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의 멋있는 변신 경의선 숲길을 찾아

2021-10-22     황현탁 여행작가
경의선 숲길 (사진=황현탁)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적 기운이 발호하던 19세기 일본은 그런 시대적 흐름에 동승한다. 왕이 있었지만 이름뿐, 실권은 막부정권이 행사하였으며,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의 통상조약 역시 왕의 칙허 없이 막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하였다.

이후 반 막부세력이 연합하여 들고 일어나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돌려주었으며(大政奉還),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관주도의 근대국가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에서는 강압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1904년의 러일전쟁의 도발은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한국 침탈이다.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이 된 을사보호조약은 1905년, 한국을 일본에 합병하는 한일병합조약은 1909년에 체결되었으나, 그 전부터 일본은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여 일본공사관에 경비병을 주둔시키고, 1894년에는 김옥균 등 개화파를 앞세워 정변을 일으켜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새 정부는 3일 천하로 끝나고 주모자들은 일본으로 망명한다. 조선에 주둔하던 청국과 일본의 군대가 동시 철군토록 한다는 청ㆍ일본 간의 톈진조약으로 조선에서 청나라의 우월적 지위는 사라지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진압을 위한 파병이 빌미가 되어 청일 양국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 일본이 승리하여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확고하게 된다.

1896년 미국이 경인선 부설권을 얻자 프랑스도 경의선 부설권을 얻게 되는데 재력부족으로 3년간 허송세월한다. 조선 조정은 민간인에게 부설권을 주나 그 역시 추진하지 못하자 조정이 직접 하기로 하고 측량에 착수한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군용철도부설을 시작하며, 강요에 못이긴 조정은 50년간 임대조약을 맺고 부설권을 부여한다. 일본은 철도 부지를 강점하고 공병대를 투입하여 난공사를 피한 우회노선을 택해 2년이 조금 넘는 733일 만인 1906년 4월 3일에 경성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을 일단 완공한다. 이후 곡선개량, 터널신설, 교량증개축 등 개량공사를 거쳐 1911년 완공한다. 

경의선 숲길은 용산에서 가좌까지 연결되는 지상철도 6.3km구간을 지하화 함에 따라 지상에 만든 공원이다. 두 역 사이에는 효창공원앞역, 공덕역, 서강대역, 홍대입구역이 있고, 역 주변에는 출입구, 주차장, 백화점 등이 들어섰으며, 주요도로를 가로지르는 철도건널목이 있던 곳은 도로유지가 필요해 실제 공원거리는 5km도 안될 것이다.  

숲길도 구간별로 추진시기가 다른데, 공덕역-효창공원앞역 구간 숲길은 2015년 6월 27일 완공되었으나, 숲길 전체가 완공된 것은 2016년 5월 21일이다. 폭도 지상 철도부지의 넓이에 따라 구역마다 다르며 10여m로 좁은 곳이 있는가 하면, 60여m에 이른 곳도 있다. 폐 철로를 이용한 공원인 점을 살리기 위해 지상공원에 객차와 철로를 남겨두거나 건널목 표지를 살려두고,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기차오는 소리를 듣는 어린아이 조각을 설치한 곳, 철로를 걸을 수 있도록 레일과 침목, 쇄석을 그대로 둔 곳도 있다.

레일에 귀를 대고 기차오는 소리를 듣는 어린 아이 조각. (사진=황현탁)

‘숲길’인 만큼 나무를 심고 5~6년이 흘러 한여름 땡볕에도 그늘을 제공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잔디밭이나 별도로 조성한 꽃밭, 생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돌이나 나무로 ‘육생비오톱’(terrestrial biotop)을 설치하기도 하고, 바위고개의 경우에는 바윗돌이 드러나도록 그대로 두었다.

새로운 창고인 만리창(萬里倉)이 있었다는 의미인 새창고개/신창마을과 홍제천 옆 사라진 실개천인 세교천(細橋川), 일제강점기 아현동과 공덕동 사이에 만든 인공하천 선통물천(先通物川),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가면 ‘땡땡’소리가 났다고 하여 불린 ‘땡땡거리’ 등 옛날을 추억할 수 있는 설명판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다만 새창고개 이야기 설명판은 백범교 아래 숲길 공원에 세워져 있는데, 창고인 만리창은 효창파크푸르지오 아파트단지에 있어 표지석은 백범로 도로변에 세워놓았다. 백 범 생애나 주요활동일지를 표시한 설명은 백범교 아래 벽에 적혀있다.

홍대역 6번 출구 전방 숲길에는 ‘경의선 책거리’를 조성하여 조형물도 세워놓고, 여행, 아동, 문학, 예술, 인문 등 분야별 서적이나 소품을 전시, 판매, 안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와우교 아래에는 간이역을 연상할 수 있게 꾸며 놓았다. 경의선 숲길 곳곳에는 현대조각 작품들도 세워져 있고, 젊음의 거리와 가까운 곳에는 기타 치는 남학생과 책 읽는 여학생 조각상을 두 곳에 설치해놓았다. 

열차 객차를 활용한 숲길 사랑방 (사진=황현탁)

코로나19로 경의선 숲길 커뮤니티센터, 열차 객차를 활용한 숲길 사랑방 등 공공시설은 운영하지 않고 있었고, 공원에 비치된 의자나 벤치 등 쉼터도 거리두기를 지켜달라는 호소로 점철되어 있었다.

‘공원’인 만큼 주변에는 먹고 마실 곳이 즐비했는데, 카페와 식당이 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홍대입구역 인근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젊은 연인끼리 즐기기 좋은 곳이라면, 공덕역과 서강대역 사이 양옆 카페는 가족이나 나이든 사람들이 오붓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의선 숲길은 2016년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의선을 부설한 것은 일본인데, 철도 부지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용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해방 후 패전국 일본의 재산을 미군정청이 인수하고 다시 한국정부에 인계한 것이어서 취득 절차에 정당성은 부여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철도를 부설할 당시는 러일전쟁 시기로 군을 투입하여 부지를 강점하고 대한제국에 강요하여 임차하였던 것이므로, 많은 백성들의 원망과 회한이 서려있을 것이다. 한 세기가 넘어 수많은 지역주민들의 휴식과 삶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멋있고 쓸모 있는 생활공간으로 바꾼 ‘극일’의 현장이다. 이런 식의 일제 잔재 청산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일제청산이 아닐까! ‘기억은 하면서 넘어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애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