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전략 차용한 윤석열과 지지자들은 '민주사회의 적'
트럼프의 ‘스톱 더 스틸’ 구호 빌려, 부정선거 음모론 계속 주장 '상업적 우파' 이권 결합체, 무관용 대응으로 공동체 지켜야
12·3 비상계엄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퇴행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분란의 책임자인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대통령 답지 않게 ‘법꾸라지’ 행태를 보이며 관저에서 버티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은 온갖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나라는 어떻게 되든지 '나부터 살고 보자'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 사이 위법한 계엄 발동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고 탄핵 절차의 적법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얻은 것도 없지 않았다. 수영장 물이 다 빠지면 누가 발가벗었는 지가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 공동체의 문제점을 노정했다. 우리 공동체에 잠복해있던 ‘열린 사회의 적들’의 실체와 면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이 그들로, 규정하자면 상업적 우익들과 신념적 극우주의자들의 조합이다.
지금 이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국면전환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차용한 전략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순교자 코스프레’다. 윤석열 변호인단이 엊그제 외신기자들을 향해 한국 사회가 약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핍박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전제군주처럼 마구 권력을 휘두르다 제풀에 넘어진 윤석열을 핍박 받는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더구나 용산 대통령 관저 앞에 몰린 윤석열 지지자들의 핵심 구호가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표를 훔치지 말라)'이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그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들었던 팻말의 구호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한국에서도 선거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하며, 또 그것을 밝혀내려고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주장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중국이 우리 선거를 조작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하고, 탄핵 촉구 집회에 나온 사람들 사이에 중국인들이 끼어있다고 우긴다.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지는 이들과 미디어의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은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보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절독한다고 한다. 트럼프주의자들이 NYT와 CNN을 향해 가짜뉴스 생산자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넘어 나중에는 FOX 뉴스도 비판하는 것과 닮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국회의사당 난입에 대해 “주류 언론은 여전히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을 보도하기를 거부했다”고 주장한 것과도 논리구조가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은 좌파의 공포 조장에 넘어가지 않았다”며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공산주의자 내지 좌파로 모는 것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것은 윤석열 지지자들 안에도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식자층이 꽤 있다는 점이다. 학자와 변호사, 공직자 출신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정치권 진출을 모색해왔고, 실제로 진출해있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국민의힘 비례대표 교수 출신인 김민전이 대표적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는 것도 모자라 ‘반공청년단’이니 ‘백골단’이니 하는 퇴행적 집단을 지원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버젓이 했다. 음모론에 찌들어 권력만 추구하는 비상식적 인간이라는 것을 노출했다.
윤석열을 집단 엄호하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미 공화당 내 극렬 트럼프 지지 의원들을 연상시킨다. 권성동과 윤상현, 나경원, 이철규 등 중진들이 앞장서고 있는데, 이들은 지역구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여기에 가세한 것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생계형 유튜버들이다. 실제 트럼프를 지지하며 미국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상당수가 극우 유튜버들이었고, 사건 이후 범죄자로 처벌된 이후 유튜버가 되어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지금 윤석열을 둘러싼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의 정체는 권력과 이권이 결합한 상업적 보수주의 집단인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트럼프가 성공했다고 한국에서도 성공하리란 법이 없다. 윤석열 지지자들의 ‘스톱 더 스틸’ 행동에는 어떤 창의성도 없다. 자신들이 일궈왔다는 자랑하는 우리 공동체의 자존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의 터무니없는 ‘동조화’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스톱 더 스틸' 구호를 트럼프를 향해 윤석열 구명에 나서달라는 요청이라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임하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국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한국 민주주의 전통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이 뻔한데 미국이 윤석열을 두둔할 이유가 없다.
윤석열 변호인단은 최근 외신기자들과 만나 ‘윤석열이 나라를 좀 더 반듯하게 하려고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윤석열이 진정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고자 했다면 계엄이라는 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불법의 진상을 밝히려 했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국군정보사령부를 동원해 선관위로 하여금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고 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부정선거 주장은 허구이다. 여야 각당의 참관인들이 개표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마당에 선거 부정이 일어날 수가 없다. 해킹에 의해 투개표 숫자가 조작된다 해도 바로 드러나게 돼 있다. 선관위 투개표 시스템을 한번 참관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이들은 시종 외면하고 있다. 선관위가 서버 및 시스템 검증에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하니 어렵지 않게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윤석열 지지자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관용과 절제는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이 없다. 오로지 승리만이 목적이다. 이들에게는 양극화된 사회가 오히려 기회이다.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들을 단호히 배제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이 불법계엄을 선포하게 된 데는 전두환 쿠데타 세력을 엄정하게 처벌하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법치주의에 입각한 응분의 책임을 단호하게 물음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회복해야 한다. 이것만이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