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없는 선관위 계엄군 투입, 윤석열은 선거부정론자였다
국회보다 더 많은 병력 투입, 김용현 “부정선거 의혹 해소 위해” 국회 해산 명분 만들기 의심, 음모론에 취한 대통령 탄핵사유 충분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한 이유가 이른바 ‘부정 선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계엄군은 지난 3일 계엄을 선포한 지 5분이 채 안된 시각에 선관위 과천청사와 관악 청사, 그리고 수원에 있는 연수원 세 곳에 진입했다. 국회(280명)보다 더 많은 300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는데, 계엄사의 명령에 따라 경찰 병력도 가세했다.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이 병력 투입이 “부정 선거 의혹과 관련한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선거 부정론은 보수 언론조차 전혀 신뢰하지 않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오로직 극우 세력만 신봉하는 음모론이다. 그런 음모론에 경도되어 선관위에 병력을 최우선으로 보낸 윤 대통령은 이미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탄핵할 명분으로 충분하다.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계엄이 발동되어도 병력이 투입되는 대상이 아니다. 계엄법 8조 1항에는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계엄법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기는 일을 검사 출신 대통령이 획책했다. 그 자체 법 위반이다.
그보다 더 내용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선거부정을 의심하고 상당히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윤 대통령과 처음 만난 날‘제가 검찰에 있을 때 인천지검 애들 보내가지고 선관위를 싹 털려고 했는데 못 하고 나왔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극우적 사고를 보인 게 한 두 번 아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애초부터 ‘검찰 지상주의자’인 것은 알았지만 정상적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도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보수세력은 보수당이 참패한 지난 2020년 21대 총선과 지난 5·10 총선의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묘하게 일치하는 일부 득표율 등 수치들과 의심스러운 정황들이다. 실제로 선관위를 덮친 계엄군은 곧장 과천청사에 있는 서버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통합명부시스템 서버를 시작으로 외부와 연결된 통신장비 서버와 선관위의 행정시스템·보안시스템 서버를 차례로 촬영했다. 사전투표를 위해 전국 투표구별 선거인 명부를 통합해 합친, ‘통합선거인명부’ 서버를 가장 먼저 노린 것이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사전투표와 본투표 결과가 크게 차이 나는 배경에 ‘통합선거인명부’ 조작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선거 조작 음모론을 확인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해도 큰 논란이지만, 혹여 서버를 조작하든지 기타 다른 방법을 통해 지난 두 총선이 조작됐다고 국회 자체를 무효화하려 한 것이라면 실로 섬뜩한 일이다.
또 하나, 이번 계엄 조치를 통해 짚어볼 대목이 있다. 계엄군이 체포할 대상에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전 선관위원장(대법관 겸임)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권 전 대법관은 4년 전 대법관 재직 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여했다.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 대표 사건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거쳐 무죄가 확정됐는데, 이 때 권 전 대법관이 무죄의 논리를 제공했다. 그런데 권 전 대법관이 대장동 의혹 사건의 주범인 김만배씨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김씨가 권 전 대법관에게 이 대표의 무죄 취지 판결을 청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권 전 대법관이 퇴직 후 김씨로부터 받은 거액의 고문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그 ‘재판 거래’의 대가라고 음모론자들은 의심했다. 권 전 대법관은 21대 총선이 치러진 2020년 4월 20일 당시 선관위장이었던만큼 여기에도 관여한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 권 전 대법관, 나아가 김명수 전 대법원장까지 모두 재판 거래 혐의에 옭아매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한 <뉴스버스>와 경향신문, 뉴스타파 등을 온갖 수사를 통해 이대표와 엮으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극우성향 유튜버들이 제기하는 계수기 조작이나 사전투표 조작 등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없는 의심들에 선관위의 일부 실수와 비리 의혹이 더해지면서 이들의 ‘선거부정’ 확증편향으로 바뀌었다. 일부 학자들과 심지어는 국회의원까지 동조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거듭되고 있다. 선관위가 아무리 증거를 대도 믿지 않고 다른 변명과 구실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런 의혹은 경찰 수사 결과 단 한 번도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21대 총선 당시 부정 의혹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재판을 해서 판결이 났다. 단심으로 대법원에서 했다. 재판연구관들이 현장 검증과 같은 방법으로 꼼꼼히 다 검토한 결과, 선거에 업무 미숙은 있을 수 있지만, 고의적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허무맹랑한 의혹 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윤 대통령이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음모론에 경도돼 헌법기관을 침탈한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또하나의 중범죄다. 그것만으로도 대통령 자격이 없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