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다- LA 해머미술관 스티븐 송

2025-01-11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미국 서부 최대 도시 LA를 대표하는 컬렉터로는 장 폴 게티(J. Paul Getty·1892~1976) 와 함께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1898~1990)가 있다. 그들이 수집한 소장품들은 게티 미술관(Getty Center)과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해머 미술관은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털 페르롤리엄(Occidental Petroleum) 창업자 아만드 해머가 1990년에 개관했다. 댈러스미술관을 설계한 에드워드 반스(Edward Larrabee Barnes) 작품이다.

 스티븐 송 / 제공 = 건축사무소 스카(SCAAA)


스티븐 송(Steven Phillip Song·44) 해머 미술관 글로벌 협의회(Global Council) 공동 의장은, 지역의 UCLA 대학과 해머는 파트너임을 명확히 한다. 글로벌 협의회는 ‘해머 프로젝트’ 뿐 아니라 ‘국제적 초점의 전시회를 선정하고 후원(Each year, global council members select and fund an exhibition with an international focus.)’하는 일을 한다.

해머 미술관의 운영 및 관리를 UCLA가 맡았던 1990년대에는 해머가 UCLA에게 도움받았으나 지금은 되려 해머가 ‘헤어질 결심’ 할까봐 UCLA가 조바심 낸다고 한다.

1994년 UCLA는 부설 갤러리와 소장품, 직원을 해머로 재배치했으며 미술학과 교수가 관장을 역임했다. 1999년 뉴욕 드로잉센터(Drawing Center)관장을 지낸 앤 필빈(Ann Philbin)이 새로 부임하면서 해머만의 정체성을 갖는다. 주제가 강한 현대 미술·아카데믹 전시, ‘해머 프로젝트(Hammer Projects)’로 명명된 지역·국가를 초월한 작가 발굴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앤 필빈의 25년 재직 동안 해머는 로버트 콜스콧(Robert Colescott·1925~2009) 등 동시대 작가 작품 수천점을 새로이 구축했다. 스티븐 송의 설명이다.

“해머는 대중보다는 작가들에게, 미국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미술관으로 평가받는다. ‘해머 프로젝트’는 남미, 아시아, 중동, 인도 등 작가 작품을 수용, 전시했기 때문이다.”   

“라크마(LACMA)는 대형 전시, 게티는 연구와 보존에 중점을 두며, 해머는 작가 발굴에 중점을 둔다.”

Marie Orensanz’s “Artist Limitada (Limited), 1978/2013” (출처 Hammer Museum)


해머에서 기획한 전시중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2017년 전시 <급진적 여성 : 라틴 아메리카 미술, 1960~1985>(Radical Women: Latin American Art, 1960–1985)이다. 이 전시는 지금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미술사에서 거의 조명되지 못한 1960년 이후, 남미와 미국내 ‘라틴계 예술가(Latina artists)’중 급진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예술 활동을 처음으로 조명하였다. 1960년 이후 25년 동안 남미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으며 여성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처해 있었다. 120명, 15개국의 여성 예술가와 집단의 작품을 선보였다.

2명의 큐레이터가 10년에 걸쳐 기획했다. 관람객들이 미술관 바깥을 한바퀴 돌아 줄을 설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관장이 25년간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켰기에 하나의 전시를 10년간 기획할 수 있었다. 이사회는 관장 임기를 매년 연장하는 방식으로 전폭 지원하였다.

해머는 지난해 솔로몬 R. 구겐하임과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협력한 ‘한국 실험미술(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을 전시했다. 

해머의 컬렉션은 19세기 유럽 회화 중심의 ‘아먼드 해머 컬렉션’, 1960년대 이후 LA기반의 작가들 작품 중심인 ‘해머 컨템포러리 컬렉션’, 프랑스 풍자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 중심의 ‘아먼드 해머 도미에 컨템포러리 컬렉션’,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의 종이 작품 중심 ‘그룬왈드 센터 컬렉션’등 5개 컬렉션 4만7,000여점을 자랑한다. 렘브란트의 주노(Juno,1662~1665), 빈센트 반 고흐의 생레미 병원(Hospital at Saint-Rémy, 1889) 등이 대표 소장품이다.

