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0억원에 인수하더니,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이그니오'
이그니오 홈페이지 사라지고 회사명도 '페달포인트'로 변경 "미래가치 평가해 투자" 주장과 모순…투자실패 흔적 지우기?
MBK·영풍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이 지난 2022년 당시 환율 기준 한화 5,8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미국 전자폐기물 기업 이그니오의 흔적을 지우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확인 결과 이그니오의 기존 홈페이지(igneo.com)는 현재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며 해당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면 고려아연의 미국 지주회사인 페달포인트 홈페이지로 연결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페달포인트 홈페이지(pedalpoint.co)에 접속하면 이그니오 모기업인 이그니오 홀딩스는 찾을 수 없으며, 재활용 기술 보유업체라는 이그니오 테크놀로지는 '페달포인트 테크놀로지'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전자폐기물 파쇄 및 분류를 담당한 자회사 이브이테라(EvTerra) 리사이클링은 '페달포인트 리사이클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이그니오의 프랑스 소성로 운영기업 이그니오 프랑스를 검색하면 이 역시 '페달포인트 프랑스'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존 이그니오 로고들은 모두 사라진 대신 새로운 페달포인트 로고가 게시돼 있으며 미국 최대 비즈니스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에도 이그니오라는 이름 대신 모두 페달포인트로 개명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일하게 이름을 바꾸지 않은 회사는 고려아연이 지난해 4월 5,500만달러(당시 한화 740억원)에 인수한 금속 트레이딩 업체인 캐터맨 뿐이다. 캐터맨의 경우 새로운 페달포인트 홈페지이에서 회사 정보를 클릭하면 기존 캐터맨 사이트로 그대로 연결된다.
고려아연은 2022년 이그니오를 인수하면서 "비철금속 트레이딩과 도시광산 사업에서 전문성을 가진 이그니오의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면서 "이그니오가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 동력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5,80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인수한 기업의 사명과 로고 등을 2년여만에 통째로 바꿔 기존 브랜드 가치를 모두 포기했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시장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페달포인트'라는 명칭을 사용한 점과 캐터맨의 사명은 그대로 뒀다는 사실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 통합을 위한 CI 작업의 일환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MBK·영풍은 최근 "고려아연이 신생기업인 이그니오 홀딩스를 인수할 당시 실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업가치를 책정해 회사 매도자들에게 최대 100배의 석연찮은 수익을 안겨줬다"면서 "매도자의 정체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의 관계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이그니오를 인수한 페달포인트는 인수 당시인 2022년 매출 330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1조1,656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면서 "미국 시장 투자기관 평가와 대형 로펌의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제시한 매출 1조1,656억원의 대부분은 이그니오가 아니라 지난해 인수한 트레이딩 업체 캐터맨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MBK·영풍 측은 "이그니오의 투자 실패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그니오라는 이름을 없애고, 대신 캐터맨을 포함한 페달포인트라는 새 이름을 내세운 것 아니냐"고 재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아메리카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