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국힘 법비들의 노골적 분탕질, 국민 저항만 키워

“당당히 맞선다”더니 치졸한 지연술, 친윤·한덕수가 엄호 계엄 이후 ‘정의 대 불의’ 구도…국힘의 내란 옹호, 보수 절멸 재촉

2024-12-27     이중근 칼럼니스트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촛불 집회 참석자들이 '윤석열 즉각 체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후 헌법재판소와 수사 당국의 재판과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재가 지난 16일부터 우편 등을 통해 10차례 이상 보낸 탄핵심판 접수통지와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의 서류를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 생일 케이크와 축하꽃은 받으면서 송달 서류는 수령하지 않았다. 27일에야 변호사를 선임하고 헌재 재판기일에 참석한다고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몽니를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소환도 두 차례 거부해 3차 소환통보를 받았다. 검사로 재직하면서 익힌 온갖 법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고의적으로 사법 및 수사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담화문을 통해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호언하던 모습은 간데 없다. 일국의 대통령에게서 이런 법비(法匪·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 행태를 볼 줄은 차마 몰랐다. 

윤석열 측은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는데, 탄핵심판이 끝날 때까지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수사 중 구속되면 탄핵에도 대응하기 어려워지니 아예 수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아직 대통령 신분이기 때문에 탄핵 파면당한 뒤 수사를 받았던 박근혜와 경우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 혐의가 직권남용 등 불소추 특권이 적용되는 범죄였던 터라 파면 후 강제수사를 받았다. 반면 윤석열의 혐의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내란죄이다. 당장 수사·기소가 가능하며, 즉시 체포까지 할 수 있는 중죄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내세워 공석 중인 헌재 재판관 3명을 채우는 것을 방해하고 요리조리 시간을 끌고 있다. 지지층의 여론을 부추겨 헌재에서 탄핵을 부결시키고(윤석열), 대선을 최대한 늦춰 이득을 보려는(국민의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법꾸라지’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는 고약한 짓이다. 

더 치졸한 것은 며칠 전부터 국민의힘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이 지연전술에 줄줄이 가세하는 점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엄호에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국회가 헌재 재판관 3명을 추천하는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는 국회가 판사(헌재)를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재판관 3분의 1을 추천하는 것은 탄핵심판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은 국회가 3명의 헌재 재판관을 뽑아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켜지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검사 출신이 어떻게 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지 자질이 의심된다. 

 한 대행은 26일 “여야가 합의할 때까지 헌재 재판관 3명의 임명을 유예하겠다”고 선언해 탄핵을 자초했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재판관 3명의 임명이 가능하다고 했음에도 그는 물러섰다. 현 시점에서 여야가 이 문제에 관한한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안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인사들을 만나 자문했다”고 했지만, 그런 고뇌보다는 내란죄 피의자를 돕는다는 인상만 주고 있다.  계엄 직후 비판적이던 모습에서 슬금슬금 태도를 바꾸고 있다. 

5,000여명으로 추산되는 부산시민들이 28일 박수영 국민의힘 사무실 앞에서 박 의원에게 윤석열의 내란과 탄핵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시민들은 '내란 정범 국힘당을 해산하라'는 구호 등을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여전히 두자릿수이고,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2016년 말 새누리당 지지율의 두 배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탓일뿐, 결코 지지 열기가 높아진 결과가 아니다.  결국,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정치 양극화에 따른 반민주당 정서와 그 반대 급부로 인한 국힘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노리고 있다. 권성동은 당원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말고, 얼굴 두껍게 하고 당당히 다니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한국 보수당의 마지막 비명을 듣는 것 같아 씁쓸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순간,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통칭 ‘진보 대 보수’ 구도가 ‘정의 대 불의’ 구도로 전환했다. 1987년 구도로 회귀한 셈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에너지가 해소될 때까지 구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군인 1,500명 이상에 실탄을 1만발이나 들고 나와 국회와 중앙선관위를 침탈하고, 군과 경찰로 구성된 체포조를 운용해 수도권 군부대에 정치인과 언론인, 판사들까지 잡아가두려 한 게 내란이 아니면 무엇이 내란인가? 만약 그런 일을 민주당 쪽 대통령이 저질렀어도 국민들을 잠시 놀라게 한 소동이라고 말할 건가? 시민들은 야당도 마뜩치 않지만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을 놔두고 그들을 먼저 단죄할 생각이 없다. 

1987년 견고해 보이던 전두환 군사독재의 둑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 대행이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이튿날인 27일,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섰다. 내란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이 경제와 민생을 옥죄기 시작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혹여 시민이 지치기를 기다린다면 더 큰 역풍을 맞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다. 법꾸라지들이 더 분탕질치면 분노한 국민이 떨쳐 일어설 것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