경기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며 한국은 숫자상의 열세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중미의 강호 멕시코에 ‘1 대 3’의 점수 차이로 허망하게 역전패했다.
한동훈은 집권 여당의 당수였을 따름이지, 법률적으로는 일개 민간인 신분이었다. 사법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엘리트 검사의 길을 걸어온 한동훈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실수를 저질렀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욕심에 총기가 흐려졌거나, 아니면 흥분해서 사리분별이 안 됐거나.
한덕수와의 공동 통치를 도모한 그때의 한동훈의 심리상태는 대 멕시코전에서 선제득점을 기록한 직후 하석주 선수의 그것과 대동소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나친 흥분상태에서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이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올지 앞뒤를 재지 못했던 셈이다.
한동훈의 별의 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팀 한동훈의 경기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한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일 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한동훈이 카카오 택시를 이용한 일을 젊고 신선한 정치의 징표인 것처럼 자랑스레 떠벌렸다. 하석주 선수는 그나마 상대방 선수에게 백태클을 했다. 김근식은 자기 팀 주장을 향해 느닷없이 백태클을 감행한 형국이다.
카카오 택시에 탑승해본 게 젊고 신선한 정치인임을 증명하는 행위라면, 택시기사 자격으로 직접 택시를 운전해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젊고 신선하다 못해 아예 산부인과 인큐베이터 속에서 숙식해야 할 정도로 파릇파릇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심지어 김문수마저 왕년에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대를 잡은 적이 있다.
조기 대선의 게임 체인저, ‘영남 후보 필패론’
한동훈 1차 멸망 사태에 관한 복기가 길었다. 한동훈은 이대로는 하향세를 멈추기 어렵다. 판을 바닥부터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특단의 대책과 모종의 결단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필자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본연의 사명으로 지향해야만 하는 언론인이 아니다. 현직 정치 컨설턴트이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어느 정치인에게 어떤 비단 주머니를 준비해줘야 하는지를 하루에도 몇 차례는 고민하기 마련이다. 때 이른 내리막길에 들어선 한동훈에게는 세 개의 비단 주머니를 마련하라고 일러두고 싶다.
첫 번째는 ‘검사 한계론’에 대한 정면돌파를 시도하라는 조언이다. 이러한 정면돌파는 다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아도 김문수를 상대로만은 주효할 공산이 높다.
우리민족 입장에서 평가하면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가운데 후자가 훨씬 더 사악한 인간이다. 이토는 모국인 제국주의 일본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다. 이완용은 자신의 고국을 외세에 팔아넘겼다. 죄질을 따지면 이완용이 압도적으로 악질적인 까닭이다.
한동훈은 특수부 검사였다. 김문수는 스스로가 전직 특수부 검사도 아니면서 정치검사의 대명사로 작금에 지탄받는 내란수괴 윤석열을 두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치검사는 나쁘다. 하지만 정치검사를 두둔하는 인간은 더 나쁠 수가 있다. 김문수의 이 맹점과 허점을 한동훈은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를 중단하라는 주문이다. 김문수는 권력욕과 명예욕이 강하다. 한데 기이하리만큼 물욕은 약한 성격이다. 2024년 8월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자와 그 배우자의 재산 총액은 8억 7,200만 원으로 신고되었다. 김 후보자의 부인이 소유한 아파트는 강남 아파트도 아니었다.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4억 8,000만 원짜리 중저가 주택이었다. 더군다나 김문수가 ‘위장 서민’이라는 폭로 또한 여태껏 없다.
한 전 대표와 그의 아내인 진은정 변호사는 둘 다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저 말 많고 탈 많은 김앤장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해온 진 변호사는 연봉만 20억 원이라고 한다. 이는 김문수 장관의 부인이 가진 아파트 네 채를 사고도 남는 금액이다. 이념은 개떡 같되 재산은 찰떡같은 경쟁자와 겨루면서 한동훈이 어설픈 서민 흉내를 냈다가는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일 게다.
세 번째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발상의 전환에 나서라는 당부이다. 한국 정치의 새롭고 충격적 뉴노멀일 ‘영남후보 필패론’을 제기하라는 뜻이다.
민주당 계열 정당은 2002년 대선 이래 영남 태생의 후보를 줄곧 내세워왔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유일하게 예외인 경우였다.
지지층을 넓히면 흥하고, 지지층을 좁히면 망하는 건 1987년 이후로 역대 모든 대통령 선거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불변의 게임의 법칙이다.
김문수 전 장관은 경북 영천이 고향이다. 사상적으로는 극보수이다. 게다가 1951년생이다. 한두 살씩 인심 좋게 줄여주는 만 나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도 올해 무려 73세이다.
김문수와 대조적으로 한동훈은 중도 성향의 노선을 추구해왔다. 김재규의 변호인으로도 유명한 고 강신옥 변호사가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변론을 맡았던 인혁당, 즉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한국 현대사 최악의 사법살인 사건이었다. 한동훈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유족들을 수십 년간 괴롭혀온 부당한 이자 문제를 해결해줬다. 진보 정권이 하지 못한 해묵은 숙제를 보수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풀었다. 한동훈이 김문수보다 무려 22세나 젊다는 사실은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영남의 출신 보수 후보는 확장성에 치명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남 후보, 특히 영남 보수 후보 대선 필패론이 기정사실화돼야 어울리는 상황이다.
박근혜는 영남 보수 후보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제약과 장애를 원로 김종인과 청년 이준석을 비대위에 골고루 중용해 극복했다. 2012년의 박근혜에게 김종인과 이준석 콤비가 쌍두마차로 포진해 있었다면, 2025년의 김문수에게는 전광훈과 전한길 두 명의 극우 전사가 원투펀치로 있을 뿐이다. 김문수 팀으로는 어디를 봐도 중도층 유권자로의 지지기반 확장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한동훈은 영남 보수 후보 필패론으로 근본적 구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 한동훈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성장했다. 대선 승패의 열쇠를 쥔 수도권 지역과 중부권에서의 확장력과 경쟁력은 김문수와 견줘 한동훈이 월등할 가능성이 높다.
비단 주머니를 만드는 일은 기획자와 전략가의 역할이다. 비단 주머니를 열어 그 안의 비책을 실제로 현장에서 활용하는 일은 리더와 출마자의 몫이다. 과연 한동훈은 그를 사방에서 옥죄는 검사 한계론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역작용만 초래할 게 뻔한 서민 코스프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 영남 보수 후보 필패론의 깃발을 명징하게 들어 올려 김문수의 뜬금없는 전성기를 삼일천하로 끝장낼 수 있을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결연한 심정과 각오 아래 예상되는 위험과 시련을 흔쾌히 감수하며 루비콘강을 건너는 운명적 선택은 한동훈 본인의 배포와 담력에 오롯이 달려 있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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