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트라우마˙강박 치유의 손길 가진 '내 누님 같은' 화가 김인옥 (하)

블랙스톤 이천GC 12월 31일까지

2021-10-31     심정택 칼럼니스트

작가가 중국 베이징에 머물던 2013년 ~ 2014년 경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건너편의 삼성화재 빌딩에 걸린 그림 속 분홍색 사탕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요정들이 중간중간 나타났다. 황갈색의 육중한 대리석이 감싼 건물 내외부의 공간중 로비를 형성하는 아트리움 벽면 상단의 그림은 크기보다 훨씬 커보였다. 작품은 아우라를 뽐내며 공간 전체를 지배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는듯 보였다.

기다림 2011 순지에 채색 130*162

올림픽 대교 곁을 지날 때 마다 2001년 5월 주탑 상판에 조형물을 설치하다 세상을 떠난 헬기 조종사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뉴스 시간에 본 당시의 사고 동영상 장면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차마 볼 수 없었다. 그 즈음 참석한 결혼식에서 혼주는 하객들에게 식에 사용한 초를 나누어 주었다. 어린 영혼들에 대한 연민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기성 세대로서 사고를 막지 못한 정치 지도자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컸다.

촛불 작품은 최초 하나 하나를 길게 붙인 연작으로 시도하였다. 촛불 하나 하나는 죽은 이들 한 명 한 명의 영혼을 상징하였다. 그들이 천국, 또는 내세, 좋은 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2년여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경제난에 빠져 고통스러워한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방역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사회적 트라우마와 강박,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가져올 때가 있다. 재난은 멈출 수 없고, 예술가는 그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그림을 남긴다. 

일상에서도 인간으로서 도의와 덕목에 지나치게 어긋나는 이들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커진다. 

김인옥의 분노는 정치적 패권 성격의 진영과 어설픈 이념과는 상관없다. 과거 민중미술은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 반면 김인옥은 역설적으로 사랑, 희망, 행복을 메세지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화단의 중견으로 자리잡은 김인옥은 마이너 장르로 전락해 버린 동양화, 유명 서양화가 김강용을 만든 ‘내조’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면서 잠시도 자신이 화가임을 잊어버린 적도, 작업을 중단한 적도 없다. 

미국에서 꽃피운 팝아트는 영국에서 출발했다. 비틀즈(Beatles)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한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1932 ~ )는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 ~ 2011)과 함께 팝 아트의 창시자로 불린다.

앞선 시대의 추상표현주의가 개인적인 작품 형식을 추구했다면, 팝아트는 이름에서 보듯 대중적(popular)인 특성을 지녔다. 해밀턴은 팝아트를 '일시적이고,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고, 상업적인' 미술 양식으로 이야기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만화, 영화, 잡지 형식이 팝아트의 표현 수단으로 활용됐고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등 모습을 담으며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김인옥 기다림 01-3000

마트에서 집어든 브로콜리(broccoli), 그려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브로콜리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화가는 대상에서 묘한 교감을 받는다. 당초 브로콜리 작품은 한 점으로 끝 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핑크 색 브로콜리는 봄을 상징한다. 브로콜리에 자신의 생각을 심고 있다. 

모티프를 얻었으면 구현하는게 예술가이다. 의도한대로, 생각한대로 작품이 풀려가면 희열을 느낀다. 온실 재배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수퍼마켓 식품 코너에 수북히 쌓아 놓은, 흔한 야채류인 브로콜리는 김인옥에게 팝아트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른 팝아트 작가들과는 이대관소(以大觀小), 즉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보고,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을 볼 수 있는 동양미학의 가치 지향점이 다르다. 작은 것은 단순히 작은 게 아니라 응축되어 있다. 김인옥의 작품은 단순하게 비례적으로 확대한 게 아니다. 관념의 확장과 실천이다. 

중국 근대작가 리커란(李可染·Li Keran·1907~1989)은 중국화의 구도와 구성의 특징을 '이대관소‘(以大觀小)라고 보았다. 2차원 평면에서 뒷면까지 보려는 피카소의 큐비즘과 그 맥락이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미국 현대 문화계의 실력자이자 건축가인 필립존슨(Philip Johnson·1906~2005)은 자신의 영지가 있는 코네티컷주 뉴케이넌에 글라스하우스( Johnson Glass House)를 지어 앤디워홀, 프랭크 스텔라, 마크 로스코 등 현대 미술가들과 어울렸다. 

필립존슨은 글라스하우스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쯤에 관상용 건축물인 '연못 파빌리온(Pond Pavilion)'을 지어 즐기는 이대관소의 정신을 실천하기도 했다.

항금리 가는길 02-3000

60대 중반을 넘어선 작가는 ‘다들 아프다고만하면 어떡할거냐. 누군가는 치유해야 될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낸다. 모든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삶을 작품에 녹여내는 것은, 사회적, 개인적 감정과 느낌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예술가 직업 윤리의 정당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인옥 작가는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진심이다보니, 그를 외향적 성향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동안 돌아보니 청소년 시기에는 혼자 많이 놀았고 내성적이었으며 다양한 마음의 갈등 또한 있었음을 내비친다.   

사회평균적인 잣대로 보면 화가는 독특한 직업이다. 정년이 없다. 20~30대 흩뿌리는 먹 한가지로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회화가 공간을 지배하고 먹의 자유로움은 화폭의 크기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걸 안다. 다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갖는다. 향후 작업은 여기에 주력할 듯 하다.  

김인옥 작가는,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인 ‘국화옆에서’에 등장하는 시인이 동경하던 ‘내 누님’이고, 김인옥 작품은 ‘꽃’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블랙스톤 이천 GC에서 개인전은 12월 31일까지이다.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