 JUNO(1662~1665), Rembrandt van Rijn, oil on canvas 127 x 123.8 cm The Armand Hammer Collection, Gift of the Armand Hammer Foundation. Hammer Museum, Los Angeles. 
 Hospital at Saint-Rémy, 1889, Vincent van Gogh, oil on canvas 92.2 x 73.4 cm Hammer Collection, Gift of the Armand Hammer Foundation. Hammer Museum, Los Angeles.


본업이 건축가인 스티븐 송은 2015년 해머 이사회(Board of Directors) 일원으로, 미식축구팀인 로스앤젤리스 램스(Los Angeles Rams) 전 구단주 칩 로젠블룸(Chip Rosenbloom)을 비롯한 유태계 유력 인사들의 초대로 해머 이사회 일원으로 영입돼 2024년까지 활동했다.

“이사회는 멤버들의 노년화를 대비하며 문화 다양성 확대 차원에서 저를 영입한듯 합니다.”

금년에는 본업에 충실하고 글로벌 협의회에 집중하기 위해 이사직은 쉬고 있다. 해머 이사회는 유명 인사들의 집합체이다.

하얏트 호텔 체인을 소유하고 있고,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제정한 프리츠커 가문의 토니 프리츠커(Tony Pritzker)는 지난해 스티븐 송과 같이 이사회에서 내려왔다. 

이사회 의장인 마시 카시(Marcy Carsey)는 코스비 쇼, That ‘70s Show 등 유명 드라마들을 제작한 미디어 재벌이다. 본인도 익명으로 많은 기부를 하고 스티븐 송에게 이사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이미경(Miky Lee) CJ 그룹 부회장도 해머 이사회 일원이다. 이미경이 주최하는 해머 갈라 이벤트(Hammer Gala Event)는 매년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자리이다. 이미경은 2024년 2월 한국실험미술 전시에 힙합 듀오 다이나믹 듀오와 댄스 크루 프라우드먼을 초청하였다. 2020년 2월,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감독, 주연 배우들을 해머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이미경은 해머에 K 컨텐츠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해머 미술관 모금을 위한 Gala in the Garden / 제공 = Steven Song


이사는 미술관 사업 영역 및 방향과 이해 관계가 없어야 한다. 심지어 컬렉터가 자격 요건으로 요구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자신의 주요 컬렉션 작가의 전시를 미술관에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내 각종 커뮤니티 활동, 미술관 업무 경험 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해머는 입장료가 무료이다. 이사 한 명이 ‘UCLA와 가까운 미술관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늘 전시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면서 약 5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기부 금액에 대한 이사들의 정서는 ‘기부자가 기부 때문에 파산해서는 안되지만 좀 고통스러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이사들의 정서입니다.”

스티븐 송은 지난달 20일 서울 성수동 자신의 건축사무소 스카(SCAAA)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금년부터 글로벌 협의회 미션이 바뀔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스티븐 송은 '단순한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는 명제를 내세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론가·교육자·건축가인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2018)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1931~) 부부와 수 년을 동거동락하며 그들 건축사무소 VSBA(Venturi, Scott Brown and Associates, Inc.)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논문 작업에 참여했다.

스티븐 송은 아퀴텍토니카(Arquitectonica) 뉴욕 사무실(2004~2007년)에서 서울 여의도 IFC (서울국제금융센터) 프로젝트를, SOM(Skidmore, Owings and Merrill) 뉴욕 사무실에서 2011년까지 미국내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하였다.

건축사무소 스카(SCAAA)의 국내 프로젝트는, 재건축에 가까운 리모델링 작업 서울 라이스호텔(2012~2018·구 서교호텔), 서울 한남동 오거리 '몬트레아 한남' 프로젝트(입면-파사드-디자인과 인테리어 콘셉트 제공 2024)를 수행했으며, 삼양식품의 강원도 대관령 부지를 활용한 ‘헬스케어’ 사업 방향 및 공간 기획, 설계에 참여하고 있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