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변호 강신옥 변호사, 회고록 출간

인권변호사 故 강신옥의 육성회고록 '영원히 정의의 편에' 사위 홍윤오씨가 생전 인터뷰와 자료 등을 토대로 저술 "죄지은 사람 벌주고, 죄 없는 사람 살리는 게 정의" '정의의 편이냐, 불의한 권력의 편이냐' 이 시대의 질문들

2025-01-30     이진동 기자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인이자 대표적 1세대 인권변호사인 고(故) 강신옥 변호사의 회고록이 최근 출간됐다. 회고록 ‘영원히 정의의 편에’(새빛 펴냄)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고인의 사위인 홍윤오씨가 생전에 강 변호사로부터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과 2015년~2016년에 걸쳐 진행한 강 변호사와의 인터뷰 및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쓴 책이다.

고(故) 강신옥 변호사의 

이 회고록에 따르면 강 변호사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적 소의를 희생한 의인”이라고 재평가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원래 김재규와는 일면식도 없다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권유로 10.26사건 재판 변호를 맡으면서 김재규를 알게 됐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그를 독대했다.  

강 변호사는 박정희 살해 동기와 관련해 “김재규가 ‘각하는 갈수록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해졌다’고 진단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접견 때 김재규가 대만의 오봉이라는 식인종 스승이 변장한 채 스스로 제자들에게 먹혀 죽음으로써 식인 습성을 없앤 사례를 들며 “내 행위도 그와 비슷해 내 생명을 바쳐서 자유를 회복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전두환이 잔재주를 부리면 국민이 희생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책에서 “역사적 진실과 정의를 위해서라도 김재규의 목숨만은 일단 살려놨어야 한다”며 “사실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이 대권 고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건 다 김재규 덕인 만큼 나는 그 두 사람이 사나이답게 김재규에게 고맙다고 하고 구명 운동에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는 김재규의 명예회복을 주장했다. “민간인 김재규가 일반 법원이 아닌 계엄 군법회의에서 재판받은 점, 정당한 방어권 기회를 박탈당한 점, 신군부에 의한 쪽지 재판 등 그동안 재심 사유가 많이 보강됐다”면서 “하루빨리 재심을 통해 ‘내란목적 살인’ 죄목 중 ‘내란목적’만큼은 빼는 것이 역사적·사법적 책무이자 김재규의 명예를 최소한이나마 회복시켜주는 것”이라고 썼다. 

강 변호사는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 당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 등 관련자들에 대한 일방적 군법회의 재판에서 "애국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등으로 걸어 빨갱이로 몰아 사형을 구형하고 있으니 이는 사법 살인 행위다”면서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호하고 있지만 차라리 피고인들과 같이 피고인석에 앉고 싶은 심정”이라고 최후 변론을 했다. 이 변론으로 강 변호사는 법정모욕죄 등 혐의로 체포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법관을 모독하는 언동이고 긴급조치를 위반하는 발언’이라는 이유였다. 지금이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악법의 집행’이었지만 서슬퍼런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엔 그랬다.

강 변호사는 이듬해 대통령 특별조치로 석방된 뒤 1987년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평소 "정의란 죄 없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지 않고, 죄지은 사람에게는 성역 없이 벌을 주는 것"이라면서 "정의와 불의를 가리는 일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좌파와 우파의 차이도 없다"고 강조해왔다. 

강 변호사는 평소 유신체제에 관해 언급할 때면 “권위주의 정권 시기라 해도 정의와 양심을 위해 기꺼이 직이라도 걸 수 있는 판사와 검사 5명만 있었다면 수백~수천 명의 억울한 시민들과 무고한 학생들 피해와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이 책에서는 이외에도 정치인 강신옥의 여정, YS와 DJ와의 인연, 정주영과 정몽준, 박근혜와의 일화, 신영복 사건 변호 등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돼 있다.

1936년 경북 영주시에서 태어난 강 전 의원은 서울대에 재학 중 고등고시 행정과(10회)·사법과(11회)에 합격해 1962년부터 서울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1년 뒤 법복을 벗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1967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맡았다.

이후 13·14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2002년 대선 당시는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 창당기획단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정계에서 은퇴했다. 85세 때인 2021년 7월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